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woo Sep 10. 2023

망한 걸 망했다고 인정하기

회사생활

입사 5개월차에 접어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내 회사생활은 망했다.

..

ㅋㅋㅋ



1. 코딩스타일과 컨벤션 맞추기

팀마다 다르겠지만 우리 팀은 모든 팀원이 한 사람이 짠듯 똑같이 느껴질 수 있도록 코딩스타일을 맞추기로 되어있다. 가수의 칼군무처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을 지향한다. 이건 팀의 문화이기에 당연히 따라야 하는 것이라서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코딩 컨벤션 가이드가 마련되어있지 않아 "이것도 맞춰야 하는 규칙이 있었어?" 하는 시행착오들이 종종 발생한다. 이것을 두고 망했다고 말하는 건 과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시행착오를 직접 몸으로 겪는 내 입장에서는 이 괴로운 시행착오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이므로 망했다고 느껴진다. 내가 스타일을 완전히 맞출 때까지 계속 리더의 질책을 받아야 한다. 다른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2. 코드리뷰

리더는 나와 생각의 결도 말하는 방식도 많이 다르다. 특히 코드리뷰 말투가 감정적이고 짜증을 섞을 때도 있다. 그렇다고 팀원으로서 감히 팀장에게 말투를 고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 말투는 사람마다 자율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하기에 내쪽에서 부드럽게 받아들이는 게 맞는 것 같다. 문제는 코드리뷰 규칙이다. 우리팀은 코드리뷰 규칙이 없다. approve 규칙(몇명 이상 approve해야 머지 가능한가)은 있다. 암묵적으로 리더의 승인이 가장 중요하게 받아들여진다. 코드리뷰 규칙이 없는 MR은 무법지대로 느껴진다. 가령, '비판적인 리뷰는 근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같은 룰은 없고, 감과 느낌에 의존한 리뷰도 종종 발생한다. 실력이 쌓이면 너무 당연해서 굳이 근거를 들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생기는 것에는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모두의 실력이 다를 때는 근거를 대는 게 효율적인 리뷰를 도와준다고 생각한다. 열마디 말보다 근거와 참고레퍼런스 하나가 더 좋은 설명을 해주기 때문이다. 코드리뷰 규칙의 필요성에 대해 의견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3. 재미

나에게 있어서 재미는 무엇을 만드는지에서도 오지만 어떤 팀에서 어떻게 일을 하는가에서도 온다. 학술 세미나와 스터디를 열고 지적 교류를 하는 팀과 함께라면 무슨 일이든 재밌다. 지금까지 거쳐온 팀들은 다 장단점이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언제나 이러한 재미는 꼭 있었다. 지금은 없다.


4. 업무 분배

어떤 프로젝트에 같이 배정된 동료와 나에게 업무 티켓이 분배되는 방식이 이해되지 않는다. 리더는 나에게 굉장히 많은 티켓들을 할당하고, 내가 맡고 있는 다른 프로젝트들이 훨씬 중요하다며 이 티켓들은 그 일을 처리한 후 남는 시간에 작업하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어서 대답하지 못했다. 동료 입장에서는 업무가 나에게 몰려 프로젝트 진행이 안되면 본인에게도 좋지 않으므로 티켓 분배를 다시 해달라고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다 리더는 마지못해 '쉬운 일만 가져가라' 라며 동료에게 주었다. 노파심에 말하는데 그 동료가 너무 일을 못하는 그런 상황은 결코 아니다. 일을 잘하는 동료다. 그러면 내가 일을 못하는 걸까? 흐음. 일을 못하는 사람에게 티켓을 왕창 몰아주어야 하는 상황이 있을까? 또 노파심에 말하는데 업무적인 괴롭힘은 아닌 것 같다. 그럼 왜 그러시는 걸까? 나도 그걸 잘 모르겠다.


 

망한 걸 망했다고 인정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필요했다. 몸이 아프게 된 사람들이 본인이 아프다는 걸 인정한 후 제2의 인생을 사는 것을 유튜브에서 종종 보았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것은, 그 유튜버들처럼 나에게 찾아온 어려움을 받아들이기 위함이다. 자꾸만 생각 가득해지는 머릿속을 좀 비워내고 싶기도 했다. 혹시 모른다. 나중에 이 글을 다시 읽었을 때는 지금의 미스터리가 풀려있을지도.


 모든 게 더 나아지길. 나아지지 않더라도 이 시간이 후회로만 가득하지는 않길. 



Photo by Joshua Hoehne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취준을 끝내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