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공녀’(2017)의 주인공 미소는 가사도우미다. 그는 날마다 열심히 일하지만, 집세가 올라 자신이 좋아하는 위스키, 담배 중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그리고 그가 포기한 것은, 다름 아닌 ‘집’이다. 미소는 집을 포기한 후, 대학 시절 함께 밴드 생활을 하던 부원의 집을 차례대로 찾아간다. 그렇게 다시 만난 이들은 미소보다 경제적으로 나은 처지에 있으나, 각자의 곤궁함과 피로함을 떠안고 살아간다.
누군가는 선망하던 기업에 들어가, 점심시간을 쪼개 포도당을 맞으며 일한다. 또 누군가는 아내와 이혼하고, 20년간 대출금을 갚아야 할 집에 혼자 남는다. 그들은 사회가 제시한 평균값에 가까운 삶을 사는 이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미소보다 훨씬 행복해 보이냐고 묻는다면, 글쎄.
모두가 자신에게 더 중요한 가치를 선택하고, 일부는 포기하며 산다. 미소는 위스키 한잔, 담배 한 모금, 사랑하는 남자친구만 있다면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에겐 위스키, 담배, 남자친구가 월세방보다 더 집다운 대상인 셈이다. 진부한 표현으로는 마음의 안식처. 오히려 월세방 같은 건 포기할 수 있는 영역에 가깝다.
나에겐 그런 안식처가 집(자취방), 맥주 그리고 애인이다. 3가지 요소는 각각 다음을 대변한다. 나를 피로하게 하는 외부요인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시공간, 나를 자유롭고 편안하게 만드는 존재, 그리고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 남들보다 돈을 좀 늦게 모아도, 좀 더 많이 일해도, 좀 덜 좋아하는 일을 해도 괜찮을 만큼, 저 3가지를 사랑한다.
한때 내 공간을 갖는다는 건 염치 없는 일이었다. 본가엔 내 방이 없었고, 억지로 내 방을 만들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나만의 공간을 가지기 위한 유일한 답은 자취였다. 그렇다고 본가를 나와야 할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자취의 당위성은 오직 '내가 그러고 싶어서.'였다. 자취하는 건 그야말로 사치, 혹은 돈 지랄이었다. 심지어 내겐 자취를 할 만한 돈이 없었고, 월세와 생활비를 동시에 벌기 위해선 휴학을 해야 했다.
그래서 난 염치없고 사치스러운 선택을 했다. 자취하기 위해 휴학을 하고, 그렇게 아르바이트만 하며 1년을 보냈다. 대학교 졸업 후엔 월세와 생활비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빠르게 취직했다. 진로 고민은 최대한 짧게 하고, 가장 먼저 합격한 회사에 곧장 입사했다. 내가 사랑하는 걸 계속하기 위해 한 모든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 나를 염치없게 할 만큼 사랑하는 대상이 있다는 건, 삶의 큰 축복이니.
행복이란 오롯이 나에게 초점을 맞춘 채 우선순위를 선택해 나가는 일 같다. 더하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고 남기는 일에 가깝다. 내가 가진 것 중에 어떤 걸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지 알고 선택하는 것이다.
내가 살아가며 놓칠 수 없는 3가지를 답하고 알았다. 행복에 필요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미소처럼 극한의 상황에 몰려 선택하기를 종용받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면 좋겠다. 나의 안식처는 무엇인지, 내 행복을 위해 내가 선택한 것과 포기한 것은 무엇인지. 지금 나는 안녕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