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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치즈푸딩

4회 - 젖과의 싸움 2

by 장정윤

출산 전, 별로 알고 싶지 않았지만 (알면 더 무서우니까) 친구나 지인들에게 출산 후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어쩜 그렇게 순탄한 출산이 하나 없을까. 자연분만이건 제왕절개건 엄마의 고통으로 한 삶이 시작되는 거였다. 기꺼이 살을 찢는 일을 감행하는 엄마들은 얼마나 용감하고 씩씩한가. 하지만 그 용감하고 씩씩한 엄마들은 왜 그만큼 인정받고 대접받지 못하는가... 아, 이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해보기로 하자.


제왕절개는 피부 포함 총 8개의 층을 절개하는 거라고 했다. 하반신 마취를 위해 척추에 주사를 놓아야 하고 정신은 있기에 살을 가르거나 골반이 덜컹 거리는 느낌 등은 그대로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낳는다고 끝이 아니다. 자연분만은 통증 선불제, 제왕절개는 통증 후불제라는 말은 이미 많이 들어봤다. 제왕절개 후엔 너무 아파서 꼼짝도 할 수 없고 회복도 느려 입원도 오래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난 통증보다 두려운 게 있었다. 출산 후엔 자궁에서 오로라는 것이 새어 나와 패드를 깔고 누워있어야 하는데 스스로 움직일 수가 없으니 패드를 남편이 갈아줘야 한다고 했다. 또 소변줄을 뺀 뒤엔 성인용 기저귀를 입게 되는데 그것도 남편이 갈아줘야 하고 소변이나 대변을 보기 위해 변기에 앉았다 일어설 때도 남편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생각만 해도 수치스러웠다. 꼼짝도 못 하는 몸을 남편에게 맡긴 채 하체를 훤히 다 드러내놓고 남편이 낑낑거리며 기저귀를 갈아입히는 상상을 하니 눈물이 날 정도로 싫었다. 우리 부부는 그런 부분에선 그렇게 친밀하지 않다. 시험관을 할 때 남편에게 뱃살을 잡고 주사 놓는 모습도 보이기 싫어 방에 혼자 들어가 문을 닫았다. 남편 또한 옷을 홀딱 벗고 돌아다니는 일도 없었고 대놓고 방귀를 뀌는 일도 없었다. 나름 서로의 환상을 깨지 않으려고 노력한 것인데 한순간 그 환상을, 그것도 나만 깰 생각을 하니 아이를 낳는 것보다 그 걱정이 더 컸더랬다. 친정엄마가 와서 대신해 주면 좋으련만, 보호자는 1명밖에 있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모두 괜한 걱정이었다. 들은 만큼 아프지 않았다. 나는 이튿날부터 걸어서 화장실도 가고 기저귀도 몸을 숙여 혼자 갈았다. 병원 곳곳을 돌아다니며 산책도 했다. 남편이 도와줄만한 일은 하나도 없었다. 후에 이런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하니 수치심이 고통을 이겼다고 말했다. 어쩌면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예상치도 못한 고통은 젖몸살이었다. 모유는 얼마 나오지도 않으면서 가슴이 자꾸 뭉쳤다. 돌처럼 단단해졌는데 그 무게가 마음속 어딘가까지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통증과 함께 불쾌감이 일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젖몸살 시 하면 좋은 마사지법이 나와 그대로 따라 해 보았지만 전혀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때 산후조리원에서 연락이 왔다. 가슴마사지가 1회 서비스로 들어가는데 지금쯤 젖이 찼을 테니 산후조리원 입소 전 가슴마사지를 받으러 오라는 연락이었다. 가슴마사지는 신세계였다. 전문가의 손길이 닿는 대로 모유는 분수처럼 사방으로 튀었다.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 분수처럼 치솟았다. 아프긴 했지만 뻥 뚫리는 시원함이 있었다. 다 받고 나면 가슴이 찹쌀떡처럼 말랑해졌다. 가슴마사지를 받으며 알게 된 건 가슴이 크다고 모유가 많이 나오는 게 아니란 것, 모유가 나오는 구멍은 한 군데가 아니라 여러 군데라는 것, 그리고 아이가 직접 빨면 젖몸살이 잘 오지 않는다는 것.


“아기한테 젖 물려봤어요?”

“아뇨... 아기가 신생아중환자실에 있어요...”


난 그 질문에 난데없이 엉엉 울었다. 60대인 전문가는 나를 위로하며 다음에는 젖병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 젖병에 모유를 짜주겠다고. 가슴마사지는 1회 10만 원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10회를 결제했고 젖병을 가지고 다니며 치즈푸딩에게 줄 모유를 모아서 얼린 뒤 신생아중환자실에 가져다주었다. 그래도 모유는 많이 나오지 않았고 아이가 젖을 빨 수 없는 상황이라 젖몸살은 계속되었다. 또 유축기로 모유를 짤 때면 이상하게 우울해지고 짜증이 일었다. 나만 이런가 인터넷을 찾아보니 ‘슬픈 젖꼭지증후군’이라는 게 있었다. 모유가 나오기 직전에 이유 없이 갑자기 우울, 슬픔, 공허감, 불안, 짜증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밀려오는 현상으로 젖이 나오기 위해선 옥시토신이 분비되는데, 이때 도파민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혼자 유축을 하면서 우울한 기분에 울기도 많이 울었다. 또 짜봤자 50-60ml 밖에 안 나오는 모유를 보며 허탈하기도 했다.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얼마나 많았던가. 하지만 난 아이가 집에 온 이후로도 거의 몇 달 동안 모유에 집착했다. 불시에 찾아오는 젖몸살에 가슴을 부여잡으며, 유축기를 붙잡고 울기도 하며,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죄책감에 괴로워하며... 그땐 작은 치즈푸딩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모유를 먹이는 일이라 생각했다. 모유 먹이는 걸 그만두기로 하고 나는 얼마나 많은 죄책감에 시달렸는가. 겨우 이런 고통 하나 참지 못해 아이에게 모유 먹이는 걸 포기하다니... 나약한 엄마가 된 거 같아 스스로 부끄러웠다. 이기적인 엄마아 된 거 같아 치즈푸딩에게 미안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모유는 상황에 따라 엄마가 선택할 문제다. 모유 없이도 아이는 잘 자랐다.


치즈푸딩이 좀 큰 후에 처음으로 같이 홀딱 벗고 목욕을 했다. 한 번도 젖을 빨아보지 못한 아이는 처음 본 내 가슴이 신기한지 젖꼭지를 만지작거렸다. 뭐든 입에 넣을 때라 살짝 입에 갖다 대기도 했다. 아이가 젖을 빨 때 엄마의 감정은 어떨까. 그 마음을 몰라 아쉽긴 하다.


그림 김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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