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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연 Dec 07. 2021

참 아름다워라

경이로운 욕심쟁이


천문학자가 되기를 꿈꾸던 때가 있었다. 영화 컨택트 속 커다란 헤드셋을 끼고 장엄하게 고개를 돌리는 전파망원경 사이에 폭 파묻혀 있는 조디 포스터의 모습이 그렇게 멋지게 느껴질 수 없었다. 고요한 밤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일이 직업이 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그 우아한 직업이 말 그대로 천문학적인 단위의 숫자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능력을 요한다는 것을 알고 깔끔하게 포기했지만...... 밤하늘과 드넓은 우주는 여전히 내게 못 이룬 첫사랑처럼 그립고 아련하다.

 

알래스카를 여행하다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반해 국립공원 관리인으로 자원한 청년의 기사를 스크랩해놓고 몇 번이고 반복하여 읽었던 적이 있다. 거대한 절벽과 푸른 강물이 만나는 참으로 야생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국립공원 레인저 유니폼을 입고서 어깨까지 내려오는 금발을 반짝이던 그 외국인 청년의 삶이 너무나 탐이나 있는 힘껏 째려보았더랬다.


나는 대체 왜

조디 포스터와 금발 청년이 그토록 부러운가!  




마흔을 앞둔 요즘 종종 나의 지난 생을 되새김해본다. 그저 살아가기엔 조금 무겁고, 정의 내리기엔 조금 부족한 나이. 절반의 결승점이자 절반의 출발점에 서서 새삼 어느 방향으로, 어떤 폼과 속도로 가야 할지를 가늠해보고 싶었다.

내 삶의 궤적에서 나의 눈과 발이 멈추었던 순간, 조금 깊고 큰 발자국이 남았던 순간들을 떠올려본다. 뚜렷한 목표의식이나 욕망 따위 가져본 지 오래라 되는대로 우왕좌왕 걸어온 듯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내 자취이니 지문처럼 피할 수 없는 지향을 찍었으리라.   


기억력이란 점점 믿을 것이 못되고 있지만 그 와중에 선명한 스틸 사진처럼 박제된 순간순간이 있다. 눈을 감고 리와인드 단추를 딸깍. 천천히 머릿속 영사기가 돌아간다.  


한 장 한 장이 모두 경이롭다.


멋지다, 감동적이다는 표현으론 부족했다. 삶의 셔터가 눌린 순간마다 나는 경이로움을 목도하고 있었다. 입을 떡 벌리고,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심한 난시로 번지고 흔들리는 눈을 잔뜩 찌푸려 애써 초점을 맞춰가며 감탄과 감동을 하느라 멈춰서있었다.


나는 경이로움을 좇으며 살아왔구나.




    

본래 좋은 성미는 못되었다. 감탄과 감동보다 짜증과 불만을 자주 뱉던 아이였다. 가진 것에 대한 감사보다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조급함이 앞서서 어찌나 심술을 부렸던지 차를 타고 한강 다리를 건널 때마다 우리 할머니는 주문을 외쳤다.


"이놈의 욕심보 휙 떼서 한강물에 던져 버려라!"

 

그러나 제 아무리 성마른 마음도 단번에 열어젖히는 경이로운 순간들이 찾아온다.

사자자리 유성우가 쏟아지던 밤의 옥상에, 버선코를 상큼하게도 내어 밀던 신윤복의 미인도가 걸려 있던 전시실에, 순식간에 함박눈이 세상을 뒤덮었던 3월의 어느 날에......




비단구두 사 가지고 오신다던 오빠처럼 기약 없이 드문 드문 하던 경이로움의 방문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난 후 부쩍 잦아졌다.

작디작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 작은 세포 하나를 이루고, 그것이 내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 손가락 열개, 발가락 열개, 수북한 머리칼을 달고 태어나 자고, 먹고, 옹알이를 하고, 기고, 걷고, 뛰는 모든 순간은 그야말로 경이로웠다. (동시에 기가 막히게 힘이 들었지만)

그 작은 아이들이 눈빛을 반짝이고, 환희라고 표현할 밖에 도리 없는 기쁨을 분출하고, 진력이 날 정도로 울어재끼고, 타협의 틈 없이 단호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때 나는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쾌감을 느꼈다.


아이들이 제 속에서 자기다움을 길어 올리는 순간을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하는 것. 그 경이로움의 첫 증인이 되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유일한 일이 되었다.


내 삶에 경이로움을 선사하는 소중한 존재들을 정말 잘 기르고 싶었다. 생전 처음 하는 육아란 모르는 것 투성이었지만 못된 성미를 다 못 버린 탓에 육아서나 육아 방송은 잔소리처럼 느껴져 볼 수가 없었다. 이토록 놀라운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 대상'으로 '돌봄이 필요한 약한 존재'로 대하고 싶지 않았다.


맨땅에 헤딩을 하며 보내는 여러 날. 무릎을 탁 치고 벌떡 일어서게 하는 육아 지침을 예상치 못한 곳 - 마다가스카르 거북이의 일생이나 울진 금강송 군락의 생태계 - 에서 발견하곤 했다.

혼자 힘으로 알을 깨고 나와 무수한 천적의 공격을 피해 용케 바다까지 기어가는 아기 거북이들로 새까맣게 뒤덮인 해변, 산불이 덮쳐 시커먼 재만 남은 산등성이를 일 년 새에 파랗게 되살려낸 숲의 치유력은 강하고 아름다웠다.

驚異 - 놀랍고 신기하다는 말뜻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경이로운' 자연의 풍경을 마주할 때마다 오은영 박사님의 단호함보다 단단한 무언가가 내 안에 하나씩 영글어 갔다.

 

경이로움은 내가 수고하여 얻는 뿌듯함, 성취감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감정이다. 개인의 힘과 능력, 노력과 상관없이, 오히려 아무런 준비도 기대도 하지 않았을 때 한 밤의 큰 도둑같이 찾아온다. 이 장엄하고 장대한 우주의 질서 앞에서, 태초부터 이어져 온 생명의 비밀 앞에서 내가 애써 쌓은 담장이란 얼마나 무력한가 자각하는 그 순간 찾아온다.


내가 작아질수록 세상은 더없이 경이로웠다.      




한 번씩 걷잡을 수 없는 불안이 찾아들 때가 있다. 불안이 몸집을 불릴 때마다 번번이 잡아먹힐 수밖에 없었는데 어느 날 드디어 탈출법을 발견했다.


몸을 작게 웅크리고 눈을 감는다 -  내 몸에서 빠져나와 작은 나를 내려다본다 - 지붕 위쯤 올라가서 나를 내려다본다 - 남산 꼭대기쯤 올라가서 나를 내려다본다 - 대기권까지 올라가서 나를 내려다본다 - 달에 서서 나를 내려다본다 - 우리 은하의 끝에서 나를 내려다본다 - 안드로메다 은하에서 나를 내려다본다 -......


유체이탈 기술을 습득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ㅎㅎ) 이 거대한 우주의 관점에서 보자면 작고 작은 내 안에 싹튼 불안이란 얼마나 하찮고 가소로운 것인지. 까짓 불안쯤 콧김 한 번으로 날려버리는 거지!


나는 작고, 나를 두렵게 하던 문제란  작고,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무한하다것을 억지로 되뇌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요동이 줄어들었다. 그렇다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생각할 필요도 없이 감각적으로 경이로운 세계를 경험할  있다면  불완전한 세상도 살만하지 않을까?    



그래서 무작정 넓은 곳에 나가 아이들을 던져놓기 시작했다. 이 작은 나는 이 큰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없으니 자연이, 온 우주가 함께 키워달라고.


내 아이들이 영어 유치원에서 혀를 유려하게 굴리는 법을 배우는 것보다 잔디 언덕을 구르며 깔깔대는 법을 먼저 배웠으면 했다. 세련된 옷차림에 신경 쓰기보다 주저 없이 모래밭과 개울물로 뛰어들 수 있는 자유로운 마음을 가졌으면 했다. 신상 장난감보다 넘실대는 바다와 우뚝 솟은 산, 시시각각 표정을 바꾸는 하늘의 경이로움에 손을 뻗을 수 있었으면 했다.


이 아름다운 세계를 감탄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내가 가르치고 싶은 유일한 것이다.


소박한 척 적어놓고 보니 이보다 큰 욕심이 없다. 우리 할머니의 원과 달리 나는 여태껏 그놈의 욕심보를 버리지 못하고 주렁주렁 달고 사는가 보다.  

욕심쟁이 된 김에 하나만 더 욕심내지 뭐.


이 경이로운 아이들이 이 경이로운 세상과 마주하는 참으로 아름다운 순간들을 가능한 많이 기억하고 싶다. 이것이 내가 삶을 기록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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