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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Mar 04. 2022

입국 직전, 테러 라니요!

Chapter.2 “운수 좋은 날”

“아가 절대 이 비행기를 타면 안 돼. 이건 명백하게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야!”

어설픈 영어로 진심 어린 걱정을 해주시는 프랑스 아주머니를 앞에 두고 헛웃음이 났다.

‘아니 왜? 하필이면 내가 도착하는 날?!’


2015년 3월 18일 오후 12시 30분, 튀니지 국회의사당 바로 앞에 위치한 바르도 국립박물관에서 테러가 발생했다. 군복 차림의 무장 괴한이 박물관 정문을 통과했을 때 약 200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박물관 내부에 있었다. 무장 괴한은 박물관 정문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총기를 난사했고, 8명이 사망했다.


인천에서 파리 샤를 드골 공항까지 12시간 30분, 그리고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8시간의 대기. 한국을 떠난 지 딱 20시간, 이제 곧 튀니지행 비행기에 탑승하게 될 내가 본 뉴스이다.



2015년 1월 1일 1분경,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듣도 보도 못한 튀니지라는 나라로 떠날 거라 통보해 부모님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던 나로서는 튀니지행 비행기에 올라탈 수밖에 없었다.


방금 테러가 일어난 나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괜찮을 거야”라는 말만 100번 되뇌었다. 사실 ‘지금이라도 내려달라고 할까?’ ‘지금 이탈리아 위 아닐까? 이탈리아 공항에서 엄마에게 전화하자’ ‘아니 근데 이게 무슨 불운한 시작이야’ ‘왜 오늘? 하필? 나에게?’라는 생각을 속으로 2000번쯤 더 하긴 했다.


생면부지의 나라, 튀니지에 도착한 것은 깜깜하게 어두운 밤. 공항에서 호텔까지 어떤 정신으로 어떤 방법으로 갔는지는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그 밤이 무척 어두웠고, 후회와 외로움이 눈치도 없이 매우 빠르게 찾아왔다는 것.


그날 낮의 테러로 외국인 투숙객이 모두 떠나 텅텅 빈 호텔에서 만난 호텔 프런트 맨, 내가 만난 첫 번째 튀니지 소년이 매우 수줍은 친절을 베풀었다는 것만 기억이 난다.


20시간이 넘는 비행의 여독을 풀 여유도 없이 곧바로 다음 날부터 현지 부동산을 찾아다녔다. 호텔을 예약한 기간은 일주일, 딱 일주일 만에 일 년 간 살 멋진 집을 구하자는 의지를 가졌던 참으로 멋진 시절이었다.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는 아주 단순하지만 가장 심각한 이유로 몇 개의 부동산에서 상담조차 실패했다. 아마도 나만한 손녀가 있을 것 같은 현지인 아저씨의 추천을 받아서 마지막 부동산을 가보기로 했다.



하비브 부르기바 거리의 프랑스 식으로 지어진 오래된 건물의 계단을 오르고 올라 마지막 부동산에 도착했다. 이국적인 냄새가 나는 배불뚝이 아저씨를 상상하며 문을 연 그곳에서는, 쟈스민 꽃 향기가 나는 4명의 아리따운 튀니지 여성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프랑스 영화에 나오는 중년의 여주인공처럼 히잡을 쓰지 않은 긴 머리에, 오른쪽 손가락에 항상 담배가 들려있던 사장 아줌마. 코발트블루색 히잡과 니트를 입고 호기심 어린 눈을 동그랗게 뜨던 직원 언니 1. 진달래 분홍색 히잡을 쓰고 더 밝은 분홍색 립스틱을 바르고 있던 직원 언니 2. 그리고 압구정에서 볼 법한 멋진 패션에 중단발을 한 마지막 직원 언니 3까지.


담배 연기와 향수 냄새가 오묘하게 섞인 작은 부동산 사무실에서, 영어 밖에 하지 못하는 나를 가운데 두고 아랍어와 불어, 영어를 섞어 쓰던 튀니지 여성 4명을 보며 나는 두 가지 생각을 했다.


‘아 나는 오늘 투니스에서 가장 멋진 집을 구하겠다’ 그리고 ‘튀니지의 담배 냄새와 쟈스민 꽃 향기는 꽤 나쁘지 않구나.’


바로 다음 날부터 부동산 어벤저스 언니들과 몇 개의 집을 봤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냉장고 위에 빵가루가 가득했던 집, 가스레인지가 있는데도 석탄으로 요리를 하는 건가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드는 집을 봤다.


한국인 여대생의 위생 수준을 맞추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언니들과 첫 자취의 로망이 산산이 부서지고 있는 나 사이에 빠르게 전우애가 생겼다. 작은 푸죠를 타고 다음 집, 그 다음 집으로 향하는 우리들은 꽤 신났었던 것 같다.


그리고는 기적처럼 새하얀 대문과 고양이 두 마리가 다정스럽게 누워있는 작은 정원, 넓은 프랑스 식 살롱이 있는 나의 튀니지 집을 만났다.



짐이라고는 캐리어형 이민가방 하나뿐인 내가 그 집을 우리 집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된 날 이후로도, 부동산 사장 아줌마 아들의 4살 생일 파티에 초대받기도 하고 사무실이 있는 프랑스 식 건물 앞을 지날 때면 종종 만나기도 했다.


지금은 미간을 한껏 찌푸리고 집중해보아도 도무지 이름 한 자 기억나지 않는, 그럼에도 우리가 만난 첫날 어떤 색깔의 히잡을 쓰고 있었는지는 아직도 눈에 선한 그 언니들을 만나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끔찍한 테러의 불운을 1년어치의 따뜻한 보금자리의 행운으로, 빠르게 찾아온 외로움을 따뜻한 연대로 풀어내 준 낯설고도 익숙한 사람들을 만나 드럽게(정말이지 매우) 운수 좋은 정착기였다.


현지 부동산 언니들에게 초대 받아 함께 한 사장님 아들의 생일 파티. 지금 이 아가는 얼마나 컸으려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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