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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연 Nov 27. 2020

너와 함께 걷고 싶은 그 골목

공주 원도심 산책



주유소 옆 언덕을 끝까지 오르면 보이는 큰 은행나무가 서있는 집,  
나는 나무 대문 집 딸이었다.




우리 앞집은 빨간 벽돌벽에 짙은 색 문이 달린 갑진이네, 옆집은 나무 덩굴이 잔뜩 늘어진 낡은 초록 대문의 해태집, 건너편 신문사 할머니네는 양철 대문이 달린 이층 집이었다. 종종 큰 가방을 들고 놀러 오던 아모레 아줌마네는 제법 먼 골목을 지나 만나는 작은 대문이 있는 집이었고,  옥수수를 양푼에 가득 쪄서 머리에 이고 우리 집 벨을 누르던 옥수수 할머니네 떡볶이집은 동네 유일의 놀이터 앞, 최고 명당자리였다. 


스무 살이 될 때까지 그 오래된 동네에 살았는데 골목과 담벼락에 걸린 추억은 학교도 들어가기 전, 그 어리던 때의 것만 떠오른다. 

봄이 되었다 싶으면 담장을 한참 넘어와 짙은 향을 찔러대던 옆집 보랏빛 라일락 나무가, 여름이면 담벼락에 흐드러지던  빨간 장미 덩굴이, 가을이면 피아노 학원 가는 길에 철벅 철벅 떨어지던 오동잎이, 겨울이면 해태집 슬레이트 지붕 밑에 조롱조롱 달리던 고드름이 계절의 상징인 양 박혀있다.

 

하루도 회사를 쉴 수 없다는 아빠와, 시어머니 식사를 챙겨야 한다며 외출도 않던 엄마 덕에 동네 밖을 벗어난 기억이 별로 없음에도 내 방 창문 앞에서 철마다 옷을 갈아입던 은행나무와, 계절을 충실히 담아내던 오래된 골목의 풍경, 집집마다 다른 대문과 (집집마다 다른 대문 열리는 소리!) 대문 뒤 더 다양한 사람들 덕에 나의 유년의 감성과 경험은 통통히 살을 채워갔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 골목이, 그 풍경들이 나를 키웠다고.






그러나 어리고 철없던 나에겐 오래된 동네, 오래된 집의 삶은 고달픈 면이 더 많았다. 십 대 무렵의 기억이 없는 건 불평불만과 맞바꿔서인지도 모르겠다.

비만 쏟아지면 지붕이 새는 통에 난데없는 물벼락을 맞기도 하고, 겨울엔 이불에서 빠져나오자마자 파카를 챙겨 입지 않으면 화장실까지 가는 길에 동사할 지경이었다. 쥐와 바퀴벌레는 도시 생태계의 일부라는 것을 자연스레 학습했고, 동네 개들이 여기저기 싸놓은 똥을 밟지 않고 술래잡기를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열쇠로 문 하나만 잠그면 도둑 들 걱정도 없고 (우리는 집을 지키느라 누군가 한 명은 항상 집에 남아있어야 했다), 한걸음만 나가면 학원이며 식당이 줄을 지어 있고, 한 겨울에도 반팔만 입고 지낼 수 있다는 아파트가 즐비한 동네로 나도 가서 살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사집과 해태집이 헐리고 네모 반듯한 다세대주택이 들어섰다. 라일락 나무가 베어진 자리엔 새로운 옆집이 높다랗게 세워졌다. 사방이 높아지는 덕에 어디서나 우리 집 마당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떠밀리듯 (나는 기꺼이) 집과 동네를 떠났다.



우리집 대문과 함께한 유일한 사진. 1985년식 대문과의 깔맞춤.







어느덧 아파트에서 보낸 시간이 내 일생의 반을 채워가고 있다. 

나의 아이들은 아예 아파트에서 나고 자랐다.

아파트니 너무도 당연하게도 앞집, 옆집, 옆 옆집이 모두 같은 대문을 달고 있다. 그러나 숫자 몇 개만으로 그 똑같은 대문들은 완벽하게 구별되며 세상 모든 택배가 문제없이 제집에 도착한다.


우리 엄마가 수화기를 붙잡고 감나무가 아니라 은행나무, 철 대문이 아니라 나무 대문이라고 거듭거듭 알려주어도 길을 잃어버리던 소포들이 말이다.



그런데 이제와 참으로 변덕스럽게도 이 놀랍도록 편안하고 정확한 아파트 시스템이 씁쓸하게 느껴진다. 내 아이들이 숫자로 불리는 것이, 나처럼 은행나무도, 감나무도, 대추나무도 갖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허나 이제와 나무를 심어 줄 수도, 대문을 바꿔 달아 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서 서울 한복판, 반듯하게 정비된 동네에 살면서, 아니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극성맞게 오래된 골목을 찾아간다.
21세기 아이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20세기 엄마의 향수를 끼얹는 일인지  모르지만, 낯선 이에 대한 경계심에 바이러스의 위험까지 얹어진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꼭 닫힌 대문들로 가득한 풍경 대신 넘겨다 봄직한 담장이 이어지는, 슬쩍 열린 대문이 반겨주는 골목을 내어주고 싶었다.






제민천을 따라 걸으며 만나는 풍경들



충청남도 공주에는 '원도심'으로 불리는 지역이 있다. 마을을 가로질러 흐르는 제민천을 중심으로 좌우로 늘어선 오래된 골목이 만들어 내는 풍경이 소담하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쓰레기로 뒤덮인 하천과 사람들이 떠나간 골목을 동네를 사랑하는 지역주민과 예술가들이 힘을 모아 되살렸다고 한다. 깨끗해진 제민천엔 물고기가 살고 오리와 백로가 날아든다. 가난한 학생들이 거주하던 하숙집은 여행객을 위한 게스트하우스가 되었고, 무너졌던 담장엔 귀여운 벽화가 자리를 잡았다.



골목다운 골목산책



오랜만의 여행이라 이리저리 무심히 기웃거리던 발걸음이 바닥에 그려진 사방치기판 앞에 반갑게 멈춰 섰다. 우리의 놀이는 주변을 뒤져 적당한 돌멩이를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손에 착 감기며 적당한 무게감으로 자리에 안착하는 돌을 만나기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우거진 수풀 속을 무릎으로 한참을 뒤지고 나서야 게임이 시작되었다. 돌이 원하는 자리에 떨어지지 않는 것부터, 금을 밟았니 안 밟았니 논쟁까지 골목은 금세 시끄러워졌다. 숫자가 매겨진 네모칸을 하나씩 정복해나가는 그 단순한 놀이를 하며 얼마나 깔깔대고 엉엉 울었는지. 그렇게 골목에서 몇 시간을 보냈는지. 그리곤 다음날 그 자리에서 또 몇 시간을 보냈는지!


시시한 놀이도 별스럽게 만드는 골목의 마법



이 동네의 작은 책방은 또 얼마나 정겨운지. 호기롭게도 무인 책방을 표방하며 주인장 전화번호 한 줄만 자물쇠에 걸려있다. 



무인서점 가가책방



수화기 신호음 저편에서 자물쇠의 네 자리 번호를 불러주는 것으로 책방 입장절차는 끝.

 

뻑뻑한 문을 밀어 열고 안내서에 적힌 내용에 의지하여 전등 스위치를 찾아 올리고 전기난로에 불을 지핀다. 책방 문 열리는 소리에 어디선가 능청맞게 나타난 길고양이 간식도 챙겨주고, 사방을 눈으로 뒤적이다 테이블 위에 놓인 방명록에 한참을 끄적이고 있노라니 그 옛날 우리 동네 구멍가게에 들어앉았는 것도 같고, 옥수수 할머니 떡볶이집에서 내다보던 풍경이 슬쩍 비치는 것도 같았다. 내 아이들에게는 그런 향수가 있을 리 만무하지만, 그래서 지금 이 아이들에겐 어떤 기억이 스칠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지금이 먼 훗날 추억할 그럴듯한 향수가 되어주지 않을까.


아 그때 그 책방 문이 참 삐걱거렸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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