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 그녀와의 첫날밤
치즈푸딩이 집에 온 날, 낮에 산후도우미 선생님이 아이 돌보는 법을 한차례 알려주고 가셨지만 쉬워 보였던 일들도 막상 하려니 손이 어설펐다. 일단 가장 중요한 건 아이를 먹이는 일인데 분유 타는 것부터 난항이었다. 분유와 물의 비율이 잘 맞지 않거나 분유가 덜 풀어져 덩어리가 지게 되면 아이가 배앓이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은 분유제조기를 선물 받아 쓰고 있지만 당시엔 분유포트(물을 한 번 끓인 후 일정 온도로 유지시켜 주는 기계)에서 물을 받아 분유를 직접 탄 후 손으로 흔들어 만들어야 했다. 그때 치즈푸딩이 먹는 양은 50ml였는데 그러려면 분유를 2스푼 반을 타야 했다. 그 반을 맞추기 위해 스푼에 분유를 담았다 덜었다를 반복했다. 또 분유는 생각보다 잘 녹지 않아서 한참을 흔들었는데 다 먹이고 난 후 젖병에 남은 분유 덩어리를 보면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아이가 배앓이를 할까 봐 마음이 불편했다. 유튜브에서 ‘덩어리 지지 않게 분유 잘 만드는 법’을 검색했고 남편에게 공유했다. 남편은 내가 공유한 내용을 보는 것 같지 않았고 나처럼 그 부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거 같아 그 또한 마음이 불편했다. 젖병을 물리는 것도 중요한데 아이의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오리 입처럼 쩍 벌어진 상태로 젖병을 물려야 공기 유입이 방지돼 배앓이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아기 엄마들은 알 것이다. 신생아의 작은 입술을 그렇게 만들기란 쉽지 않은 일이란 걸. 나는 치즈푸딩의 입술이 말린 채 분유 먹는 모습을 보며 또 매우 불편해졌다. 그리고 먹이는 일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트림시키는 일이다. 아기의 얼굴을 내 한쪽 어깨에 걸치고 등을 두드리는 것이 트림의 정자세. 그러나 겨우 2kg의 치즈푸딩의 얼굴은 너무 작았고 내 어깨는 너무 컸다. 나는 어설픈 자세로 아이를 안고 등을 두드렸는데 아이는 트림을 하지 않고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나는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안고 있다가 역류방지쿠션(영아가 수유 후 위산 역류로 인한 불편함이나 구토를 줄이기 위한 쿠션)에 아기를 눕혔다. 그런데 문득 역류방지쿠션에 아기가 오래 누워있어도 되는 걸까 궁금했고 검색을 해보니 신생아는 푹신한 곳보다 딱딱한 곳에 눕혀야 허리가 건강하다고 했다. 나는 치즈푸딩을 아기침대에 옮겨 눕혔다가 트림하지 않은 것이 걱정돼 다시 안았다가 힘들어지면 역류방지쿠션에 눕혔다가 또 허리가 안 좋아질까 봐 아기침대에 눕히는 걸 반복했다. 남편은 그런 날 보며 뭐 하는 거지? (혹은 왜 이렇게 유난이지?) 싶은 표정을 지었지만 딱히 간섭하진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트림시키는 일 때문에 우리의 1차 육아대첩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 기저귀 가는 일은 남편이 맡았다. 그런데 남편이 자꾸 아기 다리를 번쩍번쩍 들었고 난 그걸 지적할 수밖에 없었다.
“아기 다리를 너무 번쩍 들면 척추에 무리가 간대.”
내 말을 듣긴 들은 걸까? 남편은 이후로도 계속 다리를 번쩍번쩍 들었고 나는 그것도 싫고 잔소리하는 것도 싫어 내가 갈겠다고 했다. 속싸개 싸는 일도 남편이 하기로 했다. 영상을 찾아보며 속싸개 싸는 법을 연구하는 것 같았는데 아이가 조금만 용을 써도 남편이 싼 속싸개는 허무하게 풀려버리고 말았다. 남편은 그 일에 만큼은 묘하게 집착하며 인터넷에서 찾은 이런 방법 저런 방법으로 속싸개 싸는데 열을 올렸다.
가장 어려운 부분은 아이가 보챌 때였다. 분유도 먹였고, 기저귀도 갈았는데 왜 우는지 초보 엄마와 아빠는 알 수 없었다. 내가 안고 달래다 안 되면 남편이 안았다. 그래도 달래 지지 않을 땐 서투른 부모임을 검증하는 거 같아 속상하고 미안했다. 그러다 평화가 찾아왔을 땐 비현실적으로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내 배에서 어떻게 저리 예쁜 아이가 나왔을까. 아이의 얼굴은 보고 또 봐도 지루하지가 않았다. 그러다 또 보채기 시작하면 나와 남편은 분주해지며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타고 먹이고 트림을 시켰다. 그러는 사이 새벽이 찾아왔다. 아이를 아기침대에 눕히고 우리도 침대에 누웠다. 남편은 금세 잠들었지만 나는 졸음을 물리치며 아이가 숨을 제대로 쉬는지 중간중간 체크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컹컹, 킁, 컹... 밤에 숲 속을 헤매는 짐승의 소리 같았다. 나는 벌떡 일어나 앉아 치즈푸딩을 바라보았다. 분명 아이에게서 나는 소리였다. 심장이 두근거리며 손이 떨렸다. 검색창을 열었지만 뭐라고 검색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망설였다. ‘신생아 짐승소리’를 검색하자 무뇌증이라는 무서운 말이 튀어나왔다. 아니야... 그건 아니야... 다시 ‘신생아 잘 때 컹컹’ 이렇게 검색하니 코가 막혔을 거라는 검색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이 소리는 코가 막혔다기보다는 속 어딘가에서 나오는 소리인데! 한참을 검색한 결과 그 소리는 신생아들이 용쓸 때 내는 소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 이른둥이의 경우 그 소리가 더 심할 수 있다는 내용을 찾았다. 그러는 사이 아침이 되었고 치즈푸딩은 밥을 달라며 울었다. 남편은 그 소리에 뒤척거렸으나 깨진 않았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나와 분유를 먹이고 또 트림을 시키기 위해 안았다가 역류방지쿠션에 눕혔다가를 반복했다. 아이는 다시 잠들었으나 나는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한숨도 자지 못했다.
오전 9시.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산후도우미 선생님이었다.
“밤새 괜찮았어요?”
나는 조잘조잘 밤새 있었던 일들을 모두 얘기했다.
“고생했어요. 들어가서 좀 자요.”
안방에 들어와 남편 옆에 누웠다. 그래도 신경이 모두 치즈푸딩에게 가있었는데 밖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고 평화로웠다. 조금 잔 뒤 나가보니 치즈푸딩의 표정부터가 달랐다. 편안하고 기분 좋은 표정으로 모빌을 보며 놀고 있었다. 산후도우미 선생님은 그 사이 우리 부부가 먹을 음식까지 해두셨다. 선생님은 두 달 정도 치즈푸딩을 봐주셨는데 매번 맛있는 음식을 해주셨고 그 사이 우리 집에 있는 책 여러 권을 읽으셨다고 한다. 그토록 여유롭다니… 육아의 전문가였다. 당시 나에겐 산후도우미 선생님이 신이었다.
그렇게 여러 날이 지났다. 육아가 이토록 힘들다는 걸 마흔이 넘도록 왜 몰랐을까.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은 걸까. 혹시 나만 유독 힘든 걸까? 육아는 몸뿐 아니라 마음도 고된 일이었다. 매일 모자란 나와 마주했고 매일 어떤 한계에 부딪혔다. 아이는 눈물 나게 예쁘지만 점점 초라해지는 나를 보며 가슴이 시렸다. 아무도 날 도와주거나 알아주지 않는 거 같아 외로웠다. 그런 감정이 켜켜이 쌓이다 어느 날 눈물이 터지더니 멈추지 않았다. 산후우울증의 시작이었다. 맨홀로 들어가 스스로 뚜껑을 닫는 일. 무엇으로도 해결이 안 되는 일. 죄책감을 느끼는 일. 사랑스러운 아이를 앞에 두고도 그런 시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