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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석 Jun 12. 2018

모네 정원, 꽃 농부들 이어서 2부

월간농터뷰 [5월호] 인물 편




세 번째 인터뷰자: 들판 여인


저는 하림이 이모예요. 모네 정원에서 제가 하는 일은 식물을 키우고 정원을 가꾸는 일이에요.


들판 여인(A.K.A 작은 변여사님)

Q. 모네 정원에 참여하게 되신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특별한 계기는 없었어요. 예전에는 사람 상대로 일하는 직업을 가졌었고, 12년 동안 같은 일을 해오다 보니 그 생활에 조금 지쳐있는 상태였죠. 어느 순간 남편이 직장을 옮겼고, 여유가 조금 생겨서 제가 하던 일을 그만두게 되었어요. 베란다에서 꽃을 키워봤는데 잘 자라더라고요. 꽃을 기르는 거에 대한 자신감이 생겨서, 집에서 꽃이나 조금 길러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우리가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는 주민자치센터에서 체험농장을 운영하고 있었어요. 주민자치센터에서 임대하고 봉사단체와 연계해서 아이들에게 식물 교육을 했는데, 처음에는 잘 되는듯싶더니 이내 운영상에 문제가 생겨서 나가게 된 거죠. 그때, 올케가 '우리가 여기를 맡아서 한 번 해볼까?'라는 제안을 했고, '그러면 내가 꽃을 심을게!'라고 했어요. 그렇게 가볍게 시작을 하게 된 거예요.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별거 아닌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될 때가 있잖아요.


들판 여인님께서 추천한 장소에서 찍은 사진들


Q. 꽃을 키우는 일을 담당하시잖아요. 어떠신가요? 힘드시진 않으신가요?


처음에는 우습게 시작했지만, 꽃을 기르다 보니깐 욕심이 생겼어요. 농장을 시작하고서 1년이 지나고 유럽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대부분 유럽 국가에서는 꽃을 키우는 것이 생활화가 되어 있더라고요. 매우 인상 깊었죠. 그때, 저도 조금 더 열심히 꽃을 기르고 정원을 가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네덜란드에 들렸을 때는 혼자서 플라워마켓에 가서 여러 가지 꽃씨도 사보고 둘러보면서 나름대로 꽃에 관한 공부도 많이 했어요. 꽃을 기르고 알아가는 재미가 있잖아요. 내가 그렇게 공부를 하는데도 아직도 내가 모르는 수천, 수만 가지의 꽃이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재밌는 것 같아요.


봄을 가꾸는 들판 여인의 모습



Q. 블로그를 운영하시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친정엄마가 병상에 계실 때 뭔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을까 고민하다가 엄마가 여행 다녔던 사진을 앨범으로 만들어서 갖다 드린 적이 있어요. 앨범 속 사진을 보면서 참 행복해하시더라고요. 하지만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많은 사진을 정리하는 건 우리 딸들의 몫이었어요. 그때 든 생각이 아! 사진을 많이 남기는 건 남은 사람들에게는 힘든 일이 될 수도 있겠구나. 나는 사진을 많이 찍지 말아야지라는 다짐을 하게 되었죠.


  블로그를 하게 된 이유는 나중에 나이가 더 들었을 때 내 과거의 기록을 살피기 위해서예요. 과거의 사진, 글을 통해서 내가 행복했던 기억을 끄집어낼 수 있고, 순간순간의 기억들을 다시 돼 새길 수 있으니까요. 그런 생각을 하고서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거고, 이건 뭐랄까? 완전히 나에 대한 개인적인 기록인 거죠. 친정엄마가 앨범을 보면서 행복했던 것처럼 저만의 추억을 끌어낼 수 있는 자료라고 할까요? 하지만 죽기 전에 반드시 삭제를 누를 거예요.(웃음)



Q. 들판 여인님의 개인적인 꿈이나 목표가 있으신가요?


개인적인 꿈은 없고요. 단지, 씨를 뿌리고,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면, 씨를 채취해서 내년 봄에 또 준비를 하는 이 과정들이 재밌어요. 생명을 다루는 일이라서 보람도 많이 느끼고요. 오늘도 꽃 주문을 새로 했거든요. 아직도 내가 모르는 꽃들이 수천, 수만 가지가 된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에요.


  꽃씨를 사고, 점심을 먹을 수 있는 비용 정도는 모네 정원에서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아무래도 우리가 다들 은퇴했기 때문에 그 정도 비용은 수익으로 벌어들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죠. 우리가 정원을 가꾸는 게 주된 일이지만, 체험학습도 같이하고 있잖아요. 제 나름대로는 아이들한테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쳐줄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애들한테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따뜻한 마음을 집어넣어 주려고 해요. 그러다 보니 '나도 이제 조금은 사회에 이바지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모네 정원에 방문한 아이들, 생명의 소중함을 배우는 시간


철없는 농부 할매로 고민은 들판 호미질 하면서 패대기 칠 것이고, 행복도 그 들판에서 호미질하며 고구마 캐듯 찾을 것이니, 후반으로 달려가는 인생을 꾸리는 자세가 이만하면 훌륭하지 아니한가?
- 들판 여인 블로그 일기 중-





네 번째 인터뷰자: 레스 까페(Rescape)


저는 하림이 이모부고요. 모네 정원을 가꾸는 세 여인을 돕고 있어요. 정원에서는 꽃을 키우고 가꾸는 일도 중요하지만, 힘을 쓰거나 물건을 수리할 일도 많거든요. 여러 가지 잡일들을 도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레스 까페님이 직접 적으신 글귀

Q. 레스 까페님께서 모네 정원 이름을 지으셨다고 들었어요. 모네 정원이란 이름을 어떻게 짓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맨 처음에 농장에 꽃을 심었을 때 집사람이 농장 이름을 지어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우리 모네의 정원으로 하자"라고 얘기했어요. 원래는 '모네의 정원'이 이름이었죠. 그런데 하림이가 '모네 정원'으로 부르자고 한 거고요.


  모네가 자기 집 주변에 꽃을 심어서 몇십 년에 걸쳐 세계적인 정원을 가꾸었듯이, 지금은 비록 작은 비닐하우스 한 동이지만 모네가 했던 것처럼 '10년이든 20년이든 계속 꽃을 심어나가 보자,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정원처럼 만들어보자'는 의미에서 모네의 정원이라고 불렀던 거지요. 지금 생각하니깐 아주 잘 지은 이름인 것 같아요.(웃음)


5월, 프랑스 지베르니에 위치한 모네의 정원 풍경



Q. 모네가 꽃을 기르고 정원을 꾸몄던 이유와 모네의 정원에 관한 얘기를 좀 더 들려주실 수 있나요?


워낙 유명하잖아요. 클로드 모네가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정원을 꾸몄죠. 사실, 모네는 지베르니에 가기 전에도 몇몇 군데에 살면서 꽃을 많이 길렀어요. 알다시피 모네는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 중 한 명이었고요. 그는 꽃에 빛이 닿으면 그 빛에 따라 꽃의 모습이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빛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다양한 꽃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 꽃을 심은 거죠.


  마지막에 지베르니로 이사를 하여서는 그 전체 정원에 30년 가까이 꽃을 심었어요. 물론, 정원사도 고용하고 당시로써는 드물게 전 세계에 있는 꽃씨를 사 와서 심었고요. 모네가 죽고 딸이 정원을 운영했는데 운영상에 문제가 생겨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했어요. 그러다 1980년에 모네의 정원 땅 전체를 프랑스에 기증하게 되죠. 마침 일본 정부가 우리가 돈을 대줄 테니 복원을 해보자는 제안을 해요. 그 이후로 오늘날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정원이 만들어진 거죠.


너무나 매혹적인 모네의 정원 모습



Q. 레스 까페님이 작가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주로 어떤 주제로 글을 쓰시나요?


네이버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7년 연속 파워블로그를 수상하기도 했어요. 주로 제가 블로그에 관심 있게 적었던 글은 미술 쪽이었어요. 평범한 직장인이었지만 그림에 대한 감상을 쓰다 보니 어느 날 출판사에서 제의가 와서 책을 출판하게 되었어요. 처음 냈던 책이 제법 많이 팔렸죠.


  판도가 바뀌었다고 할까요? 그전까지는 그림에 대한 설명은 대학교수, 미술 전공자들이 했는데 전혀 미술에 대해 알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이 쓴 글이 사람들의 공감을 많이 얻게 된 거예요. 첫 책이 나오게 되고, 작년에 세 번째 책까지 출판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가족들이 저보고 자꾸 작가라고 부르는 거예요.


레스 까페님의 세 번째 책 '그림 속 소녀의 웃음이 내 마음에'



Q. 그림을 좋아하시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올해 2월에 은퇴했는데 그전까지 다니던 직장이 네덜란드 소유의 회사였어요. 그러다 보니 외국으로 자주 출장을 갈 일이 많았죠. 출장을 가면 주로 3일에서 많게는 5일까지 개인적인 시간이 생겼어요. 근처에 유명한 미술관들이 많아서 구경 삼아서 가기 시작했죠. 미술관에 가보니 그림이 아주 많았어요. 하지만 책에서 본 몇몇 그림을 제외한 나머지 99.9%의 그림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 이후로도 미술관에 갈 때마다 그림을 봤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더라고요.(웃음) 그래서 그림 공부를 좀 해야겠다 결심을 하게 된 거죠. 한 해 그림에 관한 책만 20권씩 읽었던 것 같아요. 다시 미술관에 갔을 때 전보다는 조금 더 아는 그림들이 생겼지만, 여전히 90%는 모르는 상태였죠. 모르는 거는 그냥 지나치게 되잖아요. '아! 그림을 이렇게 볼 게 아니다. 어차피 봐도 모르는 상황이라면 그림에 담긴 내용을 내 마음대로 보고 해석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게 되려 재밌었죠. 그래서 그림을 더 관심 있게 보게 되었고요. 그런 내용으로 블로그에 글을 쓰게 되기 시작한 거예요. 그림은 종류가 너무나도 다양하잖아요. 역사를 담은 그림, 실생활을 담은 그림, 정서를 담은 그림, 생각하게 만드는 그림도 있고요. 그림을 통해서 위안을 받을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림을 좋아하게 되었고, 이제 여행을 가도 미술관을 자주 가게 되는 이유가 그 때문이죠.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 '모네의 정원'



Q. 모네 정원에서 어떤 업무를 맡고 있으신가요?


여기가 힘쓰는 일이 많아요. 비료도 날라야 하고, 땅도 파야 되고, 각종 보수작업도 많이 있고요. 저는 꽃의 이름은 잘 몰라요. 들어도 금방 까먹거든요. 농장에서 해야 할 여러 가지 잡일들을 도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2015년 3월 18일 '모네 정원의 시작'



Q. 부천시 체험 농장은 어떻게 도전하시게 되었나요?


처음에는 우리가 꽃이 좋아서 시작했던 거죠. 꽃을 기르는 게 즐거웠어요. 씨앗을 뿌려놓으면 하루마다 꽃이 자라는 게 보이니깐 너무 신기했죠. 이 농장을 통해서 큰 수익을 내보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어요. 점점 꽃이 많아지고 넓어지다 보니깐 우리 식구들만 보고 놀기에는 아까웠던 거죠. 무턱대고 공개할 수는 없었어요. 가끔 사람들을 초대해보면 쓰레기는 말할 것도 없고, 말도 없이 꽃을 가져가는 경우들이 종종 있었거든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좀 더 체계적으로 개방해야겠구나!'하는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어요.


  근처에 몇몇 군데 체험농장들이 있긴 하지만 우리 농장에도 꽃들이 많고, 우거진 오동나무 숲길이 있으니 나름대로 경쟁력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동네에 있는 아이들을 보면 체험 학습한다고 버스 타고 멀리까지는 나가는데, 이곳을 개방하게 되면 좀 더 가까이에서 체험을 할 수 있으니깐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다들 이왕 하는 거면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부천시 체험농장에 지원하게 되었고요. 유치원 애들이 오면 이곳을 무척 좋아하니깐 체험 농장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밤톨이들이 밤을 줍네요



Q. 모네 정원에서 가족들과 함께 일하시잖아요. 어떤 점들이 좋으신가요?


이 동네가 우리 집사람, 처형의 고향이에요. 지금은 조금 멀리 떨어져 있지만, 예전에는 저도 여기서 직장까지 출퇴근을 하기도 했고요. 처형네나 저희나 식구들이 젊어서부터 여기서 같이 자란 거예요. 하림이도 그렇고 아이들까지 다 여기서 자라서 시집 장가를 갔죠. 요즘에는 제가 차를 가지고 오다가 처형을 태우고 오는데 세 명이 꼭 한 팀 같이 느껴지기도 해요. 다들 농장을 좋아하니깐, 공동의 관심사를 가지고 같이 놀면서 늙어가니깐 좋은 거지요.


  재밌는 것이 세 명이 다 같이 일을 안 해요. 각자 눈에 보이는 일이 다르거든요. 저 같은 경우는 꽃 기르는 걸 잘 모르니깐 주로 청소, 나르는 거, 못질 같은 잡일을 하고 있는 거고요. 각자 일 하다가 밥 먹을 시간 되면 같이 식사하고 또 흩어졌다가 집에 갈 때 되면 모여요. 그러다 보니 별로 다툴 일도 없는 것 같고요. 작년까지는 버는 돈 보다 쓰는 돈이 더 많았어요. 올해에는 체험학습을 하면서 이익을 조금 얻었고, 그 돈으로 꽃과 화분을 샀지요.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돈이 안 벌리니깐 사이가 좋은 거예요'.(웃음)



Q. 끝으로 농장에서 바라시는 꿈이 있으신가요?


길 바깥에 데이지를 많이 심었어요. 서서히 꽃이 많이 피겠지요. 보통은 길에다가 꽃을 심지는 않거든요. 우리는 길 양쪽으로 꽃을 뿌리고 계속 심어나가고 있어요. 그러면 나중에는 입구에서 이 곳 안쪽까지 꽃길이 될 거예요. 옆집, 이웃주민들이 이 모습을 보고 꽃을 심게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면 동네 전체가 꽃 밭이 될 수도 있고요.


  서울에 꽃 보러 복잡한 곳에 갈게 아니라 전철 타고 조금만 오면 이 곳에서도 꽃을 많이 볼 수 있잖아요. 그게 우리 꿈이죠. 그렇다고 우리가 세련되게 꽃을 정리하거나 하지는 못해요. 다들 아마추어니깐 최대한 자연스럽게 해보려고 하죠. 꽃들이 알아서 필 수 있도록 물이나 조금 주고 정리하는 정도? 있는 그대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렇게 농장을 가꿔 나가고 싶은 마음이에요.


길가에도 꽃들이 가득해지길 바랍니다


모네 정원에서 제가 힘쓸 일은 이제 별로 없지만 아내와 처형의 일은 이제부터인 것 같습니다. 쉬지 않고 모종을 옮기고, 씨앗이 올라오는 것을 살피고, 정원을 디자인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거든요. 은퇴를 하기 전에는 주말에만 모네 정원에 올 수 있었기에 정원이 변하는 모습에 늘 놀라곤 했습니다. 요즘은 매일 나오니까 예전 같은 놀람은 없지만 조금씩 생명들이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탄하곤 합니다. 우리 삶도 놀람보다는 감탄이 훨씬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 레스 까페 블로그 일기 중 -
딱 한 장 건진 레스 까페님의 뒷 모습

모네 정원 꽃 농부들의 인터뷰를 마치며


먼저 바쁘신 와중에도 인터뷰를 응해주신 네 분의 꽃 농부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여러분들과의 재밌고, 진솔한 인터뷰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 하루였습니다.

  

  모네 정원을 나오며 '공존'이라는 키워드가 떠올랐습니다. 불협화음이라 생각했던 청년과 기성세대가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에서. 꽃과 나무, 나비와 벌이 자연에서 함께 살아 숨 쉬는 정원의 모습에서. 여러모로 모네 정원은 저에게 공존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공간이었습니다.

  

  네 분의 인터뷰를 정리하며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대상은 서로 다를지 모르겠으나 모네 정원을 통해 사람들에게 자연과 꽃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 공통된 마음이 있다는 것을요. 그 마음씨가 선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디 더욱 많은 이들이 모네 정원에서 자연과 함께하는 행복함을 누리기를, 또 어린아이들이 생명의 소중함을 미리부터 알게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곧 무더위가 찾아오고 장맛비가 내리겠지요. 꽃들은 꽃을 피우며 그들의 몫을 다할 테고요. 모네 정원이 들려줄 여름 이야기가 벌써 기대가 되는 것 같습니다. 다들 몸 건강하시고 또 찾아뵐게요. 가을에는 또 다른 풍경이 그려져 있을 모네 정원을 상상하며, 그럼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P.S 하림 씨 결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들판 여인님, 재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죄송하고 또 감사드립니다.)





아래 링크로 들어가시면 좀 더 자세하고 재밌는 들판 여인님, 레스 까페님의 블로그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일부 사진은 아래에 있는 블로그에서 발췌하였고, 그분들의 저작권임을 알려드립니다.


https://blog.naver.com/bhs620725

https://blog.naver.com/dkseon00


다음 편에서는 [6월호] 우리가 농부로 살 수 있을까(가제) 편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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