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나연 Jan 11. 2021

이 세계를 발견한 모두에게

어린이라는 세계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작은 머리로 바라본 어린이와 어른의 차이가 무엇이었길래 그토록 머뭇거렸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때를 떠올리면 막연한 두려움과 서글픔이 스민다.

매일 보이지 않는 손이 어린이의 세계로부터 나를 조금씩 끌어내고 있는 기분이었다. 어른이 되지 않는 마법약이나 요술지팡이를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고, 산타의 비밀을 듣지 않으려 힘껏 귀를 막았다. 그 시절, 경계선을 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던 나는 늘 팔다리가 저렸다.


그러나 별수 없이 어른이 되었다.

 

착착 학교를 졸업하고 후루룩 결혼을 했다. 딸, 그리고 아들을 차례로 낳았다. 내 품에서 꼬물거리는 작은 어린이들을 볼 때마다 만감이 교차했다. 이젠 정말 어른의 자리로 물러나야 했다.


말 그대로 나는 어른의 자리에 '물러나 있었다'. 내 세계에서 밀려난 것에 대한 아쉬움,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동경에 범벅되어 선뜻 어린이의 세계에 개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린이를 키운다는 건, 그래서 어른이 된다는 건 이 세계를 떠나지 않겠다는 충성맹세 같은 거라 여겼다.


딴엔 각오를 각오한 결정이었음에도 마음이 복잡했다. 다른 이들은 모성이 흘러넘쳐 아이를 바라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는데 나는 늘 배가 고팠다. 꼼짝없이 이곳에 메인 것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벅찬 불순한 불량 엄마였다.

 

그런데 아이들이란 정말 특별한 존재였다. (그래서 내가 그토록 어린이를 관두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닌가!)


심히 언짢아 악을 쓰고 울다가도 손을 내밀면 덥석 잡고 웃는다.

그 짧은 팔로 열심히도 나를 안아준다.

과하게 짊어진 책임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능력 탓에 엄마로서의 일처리, 감정처리는 사고의 연속. 도저히 멋진 척을 계속할 수 없어 미안하다 내뱉은 사과의 말을 쿨하게도 받아준다.

정말 신나게 논다.

끊임없이 멋지고 특별한 것들을 창조한다.

별것도 아닌 일에 별것인 양 당당하다.

끝도 없이 질문한다.  

자란다. 계속 나아간다.



나는 유연하고 포용적이며 대담하고 직관이 뛰어난 이 아이들에게 연신 반했다.



그야말로 발견이었다. 

'  아이들이  멋진 세계의 주인이구나!'  


그제야 내가 떠나온 세계가 떠올랐다. 한 없이 반짝이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어른이고 보호자니 내가 이끌고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버거웠는데 이젠 '가르친다'는 그럴듯한 핑계로 아이들이 지니고 태어난 저 멋진 세계를 뒤틀고 깎을까 겁이 났다. 책, 미디어, 주변에 쏟아지는 정보는 그럴듯했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이들을 잘 다듬는 법'에 관한 것뿐 '어린이의 세계를  크게 키우는 ' 같은 건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별수 없이 나는 계속 물러나 있기로 했다. 

꽃과 나무가, 야생의 동물들이 그러하듯 아이들 스스로 가장 좋은 성장의 방법을 알고 있으리라 믿어보기로 했다. 그저 멋진 공연을 즐기는 기분으로 그들의 반짝임에 경탄하기로 했다. 아이들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특별함을 계속 발견하는 것. 아이들을 아이들답게 두는 것. 그것을 해보기로 했다.  





아이들 곁에 머물다 보면 한 번씩 어린이의 세계로 통하는 문이 살짝 열리곤 한다. 좁은 틈새로도 어찌나 신나고 재미있고 찬란한 것들이 쏟아져 나오는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알아챌 수 있다. 아이들이 어린이의 세계로 넘나드는 눈부시게 빛나는 순간을.


그 순간이 너무 황홀해서 나는 아이들이 또 문을 열어주기를 고대하고 고대한다. 그 길을 오래오래 잃지 않도록. 언제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격려하고 북돋는 것. 그것이 어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일이라 믿고 있다.  






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사계절


김소영 작가의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으며 참 반가웠다. 같은 세계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의 내밀하고 농밀한 공감, (작가는 나를 모르니 그저 혼자 하는 공감이지만) 한 세계를 서로 다른 루트로 탐험해온 탐험가의 일기를 읽는 기분이었다.


'당신도 이곳을 발견하셨군요!'


정작 작가는 스스로 어린이에 대해 말할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양육자도 아니고, 교육이론이나 어린이 심리를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어린이의 세계를 지나온 우리 모두에게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대부분 어른이 되면 그때의 기억이 희미해지거나, 굳이 돌아보고 싶지 않거나, 무심히 흘려버리는거다. 어린이의 곁에 머무는 행운을 얻은 몇몇만이 운 좋게 어린이의 세계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격이 아니라 되려 책임을 운운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행운을 잡은 몇몇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 즐거운 탐험의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책임을 다해 준 김소영 작가님께, 그리고 무엇보다 이 탐험을 가능하게 한 어린이들에게 작가의 말을 빌려 인사를 전하고 싶다.


여러분을 아는 것이 저의 큰 영광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