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젖과의 싸움
1.7kg의 치즈푸딩은 생각보다 정말 작았다.
“용복아, 용복아.”
나는 울음이 가득 섞인 목소리로 아이의 태명을 계속 불렀다. 태어나자마자 엄마의 품에 안겨보지도 못하고 엄마의 목소리도 듣지 못한 채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있는 아이가 안쓰러웠다. 당장 그녀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미안하고 답답했다. 면회 시간은 단 10분. 돌아서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또 언제 볼 수 있을까... 면회는 월, 수, 금에 한 번, 부모 중 한 사람만 할 수 있었다. 남편도 아이를 봐야 하니 나는 며칠을 또 기다려야 했다. 눈물범벅이 된 채로 입원실에 돌아와 펑펑 울었다. 다 내 잘못 같았다. 임신 기간 동안 왜 그렇게 많은 것에 신경을 쓰고 속상해했는가. 그때는 중요하다 생각했던 문제들이 아이가 태어나자 다 보잘것없는 문제가 되었다. 내가 좀 더 너그럽고 편안한 마음으로 지냈다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까. 치즈푸딩은 미숙아였기에 인큐베이터에 있는 동안 여러 검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그 검사들은 사뭇 무섭게 들리기도 했다.
죄책감과 불안함에 휩싸인 밤, 속상한 감정들을 혼자 감당하기 버거웠다. 이미 두 차례 출산 경험이 있는 사촌동생 S에게 연락했다. S는 늘 이성적인 편이었고 그게 항상 위로가 됐다. 아니, 위로라기 보단 정신이 번쩍 드는 ‘맞는 말’을 듣고 나면 희한하게 생각의 끈이 짧아지고 감정이 단순해졌다. S에게 간결한 답장이 왔다.
‘언니, 우리 둘째도 작게 태어나 인큐베이터에 있었어. (처음 듣는 얘기였다.) 그런데 아무 문제없었고 그러니까 지레 겁먹지 마. 그리고 아이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 전문가들이 키워준다는데 얼마나 고마워. 퇴원하면 안기 싫어도 안게 될 테니까 지금은 언니 건강만 잘 챙기자.’
역시나 이번에도 맞는 말만 하는 S. 지금은 내 속상한 마음을 앞세우기보단 치즈푸딩의 건강이 젤 중요한 때였다. 지금 아이에게 필요한 건 엄마보단 의료진들의 세밀한 보살핌이 맞았다.
‘언니, 근데 내가 아기 태어나면 준비해야 하는 거 엑셀 파일로 보내줬잖아. 그거 열어 봤어?’
당연히 열어보지 않았다. S는 그럴 줄 알았다며 당장 필요한 아기 물품 리스트 20가지를 보내왔다. 아기침대, 기저귀 갈이대, 목욕 욕조, 가재수건, 속싸개, 젖병 등이 적혀있었다. 어떤 걸 사야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이 브랜드 명과 필요한 수량까지 같이 보내준 그녀. 나는 정신을 차리고 리스트를 보며 하나씩 주문하기 시작했다. 처음 엄마가 된 나는 아이에게 뭐가 필요한지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하나 알게 된 건 내 감정은 아이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먹고, 자고, 싸는 일을 바로바로 해결해 주는 것이 엄마의 역할이며 더불어 무조건적인 사랑만 주면 된다. 내가 힘들고 속상한 마음은 아이 앞에선 다 뒷전이다. 그렇게 나를 서서히 버리고 엄마라는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이 시작된 것이다.
여자의 몸은 어째서 이렇게 신비로울까. 출산하고 며칠 뒤, 가슴이 단단해지더니 끝에 젖이 맺히기 시작했다. 이날만을 기다렸다. 모유, 특히 초유가 좋다는 건 누구나 아는 이야기. 치즈푸딩은 2kg이 되어야 퇴원할 수 있다고 했다. 신생아중환자실에서는 매일 아이의 몸무게를 보내주었는데 무게가 늘기는커녕 점점 줄었다. 양수에서 불어있던 무게가 빠지는 거라고 했다. 아이를 안아볼 날이 까마득히 멀게 느껴졌다. 때문에 나는 하루빨리 모유를 잔뜩 짜서 아이에게 가져다주고 싶었다. 간호사에게 젖이 돈다고 말하자 젖병과 유축기를 가져다주었다. 유축기로 짠 모유를 팩에 담아 얼린 뒤 면회 때 신생아중환자실에 가져다주면 된다고 했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은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간호사가 나간 뒤 유축기를 살폈다. 기계 다루는데 능하지 못한 나는 유축기와 호스, 깔때기, 젖병의 결합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유튜브와 블로그 등을 한 시간 정도 찾아보고 나서야 한쪽 가슴에 깔때기를 대고 기계를 작동시켰다. 가슴이 작은 편이 아니기에 모유가 넘치게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웬 걸.
이때부터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젖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게다가 슬프게도 나에게 슬픈 젖꼭지증후군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