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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말 Aug 13. 2022

카탈로그로 보는 이케아의 공간 철학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는 책


 70년 동안 이케아의 가장 강력한 마케팅 수단이었던 ‘카탈로그’는 지금의 글로벌한 이케아를 만들어준 상징이다(2021년부터 디지털 카탈로그로 대체됨). 이들이 한 해 발행했던 카탈로그의 숫자만 1억 9천만 부였으며,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책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이케아가 발행하는 카탈로그는 세계 최대의 배본 부수를 자랑하였다. 그만큼 이케아가 한 가구 브랜드를 넘어, 전 세계 사람들이 공간에 대한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이케아는 어떻게 카탈로그를 마케팅 방식으로 활용할 생각을 했을까? 스웨덴의 한 시골 마을에서 시작된 이케아는 큰 도시에 있는 사람들에게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카탈로그 배포’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됐다. 제품의 사진과 가격 정보를 담아 홍보에 나서기 시작했고, 실제로 카탈로그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이케아라는 브랜드를 인식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스칸디나비안 디자인 모디프


 이케아 창업자 잉바르 캄프라드는 항상 말해왔다. 우리는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이 추구하는 가치를 무엇보다 지킨다고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케아 카탈로그는 이케아의 영혼인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정수가 담겨있는 집약체라고도 볼 수 있다. 

*스칸디나비아:  북유럽의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한 문화·역사적 지역을 일컫는다. 대개 노르웨이·스웨덴·덴마크 세 왕국을 말하며, 때에 따라 핀란드와 아이슬란드를 포함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의 특징은 무엇일까? 크게 5가지로 볼 수 있다.

1. 자연에서 영감 받는 디자인
 자연으로부터의 영감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자연의 온기와 부드러운 느낌을 잘 살린 디자인을 말한다.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나무, 돌 등 원재료의 결을 최대한 살려서 따뜻하고 아늑한 정서를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것이 특징이다.

2. 지속가능한 디자인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강조하는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은 '지속가능성'이라는 글로벌 현안으로 인해 더 주목받고 있다. 대대로 오래 사용해도 끄떡없는 내구성과 유행을 타지 않는 타임리스 디자인을 추구하는 것 또한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의 지속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3. 생활 속 디자인
 북유럽은 긴 주기의 겨울과 해가 거의 지지 않는 여름이 공존하고, 빙하, 숲, 호수로 이루어져 있어 실외보다 실내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 집 안을 실용적이고, 기능적이고, 안락하면서도 편안한 형태로 가꾸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겨울은 극야 현상으로 하루의 일조량이 극히 적은 혹독한 날씨이기 때문에, 최대한 밝은 계열의 색감이 돋보이는 실내 디자인이 발전했다. 반면 여름은 백야 현상이 있기 때문에 최대한 햇빛을 가리며, 실내의 안락함을 추구하는 디자인의 형태가 함께 발전하게 된다.

4. 기능적인 디자인
 20세기 중반부터 북유럽에서는 자연에 대한 경의와 기능적인 모더니즘을 추구하는 스칸디나비안 디자이너와 건축가들이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래서 더욱 실용적인 동시에 보다 절제된 디자인 형태가 나타났다. 즉 기능, 형태에 충실한 미니멀리즘과 모던함이 결합한 특유의 단순, 간결한 미학이 돋보이는 디자인이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라고 언급될 수 있다.

5. 인간 중심적 디자인
 결국 가구를 사용하는 주체는 인간이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여러 디자인의 형태를 가지고 제일 고려해야 하는 것은 인간에게 얼마나 효용적 가치가 있는가이다. 아무리 멋있고, 예뻐도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불편해한다면 그것은 인간을 위한 가구가 아니며,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의 철학에도 위배된다.


 70년간 발행해온 이케아 카탈로그 표지를 보면서 이케아가 전하고자 한 스칸디나비안 디자인 철학이 어떻게 녹여졌는지, 그리고 시대에 흐름에 따라 변화한 것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1950년대 카탈로그 : 개별 가구에 집중

 이 시기의 이케아 카탈로그 표지는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전체 공간을 조명하는 이미지보다 개별 가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 중 특이점은 1955년도에 거실 배경을 사진과 함께 공간 구조를 도안 이미지처럼 처음 구현한 점이다. 


 카탈로그 표지를 보면 주로 의자가, 특히 1인용 의자가 표지의 주인공이었다. 왜 일까? 의자는 개인 용품 성격이 강하다. 테이블이나 소파 등은 여러 사람들과 함께 사용하지만, 의자 만은 앉는 순간 인간에게 가장 밀착된 사적 소유물로 인식된다. 그리고 디자인 요소의 변환이 자유롭기 때문에 많은 디자이너들이 의자를 통해 자기만의 디자인을 시도하고 발명해왔다고 한다. 그래서 의자는 '이 브랜드가 얼마나 인간 중심으로 가구를 설계하는지' 빠르게 볼 수 있는 척도임과 동시에 디자이너만의 개성을 보여줄 수 있는 상징으로 표현되어 왔다. 당시에는 1인용 의자가 소비자의 구미를 강하게 당기는 오브제였으며, 가구와 공간의 조화로움보다 가구의 특징과 용도 자체를 보여주는 것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1960년대 카탈로그 : 공간 표현의 시작

 이 시기에는 거실이라는 실내 공간에 소파와 테이블, 조명, 식탁, 카펫, 책장, 소품 등을 배치하여 실제 사람이 거주하는 집을 사진으로 찍은 듯한 공간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표지에는 나무의 원목 색과 밝은 원색이 강조되었으며, 이전 시기처럼 단순히 제품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 공간 스타일링을 보여줌으로써 스칸디나비안 디자인 특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1970년대 카탈로그 : 거실에서 방으로

 처음으로 거실이 아닌 방의 공간이 표지가 되기 시작한다. 특히 이 시기에는 표지에 사람이 등장하여 가구와 함께하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였다. 주로 편히 쉬는 모습이 강조되었다. 이러한 이미지는 스칸디나비아의 가족 중심 문화와 실내에서 이루어지는 활동 이미지에 초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1980년대 카탈로그 : 다양한 가구 소품의 등장

 1980년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아이들을 위한 가구와 주방 소품들이 등장했으며, 용도별로 다양한 가구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981년도에는 가구보다 다양한 소품을 더 강조한 점이 흥미롭다. 1985년에는 기존의 나무 프레임 대신 금속 프레임의 쇼핑카트에서 영감을 얻어 가볍고 튼튼하면서 가격도 낮춘, 스웨디쉬 최고상 을 받은 MOMENT 소파와 테이블을 선보였다고 한다. 이는 기존의 분위기와는 다른 스타일로 시도한 부분인데, 스칸디나비안 디자인 창작의 큰 특징인 전형성 안에서의 자유로움을 드러내고자 한 결과라 할 수 있다. 


 1987년부터 가죽 소파가 등장하며 이케아 브랜드의 가치를 상향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이처럼 다양한 가격대의 선택을 소비자에게 제공하면서, 당시 가격이 낮아 품질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던 소비자들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려 한 것으로 해석된다.



1990년대 카탈로그 : 공간에 감성을

 1990년대의 이케아 카탈로그의 표지는 공간 표현에 보다 자연스러운 행태를 그려내기 시작한다. 실제 누군가 방금 전까지 머물렀던 것만 같은 가구 소품의 어지러운 배치를 연출하기 시작한다. 이는 소비자들이 좀 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현실적인 가구 소품들의 배치로 감성적인 접근을 시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이때의 표지에는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등장하면서 가족의 의미도 강조하기 시작한 시기로 보인다.



2000년대 카탈로그 : 가구와 함께하는 가족의 일상

 2000년에 발간된 카탈로그 표지에는 처음으로 도시 풍경의 배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표지 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주로 누군가와 소통하는 모습으로 연출되었다. 특히 2002년 표지에 “Full fart i folkhemme*"이라는 문구와 함께 등장한 아이의 모습은 가정을 중요시 여기는 스웨덴의 문화요소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Folkhemmet: 스웨덴의 핵심가치인 평등과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보다 좋은 가정처럼 지내고자 하는 ‘인민의 가정’의 뜻이다.


 2003년, 2004년에는 유명 디자이너와 협업한 독특한 디자인의 가구들을 내놓으며 시대에 따라 트렌디하게 변화하는 모습도 꾸준히 보여주려 하였다. 침실 공간이 점점 나오기 시작했으며,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의 무늬와 밝은 색의 가구로 구성된 공간 이미지가 여전히 주를 이루었다.



2010년대 카탈로그 : 가족과 주거 공간의 다양성

 이 시기에는 가족과 주거 공간의 다양성을 감성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시도하였다. 2010년에 제작된 이케아 카탈로그는 마치 집합 주거의 일상에서 보이는 다양한 공간의 다양한 생활들이 적층 된 공간으로 표현되었다. 또한, 규모가 작은 집, 원룸과 같이 주방이나 거실 중 어느 하나로 정의하기 힘든 공간을 보여줌으로써 기존의 카탈로그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도시적 이미지와 함께 새롭게 부상하는 공간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1인 가구 등 현대인의 다양한 가족의 의미와 공간 표현의 방향을 보여준다.


 특히 2015년 카탈로그에서는 표지 지면의 반을 실내에서 실외로 확장되어 보이는 도시 풍경에 할애하였다. 이는 도시 풍경과 융화된 가구를 표현한 감성적인 접근으로, 가구와 함께하는 공간과 풍경의 시너지 효과를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자연을 닮은 가구를 표현해왔던 것을 넘어, 자연과 경계 자체가 없는 가구와 공간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케아에서 출판된 카탈로그에서 보이는 공간의 특징을 정리해보면 1) 개별 가구에서 실내 공간으로, 2) 거실 중심에서 다양한 공간으로, 3) 디자인적 제안 공간에서 사람이 머무르는 공간으로, 4) 공간 자체를 강조하던 것에서 사용자의 삶을 표현하는 방식의 일환인 공간으로, 점점 실용적인 기능보다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감성적 공간으로의 표현 변화는 이케아의 사업 확장에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요소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불어 예술성보다 삶과 밀접하게 연결하여 제작되는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의 철학을 가구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이케아의 일관된 노력 또한 카탈로그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이케아 사례를 보면서, 메가 브랜드가 되려면 브랜드 에센스(본질)는 일관된 표현으로 영속성을 갖추되, 그 외에는 시대에 맞춰 유연 해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출처:
이케아 카탈로그에 나타난 공간 표현 특성에 관한 연구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의 특성

이케아 뮤지엄 홈페이지

이케아 홈페이지

Thumbnail Photo by Zo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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