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농터뷰 [4월호] 작물&가공 편
경찰 간부 시험을 준비할 때는 불면증이 있었어요. 자려고 누워도 시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잠이 안 오더라고요. 그런데 농사를 짓겠다고 마음먹고 나서부터는 누우면 바로 잠들었어요.
예전에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부모님의 기대감을 충족시킬 수 있는 목표를 세웠어요. 하지만 농업에 뛰어들고 나서부터는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목표가 되었어요. 아마도 이때부터 주체적인 삶을 살게 되지 않았느냐는 생각이 들어요.
작두콩 품종은 전 세계적으로 43종류가 있는 데요. 그중에서 우리나라에 보편화된 건 두 종류가 있어요. 쉽게 말하면 흰색 콩, 빨간색 콩인데요. 그중에서 저는 흰색 콩을 쓰고 있죠. 사실, 작두콩은 품종이 아닌 학명으로 봐야 하는 데요. 'Canavalia gladiata'라는 학명으로 불리고 있어요. 품종의 이름 같은 경우는 농진청(농촌진흥청)에서 품종 개발 연구를 했을 때 붙일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작두콩 품종에 대한 개발이 되지 않아서 학명으로 부르고 있는 거죠.
사진출처: http://topclass.chosun.com/board/view.asp?catecode=R&tnu=201803100002
사진은 조선 뉴스프레스 탑클레스에서 가져왔습니다.
다른 농사에 비해 작두콩은 재배 방법이 간단한데요. 먼저 밭에 두둑을 만들어요. 그러고 나서 멀칭 비닐을 씌우고, 파종하죠. 파종 전 콩을 12시간 정도 물에 불리는 게 중요해요. 작두콩의 껍질이 워낙 단단하고 두꺼워서 자칫하면 싹이 올라오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지역마다 다르긴 한데 정읍에서는 4월 말에 파종하고 있어요.
다음 작업으로는 지주대를 세우고 오이 망을 같이 설치해요. 사실상 거름을 주고 나면 수확 철까지는 특별히 할 일이 없다고 보면 되는데요. 작두콩은 재배 시 농약을 치지 않아도 잘 자라기 때문이에요. 일반 콩의 경우는 곁순을 제거해주면 수확량이 증가하지만, 작두콩은 곁순을 제거해도 일정 수확량만 증가하기 때문에 인건비 대비했을 때 효율적이지 않아서 이 작업이 생략되는 경우가 많아요.
작두콩은 주변 환경적 영향을 덜 받는 작물이라고 할 수 있는 데요. 작물에 진딧물이 붙지 않고, 멧돼지나 사슴으로부터 안전해요. 또 새순이 올라왔을 때 새들로부터 공격받지 않고요. 고추나 담뱃잎 같은 경우는 수시로 수확해줘야 하잖아요. 그에 반해 작두콩은 일괄 수확을 하거든요. 날이 선선할 때 한 번에 수확하면 되니깐 다른 작물에 비해 수확이 훨씬 수월한 편이죠. 수확 시기는 지리적 위치마다 다르긴 한데, 제가 농사짓고 있는 정읍은 10월 중순에 하는 편이에요.
사진 출처: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5363162&memberNo=7035364&vType=VERTICAL
사진은 정직한 농산물 쇼핑몰 참건강마을 포스터에서 가져왔습니다.
작두콩 농사의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기계로 수확이 불가능하다는 건데요. 지주대가 세워져 있어서 기계를 사용할 수 없는 거예요. 그로 인해 노동력이 많이 들어가다 보니, 일반 백태 콩알보다 5배가량 가격이 비싼 거고요. 아까 작두콩 품종이 여러 가지가 있다고 얘기했잖아요. 그중에 지주대를 세우지 않고 기를 수 있는 품종이 있어요. 일반 콩처럼 낮게 자라거든요. 그 품종을 키우면 기계로 수확이 가능하게 돼요.
이 품종의 종자가 식품 안전성이 검증되고 식품공전에 올라가게 된다면 작두콩 농사를 짓는 분들에게 더 도움이 될 거예요. 기계로 수확이 가능하니깐요. 식품 공전에 이 품종을 올리기 위해 제가 연구팀과 함께 연구를 하고 있어요. 추측하기로는 노동비 감소 효과가 30~40% 정도 될 것 같아요.
혹시 어릴 때 읽었던 동화책 '잭과 콩나무'를 기억하시나요? 거기에 나오는 콩이 바로 작두콩이에요. 그래서 외국에서는 작두콩을 '잭빈'이라고 불러요. 작두콩이요? 원래 크게 잘 자라요. 작두콩 길이는 보통 20~30cm, 넓이는 5cm 내외인데요. 작두콩 순들은 7M~15M 까지도 자란다고 해요. 보통은 2M까지 자라요. 그래서 수확하기가 참 편하죠.
작두콩은 비염을 앓고 있는 분들께 좋은데요. 특히, 알레르기 비염에 탁월하다고 알려져 있어요. 아쉽게도 국내에는 비염에 효과를 내는 작물의 기능에 대한 연구자료가 없어서, 제가 지금 연구기관과 함께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 있어요. 현재까지 연구결과로는 작두콩 안에 있는 항산화 성분이 비염에 영향을 주는 것 같은데요. 이런 연구를 통해 정확한 자료를 수집하는 것 또한 저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킹빈을 소개하려고 여러 곳을 다녀봤거든요. 그때 느낀 것이 요즘 소비자분들이 너무 똑똑하시다는 거였어요. 만병통치약처럼 보이는 설명은 더는 통하지 않는 시대인 거죠. 그래서 연구기관과 함께 연구하면서 정확히 작두콩이 어떤 효능이 있는지 밝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앞으로 우리 농업인, 농식품 가공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이런 연구, 개발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부적인 온도의 차이는 조금 있겠지만 가공하는 과정이 커피와 유사하다고 보시면 되는데요. 작두콩을 볶는 로스팅 과정과 분쇄 작업을 거쳐 제품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를 킹빈이라고 부르고 있고요. 작두콩도 커피처럼 에스프레소가 추출되거든요. 앞으로 나올 신제품 중 하나가 물, 우유에 바로 타 먹을 수 있는 액상 커피가 있고 또 캡슐의 형태까지도 고려하고 있어요. 조금 더 다양성 있게 상품을 확장하려고 노력하고 있죠. 예전에 공모전에 참여했던 것이 인연이 되어 농협 중앙회에서 도움을 많이 받고 있는 데요. 고민이 있거나 모르는 것이 있으면 농협 중앙회 전문가분들께 자문을 많이 구하고 있어요.
가공사업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공장을 지을 여력이 없었어요. 자본이 거의 없었거든요. 우여곡절 끝에 이곳 국가식품클러스터에 들어오게 되어 고비를 넘겼지만, 정작 기계를 살 돈이 없었어요. 하는 수 없이 외부 제작을 맡기려 했죠. 하지만 이마저도 소량 생산이라 모두 거절당했어요. 좌절을 겪던 중에 중소기업청 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지원금을 받게 되었어요. 기계를 들여놓기 시작했고 또 한고비를 넘기게 됐죠. 그렇게 사업을 향해 천천히 이제 막 한 걸음을 떼기 시작한 것 같아요.
우선 지금 한 창 작두콩 농사를 준비하는 중이라 농장에 나가는 날이 많고요. 밤에는 로스팅하는 작업을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주로 낮에는 대외활동이나 신제품 개발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 데요. 이렇게 할 일이 너무 많다 보니 사업을 시작하고서 쉬어본 날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제 사업이고 작은 성과가 나는 게 재밌어서 기쁜 마음으로 일 하고 있습니다.
첫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매출을 높이는 게 목표였어요. 그런데 크라운드 펀딩을 받으면서 생각이 확 바뀌게 되었죠. 펀딩을 받았던 건 소비자분들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몰라서였어요. 상품이 생소하다 보니 반응이 적을 줄 알았어요. 예상 목표 금액이 삼백만 원정도였거든요. 하지만 예상과 달리 반응이 좋았어요. 펀딩 금액이 무려 이천만 원 가까이 모이게 되었어요.
사업 시작 전 아내와 한 가지 약속을 했어요. 첫 펀딩 금액은 우리처럼 병원비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부하자고요. 그래서 전북대 병원에 천만 원, 어린이재단에 속한 아이들 1,500명에게 영화를 보여줬어요. 전북대 병원에 기부할 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했어요. 그런데 아이들에게 영화를 보여줄 때 그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추억을 선물해줬다는 게 큰 의미로 돌아오더라고요. 그때 목표를 바꿨어요.
목표의 방향성을 매출이 아닌 다른 가치로 눈을 돌리게 된 거예요. 귀농하고서 농촌을 둘러보니깐 우리 농가의 소득이 너무 낮더라고요. 그때 결심했죠. 앞으로 내 목표는 단순히 매출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농촌의 농가소득을 올리는데 더 힘써보자고요. 그래서 탄생하게 된 제 목표가 작두콩 농가 5,000군데와 계약재배를 맺는 거예요. 너무 크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저는 반드시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사진출처: https://www.nongmin.com/news/NEWS/FLD/NWS/289844/view
사진은 농민신문 기사에서 가져왔습니다.
처음 농촌에 왔을 때 제가 느꼈던 점을 얘기해드리고 싶네요. 농촌에 와보니 적응하는 게 힘들더라고요. 도시에서만 생활했으니 농촌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잖아요. 정읍에 내려와서 제일 먼저 했던 게 기존에 도시에서 생활하던 마음가짐을 버리는 거였어요.
주변을 유심히 살펴보니 농촌 생활에 적응하기 힘든 것 중 하나가 어르신들과 부딪히는 일이더라고요. 한 가지 방법을 드리자면 어르신들에게 먼저 다가가 보세요. 먼저 다가가서 인사만 드려도 금방 친해지거든요. 농촌 적응이 아무리 어렵다 해도 인사만 잘 드리면 80%는 성공한 거예요.
먼저 다가가서 마음의 문을 여세요. 한 가지 바라는 점이 있다면 농촌에 내려오실 때는 도시에서 이웃을 대하던 생각은 아예 잊어버리시고 오시는 게 좋아요. 도시와 달리, 농촌에서는 좀 더 살갑게 이웃들과 지내는 법을 공부하셔야 해요. 사실, 텃세라는 벽은 얇거든요. 이거는 내가 하기 나름으로 다 깨부술 수 있어요. 그러니깐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마음의 문을 열고 농촌으로 오세요.
김지용 농부의 인터뷰를 마치며
인터뷰를 마치고 나와보니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이 보였다. 적당히 부는 바람은 살랑살랑 나를 간질이며 기분 좋은 웃음을 나오게 했다. 따뜻하면서도 그리 덥지 않은 날씨 때문인지 문득, '완연한 봄이 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지용 농부와 만남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그가 어르신들을 대하는 태도였다. 그가 얘기했듯이, 어르신들께 먼저 다가가서 인사를 건넸다. 먼저 안부를 묻고, 연락드리겠다는 얘기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귀농한 지 8년째 되긴 했어도 농촌 지역에서는 아직 막내다'라고 했다. 단지 내가 느끼기에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먼저 다가가는 것에 어려움이 있는 나로서는,이것은 참으로 배울 점이라고 느꼈다.
그의 목표가 꼭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든다. 농업 세계 일주를 끝내고서 농부를 도울 방법을 고민하다 알게 된 것이 '계약재배'였다. 실제로 농부들을 만나 고민을 들어보니 한 해 농사를 잘 지었어도 농산물이 판매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 즉, 판로에 대한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그도 아니면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제값을 받고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꽤 심각했다.
계약재배가 분명히 농민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고무적인 사실은 이미 많은 기업이 계약재배를 시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정적인 농가소득을 통해 농민들의 걱정이 하루빨리 덜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김지용 농부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진짜 그의 말처럼 5,000 농가와 계약 재배를 맺는 날이 온다면 너무나도 기쁠 테니 말이다.
이곳 익산에는 지금 잔잔한 상생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 상생의 바람이 부디 더욱더 멀리 날아갔으면. 김지용 농부와 같은 생각을 품은 이들이 더욱 많아져서 우리 농촌에 걱정이 아닌 활력으로 가득 차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한 명의 멋진 청년을 만나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 길이 조금도 멀게 느껴지지 않는 건 어째서일까.
이로써 월간농터뷰 4월호를 마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