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과 여름의 '사이'
나날이 햇살의 열기가 오르고 창 밖의 초록이 채도를 높이고 있다. 봄과 여름의 사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찾아왔다.
이 시기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늦봄'은 너무 원숙하고 '초여름'은 조금 억세다. 꼭 맞는 이름도 갖지 못해 그저 '사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지만, 눈으로 피부로 계절의 농도를 가늠하며 나는 이 계절이 왔음을 느끼고 어김없이 감격한다.
계절을 의인화할 수 있다면 봄이 가늘고 긴 팔을 뻗어 건네는 바통을 여름이 조금씩 속도를 높이며 받아 드는 순간이랄까. 바통에서 봄의 손가락이 하나 둘 놓이고 여름의 손가락이 하나 둘 감기기 시작해 손바닥에 완전히 안착하기 전. 봄과 여름이 잠시 잠깐 바통을 함께 움켜 쥔 그 찰나!
일면 괴팍하게도 나는 매화, 개나리, 진달래, 목련, 벚꽃 등등 이름난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시기엔 그다지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별별 데를 부지런히 쏘다니면서도 꽃놀이에는 유난을 떨지 않는다.
이르게 피는 꽃들은 잎을 달지 않고 꽃부터 피우는데 화사한 꽃의 얼굴보다 앙상한 가지에 더 눈이 가는 까닭이다. 그마저 우루루 피어 눈 돌릴 틈 없이 사방을 밝히면 좋으련만 개화시기가 제각각이라 채 겨울을 벗지 못한 황량함을 배경으로 혼자만 해사하게 얼굴을 밝힌 꽃나무를 대할 때면 아쉬운 마음이 먼저 든다.
그런데 이 계절, 꽃을 먼저 내달았던 가지들이 잎을 틔우고 초록의 농도를 쭉 끌어올리는 이 계절. 헐벗어 비어있던 흙땅이 어느새 초록의 이름 모를 풀들로 뒤덮이는 이 계절. 꽃나무와 잎나무, 길가의 잡초까지 초록으로 동색이 되는, 그저 생명력이 있음으로 모두가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 계절의 한 복판에 서있노라면 마치 내가 이 초록을 길어오기라도 한 냥 가슴 저 아래부터 뿌듯함이 차오른다.
누가 먼저 피었는지 뭐가 귀하고 하찮은지 구분이 되지도 구분할 필요도 없는 초록의 황홀, 그 청신함과 안온함을 오늘도 한껏 들이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