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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woo Apr 20. 2023

취준을 끝내며

잃어버린 것들

나는 훨씬 더 밝고 낙천적이었다. 최근 취직준비를 하면서 그 많던 잠을 잃어버렸고, 몸무게는 6kg이나 빠졌으며, 좋아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다 잊어버렸다.


일년 남짓한 기간이 특별히 어둡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공부를 하는 기간동안 같은 길을 걷는 동료가 생겨서 즐겁기도 했고 또 이전에 배움에 많이 목말랐던 만큼 매일매일 성장하는 느낌이 좋았다. 또한 내가 어떤 것을 잘하고 못하는지를 훨씬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다만, 내가 좋아하던 놀이, 가족과 친구들, 즐겨하던 취미들, 심지어 맛있어하던 음식과 차츰 멀어지면서 그것들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졌다.


잃어버렸던 취미 중 하나는 운동(체조)이다. 이번에 다시 운동을 시작했는데 오래 쉬었다 하니까 되던 동작도 잘 안됐다. 운동만큼은 가장 최근까지 유지했던 습관이었다. 작년 초겨울까지는 운동을 했었는데, 준비하던 팀프로젝트가 바빠지면서 도저히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졌었다. 지난 달에 오랜만에 체육관을 갔는데 선생님이 무척 반가워해주셨다. 준비하던 건 잘 마무리됐냐고 물어봐주셨다. 잘 끝났다고 짧게 말씀드리고 바로 운동을 시작했다. 그동안 오래 쉬었고 몸무게도 줄어서(근육이 빠져서) 많이 힘이 들었지만 끝나고 집에 갈때 무척 상쾌하고 개운했다.


너무 오래 연락을 못했기 때문에,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에게 연락하기가 쉽지 않다. 프로젝트 발표가 1월초였어서 연말연시에 오는 문자에도 제대로 답을 해주기가 어려웠었다. 당시 오전부터 작업을 하다가 새벽 세네시에 자는 생활이 반복됐었고, 혹시라도 내가 지쳐서 무심하거나 짜증이라도 부릴까봐 두려워서 전화를 받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중에 내가 먼저 연락할 테니 그때 만나달라고 말했다. 친구들은 흔쾌히 오케이했지만 나혼자 괜히 소심해져서는 어떻게 서두를 뗄지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그중 한 친구는 그 사이에 결혼을 했다. 나는 간신히 결혼식에 참석만 했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도움이나 응원을 많이 해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크다. 이 친구를 잃어버린다면 순전히 내탓이다. 물론 나에게 너무나 중요한 시기였기에 나에게 집중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지만, 내가 친구들을 많이 좋아했기 때문에 신경을 써주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나는 돈도 많이 썼다. 번 돈을 거의 공부에 다 썼다. 꼭 필요한 공부였던 것은 맞지만 부모님께 선물하려던 것, 개인적으로 가지고 싶고 하고 싶었던 것들이 몇개 있었는데 그것들을 모두 포기했다. 이제부터 다시 모으기 시작해야 해서 약간 아찔하다. 다시 모을 수 있을까? 얼마나 모을 수 있을까. 무너진 금전계획을 다시 세워야 하는데, 막막하다.


그리고 또 나는, 어릴 때부터 게임을 오랫동안 좋아했었고 많이 했었다. 게임을 좋아하는 마음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오랫동안 안해서 손과 발(오락실도 자주 갔었다)이 굳었다. 게임을 나름 잘하는 아이였는데, 잘 못하게 되니까 초능력을 잃어버린 히어로처럼 머쓱하다. 내가 게임을 못하는 동안 플스4는 고물이 되었고, 유행하는 타이틀이 세번은 더 바뀌었다. 더 가격이 낮아지기 전에 당근에 팔았다. 어쩌면 게임을 예전만큼 사랑하지 않게 된 것일지도? 그렇다면 나를 구성하는 정체성의 일부가 사라지는 것인데, 괜찮은 걸까.


새로 가는 회사는 게임을 개발하는 곳인데, 일이 많은 편이라고 들었다. 일과 운동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은 아마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업무 난이도가 높아서 팀에 잘 적응하려면 앞으로 공부할 것도 많을 것 같다. 나는 좋은 팀원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일을 정말 잘하는 사람이고 싶다.


배우 오정세 씨가 했던 수상소감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100편의 작품을 똑같은 마음으로 똑같이 열심히했는데 100편 모두 결과가 다르다는 건 참 신기한 것 같습니다. 어떤 작품은 성공하기도 하고, 어떤 작품은 심하게 망하기도 하고. 어쩌다보니 이렇게 좋은 상까지 받기도 하고.
열심히 자기 일을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똑같은 결과가 주어지는 건 아니어서 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망하거나 지치지 마시고 포기하지 마시고 그일을 계속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자책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탓이 아닙니다. 계속 하다보면 평소와 똑같이 했는데 위로와 보상이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곧 반드시 여러분만의 동백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이직일 수도 있지만, 사실 나에게 이번 이직은 엄청난 행운으로 느껴진다. 면접을 100군데도 넘게 봤고 다 똑같이 열심히 했는데, 결과는 다 달랐다. 이것을 행운이 아니면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렇기에 나는 앞으로, 이게 순전히 운이 아니라는 걸 실력으로 증명해야만 한다.


회사를 다니던 시기까지 포함해서 약 1년 반의 이직+취직준비를 끝내며 내가 잃어버렸다고 느끼는 것들에 대해 적어보았다. 이것들을 다시 되찾게 될지, 아니면 내 인생의 한 챕터에 고이 넣어두고 다음 챕터로 넘어가게 될 것인지 현재로서는 잘 모르겠다. 입사 전까지 약간의 시간이 주어졌는데, 그동안 공부도 하고 앞으로의 계획도 세워보아야겠다.


내가 꿈꾸던 삶에 한걸음 가까워져서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든다. 체력을 잘 관리하면서 좋은 아키텍처를 설계하는 개발자로 성장해나가고 싶다.






Photo by Aline de Nadai on Unsplash




사실 이 글은 면접 전에 미리 써놓은 글이다. 혹시 정말로 입사하게 되면 발행하려고 했었다. 그때와 달라진 부분들을 약간만 고치고 대부분 그때 적은 그대로 발행한다. 정말로 발행하게 되어서 신기하고 기쁘다.


면접을 준비하면서 지금의 마음을 절대 잃지 않겠다고 수없이 다짐했다. 앞으로 나태해지는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종종 이 글을 들여다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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