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참 꽃 같다
8월 초, 꾸까가 기획한 전시회인 '꽃과의 공존'을 프리 더 마케터스 멤버들과 함께 관람하러 갔다. '꽃과 인간. 진정한 공존을 이루다.’라는 메시지를 내세우며, 인간의 삶과 꽃을 동일시하여 색, 질감, 양이라는 3가지 관점으로 꽃이 가진 본질적인 아름다움에 대하여 재해석하였다. 전시의 완성도에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어떤 말을 하고 싶었는지는 전달되었다. 만개하다 스러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힘차게 피어내는 과정이 인간의 삶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돌아가는 길에 백합 한송이를 사서 들어갔다. 꽃에 이입되는 그 순간에 꾸까도 함께 기억되었다.
꾸까(KUKKA)는 '꽃'이라는 뜻의 핀란드어를 따서 2014년에 창업한 회사로, 꽃을 일상재로 활용하는 핀란드의 라이프 스타일을 꾸까만의 방식으로 전파하는 꽃 정기구독 서비스이다. 온라인을 통해 소비자에게 꽃 정기구독과 꽃다발을 판매하는 B2C 사업부가 전체 매출의 60%를 차지하고, 기업 대상(B2B)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부는 20%를 차지한다. 그리고 꽃을 소개하는 사업인 오프라인 사업부가 나머지 20%를 차지하고 있으며, 총 누적 이용자는 100만 명을 돌파하였다. 일상에서 꽃을 소비하는 MZ세대에게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브랜드이다.
꾸까를 처음 알게 된 건 2017년이었다. 당시 다니던 회사가 구독 서비스 결제 비즈니스에 집중하고 있었던 터라 시장조사를 하다 알게 된 브랜드이다. 꽃 정기구독 서비스라니, 엄청 생소했지만 수요가 있을 법한 시장이라고 느껴졌다.
꾸까의 박춘화 대표는 꽃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없었기에 오히려 고객 입장에서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시도해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래도 구독 서비스만큼은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꾸까를 창업하기 전, 박 대표는 구독 서비스 기반의 뷰티 스타트업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력과 비전문성이 사양산업으로 비춰지며 오프라인 중심의 산업 구조를 가지고 있었던 화훼 산업에 테크 기반의 정기구독 서비스를 입힐 수 있었던 것이다. 배달 주기와 구독 기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으며, 1만 2천 원 대 부터 꽃과 함께하는 일상을 바로 시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특별한 날만이 아닌 일상에서 꽃을 즐기기 위해, 계속되는 경험을 제공하는 구독 서비스는 소비자의 인식을 변화시키기 좋은 수단이었다.
어릴 적 영화에서나 혹은 해외 마트에서는 꽃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흔했던 것 같아요. 기차역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의 손에는 꽃이 들려 있죠. 집에서 저녁을 먹어도 테이블 위에 꽃이 놓여있고요. 그런 삶이 한국에서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한국에서 꽃은 대부분 선물용이라고 생각하는데, 일상에 꽃이 스며들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요.
-스타트업 투데이, 꾸까 CEO 인터뷰 중-
꾸까 또한 여느 스타트업과 마찬가지로 캐즘*에 빠졌던 시기가 있었다. 초기에 꽃을 좋아하는 고객군을 빠르게 확보했지만, 대중적인 취향을 만들어 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아닌 ‘누구나’ 꽃을 즐기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해결의 실마리를 오프라인에서 찾았다. 2019년부터 오프라인 캠페인 전개와 공간 경험으로 고객 접점을 확장하여 일상에 당연한 브랜드로 자리 잡고자 하였다.
*캐즘: 초기 시장과 주류시장 사이에 나타나는 수요의 하락이나 정체 현상을 의미한다.
먼저, 타깃 군이 주로 즐기는 생활과 꾸까의 연결점을 찾아 시도한 것이 바로 와인바인 ‘테라스 꾸까’와 카페 형태의 ‘꾸까 쇼룸’이다. '테라스 꾸까'는 다이닝(F&B)과 꽃이 합쳐진 복합 문화공간으로 음식과 함께 꽃을 즐기고 주문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주문한 꽃은 화병을 활용해 바로 테이블을 장식되며 포장까지 책임진다. 분리된 공간에서 플라워 클래스도 받을 수 있으며, 다양한 공간 체험이 가능하다. '꾸까 쇼룸'은 고객이 머무르며 쉬어갈 수 있도록 커피와 즐기는 복합공간으로 만들었다. 이외에도 타깃 군이 즐기는 브랜드와의 적극적인 콜라보로 꽃과 함께하는 생활의 대중화에 힘쓴 꾸까는 2020년이 돼서야 많은 사람들이 꽃을 즐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졸업식이나 특별한 날이 아니면 꽃을 즐기는 것이 어려운 것이 우리의 현실이었거든요. 그래서 한 번이라도 꽃을 접하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 꾸까의 생각이었어요. 당장에 돈이 나가더라도, 비교적 친근한 문화가 된 커피를 마시면서 꽃 한 송이라도 즐길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 지금의 쇼룸이에요. 꽃 한 송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얼마나 큰 여유가 생기는지, 그리고 꽃이 시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인지를 느꼈으면 했어요.
-스타트업 투데이, 꾸까 CEO 인터뷰 중-
2022년 꾸까가 8년 만에 리브랜딩을 진행하였다. 이제는 꽃을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 중 하나'라는 부속물 개념이 아닌, 꽃 자체로도 인간의 삶을 표현할 수 있는 존재가 되기를 바랐다. 그렇게 '자신만의 라이프를 담을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상재'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꽃’이라는 물성이 아닌, ‘꽃’ 자체의 확장성에 무게를 두두고 리브랜딩을 추진하였다. 자신을 표현하고자 브랜드를 소비하는 이 시대에서 어찌 보면 당연한 전략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과거의 로고는 그 존재감을 확장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얇은 서체와 소문자로 표현한 로고타입은 담백하고 소박할 순 있지만, 시각적으로 보이는 브랜드 존재감은 약해 보인다. 꾸까의 브랜드 모티프인 핀란드의 자연주의 문화와 같이 꽃이 일상의 일부로 스며들길 바라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 생각해본다. 그리고 당시에는 그러한 방향이 맞았다.
리브랜딩 된 꾸까의 BI는 전에 비해 확실히 임팩트가 있다. 그만큼 존재감이 느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특히 서체 자체가 주는 높은 콘트라스트는 꾸까가 전달하고 싶은 FLOWER* 오감의 스펙트럼을 잘 녹여내었다. 전체적으로 감성을 자극하는 듯한 전용서체가 인상적이다. 특히 꽃봉오리를 연상시키는 U의 모양은 '꽃은 곧 당신'이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정체성을 표현하는 영역까지 확장하고자 하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이렇듯 볼드하면서 예술적인 요소가 가미된 전용 서체와 기존 메인 컬러보다 더 발고 쨍한 계열의 옐로우 그리고 완벽히 대비되는 서브 컬러, 블랙과의 조화는 시장을 넘어 문화의 중심이 되고자 하는 꾸까의 포부가 느껴진다. 실제로 다른 브랜드와 비교할 때도 시각적인 주목도가 높은 편이다.
* FLOWER: 꽃에 담긴 본질을 FLOWER라는 알파벳으로 다시 해석했다. FUN-재미와 흥미/ LOVE–U, 사랑의 표현/ ONLY–오직, 유일한/ WHATEVER–혁신, 도전 의식/ EASY–공감/ RESPECT–존경심과 애티튜드이다.
반면, 'SISU(시스)'라고 부르는 꾸까의 심볼은 오히려 심플하다. 꽃을 부드러운 곡선으로 단순화하였지만 오차 없이 정확한 꽃잎의 배치에서 오는 균형감은 의도했던 핀란드의 정신력, 즉 극기심과 용기,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이겨내는 강한 회복 탄력성을 전달하는데 충분해 보인다.
우리는 더 이상 꽃이 다른 산업의 ‘부자재’ 혹은 ‘부속품’으로 취급되지 않기를 주장했습니다. 옷처럼 음식처럼, 그리고 자동차처럼 꽃 자체가 우리 삶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고 그 믿음이 ‘꽃의 일상화’로 이어진다고 판단했습니다.
‘꽃’을 판매하는 회사가 아니라 ‘꽃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개성 있는 라이프스타일에게 제안하고 공감을 끌어내는 것을 KUKKA의 리브랜딩 방향으로 설정하였습니다.
-꾸까 웹사이트 콘텐츠 중-
구독 서비스라는 형태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꾸까는 이제 화훼산업에서 오랫동안 이어져온 유통의 구조적 한계를 개선하여 건강한 시장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바로 '파머스마켓'과 '피카플라'이다.
2022년 6월, 일상에서의 꽃 소비를 창출하기 위해 '파머스마켓' 서비스를 출시했다. 기존 고객들뿐만 아니라 꽃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원하는 꽃을 제공, ‘꽃은 비싸다’는 인식을 변화시킨다는 전략이다. 꾸까는 "높은 꽃 가격이 일상에서 꽃을 즐기는 문화를 저해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판단했다"며, "파머스마켓은 농가, 꽃 시장과 협력해 유통 과정을 단순화하고 합리적인 가격을 구성해 고객들의 꽃 접근성을 높이는 서비스"라고 전한다. 파머스마켓은 100% 국내 절화(생화)만 취급해 가격 테이블을 대폭 낮추고, 당일 경매 후 검수를 거쳐 발송되는 빠른 유통 구조를 통해 신선한 품질로 제공하고 있다. 플로리스트가 주문을 넣으면 다음날 오전 가게 앞으로 꽃이 배달되는 꽃 사입 전용 앱 서비스인 '피카플라'도 있었으나 현재는 서비스 재/개편을 위해 잠정 중단된 상태이다.
이러한 꾸까의 다양한 시도는 대형 꽃 도매시장 위주로 형성된 유통의 독과점 해소에 대한 기대와 특수 대목 의존으로 가격 탄력성이 높은 시장 환경에서 수요와 공급의 균형감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화훼산업에 이렇다 할 메가 브랜드가 없는 현 상황에서 시장의 생태계 개선하고 문화를 만드는 꾸까의 움직임은 리더 브랜드로 도약하겠다는 의지로도 볼 수 있다.
화훼산업의 꾸까의 존재감은 투자 업계에서도 인정받아, 2021년 11월 90억 원 규모의 시리즈 B 투자를 유치했다. 꾸까가 화훼 산업의 카테고리 킬러로서 업계의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주목한 것이다. 당시 박 대표는 "이번 투자를 통해 꽃이 대중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문화적 인프라를 만들어 전체 화훼 시장을 견인하겠다"라고 말했었다. 그간의 활동을 보면서 시장 이해관계자들과의 상생을 항상 고민하는 브랜드라고 충분히 느껴졌기 때문에, 앞으로의 행보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