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안녕, 나의 우주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지금도 잘 알지 못한다. 눈을 떠보니 병실로 옮겨지고 있는 중이었다.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추워서 나를 옮기고 있는 누군가에게 너무 춥다고 말하니 곧 괜찮아질 거라 했다. 원래 이런 건가 보다 싶었지만 당장은 그 추위가 괴롭고 조금 걱정돼 치즈푸딩에 대해 물을 정신은 없었던 것 같다. 병실에 도착하고 잠시 후 남편이 들어왔다. 남편의 표정엔 여러 감정이 담겨있었다. 걱정, 미안함, 안도감, 설렘 등. 분만실 앞에서 헤어지며 오늘이 디데이일 거라고 그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하필 이틀 전 싸운 터라 이 응급상황이 본인 때문일 거라 자책했을지도 모른다. 남편이 다가와 내 머리를 쓰다듬자 그제야 추위가 가시고 긴장이 풀렸다. 눈물이 났다.
“아기는?”
“사진 보여줄게. 너무 예뻐.”
막 태어난 아기는 못생겼다는데 치즈푸딩은 달랐다. 이렇게 예쁠 수 있는 걸까, 마음이 벅차올랐다. 남편은 차근히 치즈푸딩의 상태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작게 태어나 신생아중환자실에 들어갔으나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몇 킬로그램인데?”
“1.7킬로그램."
치즈푸딩은 주수에 비해 내내 작은 아이였다. 때문에 초음파를 볼 때마다 아이의 무게에 예민해졌더랬다. 마지막 초음파에선 2킬로그램 정도로 예상되었는데 어째서 1.7킬로그램밖에 안 되는 걸까 싶었다. 하지만 그 무게감에 대해 잘 가늠할 수 없어 남편이 괜찮다 하니 괜찮겠지 모든 걱정을 접었다. 나는 이틀 뒤 신생아중환자실 면회 때나 치즈푸딩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아이를 응급으로 낳을 수밖에 없었던 건 임신중독증 때문이었다. 임신중독증이란 고혈압과 동반되어 소변에서 단백 성분이 나오거나 간 기능 저하, 신 기능의 악화, 폐부종 등이 나타나는데 심하면 산모나 태아의 생명도 위험해질 수 있는 질환이었다. 출산 전날 위경련이라고 느꼈던 통증도 간 때문이었다. 그걸 미련하게 참아냈다니. 그런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왜 아픈 걸 참는가. 쓸데없이... 나와 아이가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선 아파도 괜찮다고 말하는 게 미덕인 줄 안다. 하지만 이런 일을 겪고 나니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수선 떠는 게 좋을 것 같다. 몸뿐 아니라 마음의 아픔도. 나는 임신 중 많은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했는데 찍소리도 하지 못하고 상처들을 받아들여야 했다. 일을 더 크게 벌이지 않기 위해선 참고 또 참아야 했다. 그간 참은 것들이 독이 되어 이런 상황까지 온 건 아닐까, 잠시 그런 생각도 했더랬다. 하지만 다 떠나서 이 무사한 상황이 감사했다. 다행이고 또 다행이었다. 그리고 한 다짐을 하게 됐다. 무수히 참고 살았을 엄마에게 ‘네가 참아’란 말을 들으며 자랐지만 나는 치즈푸딩에게는 그런 말은 가르치지 않기로. 특히 여자들에게 더 강요되는 참아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 아프면 하지 마, 아프면 다 관둬.’
나는 내 딸이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나처럼 말고, 스스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가 되기를.
이틀 뒤, 드디어 치즈푸딩을 볼 수 있는 날이 왔다. 신생아중환자실 앞에는 면회를 기다리는 부모들이 있었다. 어떤 엄마들의 눈시울은 붉어져 있었다. 간호사가 아기 태명이나 이름을 부르면 그 부모가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드디어 내 차례. 문 안으로 들어가 휴대폰을 알코올 솜으로 닦고 손도 깨끗이 씻었다. 그리고 비닐로 된 수술복 비슷한 것도 입어야 했다. 그리고 다시 또 다른 문이 열리자 인큐베이터들이 보였다. 간호사가 치즈푸딩이 있는 인큐베이터로 나를 안내했다. 처음으로 만나는 내 아가.
치즈푸딩을 본 나는 많이 당황했고 그 자리에서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1.7킬로그램의 아이는 정말 작았다. 이렇게 작은 생명체가 숨을 쉬고 살아있다는 게 기적과 같았다. 감사했다. 살면서 이렇게 감사한 순간이 또 있었을까. 작은 아이, 그녀를 보는 순간 그녀는 내 전부가 되었다.
안녕, 나의 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