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 엄마란 사람들
아이는 3시간마다 깨서 울었다. 배고프다는 신호였다. 그러면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탔다. 분유를 타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아이는 내내 보챘다. 나로서는 그 시간이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아이가 불편해하는 것이 불편했다. 원래가 덤덤하지 못한 성격이라 아이가 울면 마음이 바빠졌고 또 긴장됐다. 낮에는 차라리 괜찮았다. 나나 남편 중 한 명이 아이를 안아 달래고 한 명이 분유를 타는 식으로 분담을 하면 되었으니까. 문제는 분담이 안 되는 새벽과 이른 아침이었다. 우리는 모두 한방에서 잤는데 남편은 아이가 우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자고 있는 남편을 깨우기도 뭐 해 아이를 안고 거실로 나가 방문을 닫았다. 남편을 위한 나름의 배려였다. 아이는 배고프다 보채고 잠결에 분유를 타는 손은 느렸다. 그 사이 남편이 나와 주진 않을까 작은 기대를 하기도 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아이는 분유를 한 번에 다 먹는 법이 없었다. 충분히 먹여야 3시간 텀이 지켜지기 때문에 나는 따뜻한 물에 젖병을 담가두었다가 30분 뒤 또 먹이곤 했다. 그리고 30분은 트림을 시켜야 했다. 운이 좋으면 아이가 바로 잠들어 나도 다시 누울 수 있었지만 아이의 눈이 갑자기 반짝이며 활기가 돌 땐 그 시간을 같이 뜬눈으로 보내야 했다. 그리고 컴컴한 새벽이 가고 아침이 올 때쯤 아이는 또 불시에 울었다. 그 소리 또한 남편은 듣지 못했다. 나는 또 긴장한 상태로 분유를 타고 아이를 안았다. 긴장할 때마다 배가 사르르 아파왔다. 참다 보면 괜찮아지기도 하지만 어느 땐 즉시 화장실을 가야 했다. 도저히 못 참겠다 싶을 때 남편을 깨웠다. 남편은 자다 깨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그게 자주 화가 났다. 화장실에 가서도 마음은 편하지 않았기에 후다닥 일을 보고 나왔다. 남편은 나에게 다시 아이를 맡기고 욕실로 들어가 말끔하게 씻고 나왔다. 나는 밤새 제대로 자지 못하고 씻지도 못한 채로 아이를 안고 있는 내 모습이 처량했다. 씻는다고 하면야 남편은 얼마든지 그러라고 하겠지. 하지만 나는 그 당시 남편을 못 미더워하고 있었다. 치즈푸딩은 트림을 시원하게 하는 아이가 아닌데 남편은 5분 정도 안고 있다가 그냥 눕히곤 했다. 트림을 제대로 못 시키면 분유가 역류해서 토할 수 있고 그러다가 기도가 막힐 수도 있다, 이야기를 해도 남편은 치즈푸딩의 트림처럼 답답하게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조금만 안고 있다가 아이를 눕혔다. 그러면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아이를 다시 들어 한참을 안고 있어야 했다. 아이에 대한 정보를 찾는 일도 나 혼자 해야 했다. 3kg이 되자 병원에선 미숙아 분유를 그만 먹여도 좋다고 했다. 마침 가장 좋다는 산양분유가 선물로 들어와 그걸 먹였는데 잘 게우지 않던 치즈푸딩이 자꾸 분유를 게웠다. 그러더니 아예 먹지 않으려 했다. 어떤 분유를 먹여야 할지 막막해 인터넷 맘카페에도 묻고 친구들에게도 물었다. 바꾼 분유도 좋아하지 않아 나는 3번 정도 더 분유를 바꾸며 애가 탔다. 가뜩이나 작게 태어난 아이가 먹지도 않으니 그 며칠이 괴로웠고 막막해 눈물도 났다. 그 밖에도 엄마는 공부할 게 많았다. 젖꼭지 하나를 바꾸더라도 하루 종일 알아보고 공부해야 했으며 장난감 하나를 사더라도 어떤 제품이 더 좋을지 찾아봐야 했다. 또 아이가 자꾸 한쪽 눈만 깜빡인 거 같아 그 증상에 대해 검색해야 했고 모로반사가 언제까지 지속되는지, 혹시나 아이가 하는 행동 중 이상반응은 없는지 내내 궁금해 아이가 자는 동안도 핸드폰을 놓을 수 없었다. 그러니 제대로 자지도 씻지도 못했고 더 잔뜩 예민해졌을 것이다. 처음엔 이건 이렇대, 저건 저렇대, 남편에게 말했더랬다. 하지만 관심 없다는 식의 남편 반응에 나중에는 그저 혼자 고민하고 해결하고 말았다. 육아에 대해 누구와 얘기할 수 없어 외로웠다. 남편이 미웠다. 정말 너무 미웠다. 하지만 모두 내 바람일 뿐 남편이 잘못하고 있는 건 딱히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인스타그램에 뜨는 피드들을 보니 꽤 많은 남편들이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해 아내들을 빡치게 했다(이런 말을 잘 안 쓰지만 이 표현이 적절하다). 남자들은 위협적인 소리가 아닌 것에 무디다는 것인데 때문에 아이울음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아내가 다소 화난 목소리로 ‘여보’하면 위협을 느끼고 바로 깬다고 하니 얼마나 웃긴가. 또 남편 또한 육아가 처음이었다. 육아 주도권은 내가 잡고 있으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자들은 모를 수 있다!). 그럴 때마다 똑 부러지게 남편이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지 말했으면 나도 덜 화나도 남편도 괜히 눈치 보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남편은 나를 즐겁게 해 주려 노력했다. 아이가 자면 재밌는 드라마나 TV프로그램을 찾아 같이 보려고 했고, 맛있는 걸 사다가 주었고, 산후도우미 선생님이나 친정엄마에게 아이를 맡길 수 있을 때 미리 검색해 좋은 곳에 데리고 가주었다. 남편은 아이보다 나를 더 많이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땐 남편의 마음이 보이지 않았다. 아이를 보느라, 아이만 보느라 스스로도 돌보지 못할 때였다. 엄마들은 그렇게 내 자식만 알게 되며 나에게도 남편에게도 인색해지는 걸까.
이렇게 육아가 힘들다는 걸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은 걸까. 나보다 먼저 엄마가 된 친구들에게 잠이 부족하다느니, 남편이 이유도 없이 밉다느니, 힘겹고 외롭다느니, 거울 속 초라한 내 모습을 보고 남몰래 울었다느니... 그런 말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아마도 엄마들은 너무 예쁜 아이를 앞에 놓고 감히 힘들다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면 미소 짓다가 힘든 걸 잊어버렸을 것이다. 그러다 핸드폰 속 아이의 사진들을 보다가 남편에게 서운한 마음도 지워지고 초라한 나의 모습도 지워졌을 것이다. 그러다 아이가 우리 곁에 건강하게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끼고 내일은 더 힘내봐야지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오늘 좀 더 행복하게 보낼걸 약간의 후회와 자기반성을 하겠지.. 안쓰럽고 사랑스러운 사람들,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