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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석 Sep 18. 2018

꽃 비가 내리는 과수 정원

월간농터뷰 [8월호] 인물 편





월간농터뷰 [8월호] 꽃비원X꽃비원홈앤키친




하던 일을 그만두고 살던 곳을 떠나게 되면 모든 것이 여기서 끝날 것 같고 지금까지 갖고 있던 주변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나 혼자 남을 것 같은 두려움이 찾아온다. 하지만 논산으로 내려와 심은 사과나무 묘목은 몇 번의 겨울을 맞이하는 동안 내 키보다도 더 커졌고 수없이 두려워했던 순간들이 무의미한 시간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과정 속에 결과가 있듯이 우리 세 가족은 꽃비원에서 몇 해의 시간 동안 무수히 생산되고 소멸되고 바뀌고 채워지는 모습을 경험하고 있다. - 꽃비원 일기 -



Q.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좀 부탁할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정광하라고 하고요. 꽃비원이라는 농장을 시작한 지는 6년 차가 되었어요. 아내랑 저랑은 둘다 농대를 나왔고요. 저같은 경우는 천안에서 태어났는데요. 아버지가 농사를 지으셨고, 지금도 짓고 있으세요. 논산에 터를 잡게 된 건 아버지 고향이기도 하고 친척분들도 살고 계시고 땅값이 저렴해서예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죠. 특히, 아내가 서울에서만 살아왔기 때문에 충남 밑으로 내려가는 건 원하지 않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논산에서 농사를 짓게 되었습니다.





Q. 지인분께 정광하 농부님을 소개받을 때 '꽃비원'에 가보라고 하셨거든요. 꽃비원이 무슨 뜻인가요?


저희 농장 이름이 '꽃비원'이에요. 꽃 비가 내리는 과수원을 뜻하는 말인데요. 연무대 훈련소 바로 옆에 저희 농장이 있어요. 농사를 짓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께서 조언을 많이 해주셨어요. 저희에게 과수원을 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추천을 해주시더라고요. 시간이 조금 걸리기는 해도 관리만 잘하면 몇 년 후에 큰돈을 벌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셨던 것 같아요. 2천 평의 땅을 마련했고 그곳에 사과 천 평 배 천 평을 심었어요. 지금은 밭작물도 같이 심겨있지만 본래 꽃비원은 과수원이었던 셈이죠.





Q. 농사를 짓기 이전에는 무엇을 하셨나요?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셔서 어릴 때부터 농사일을 많이 하고 자랐어요. 농업에 큰 뜻이 있다기보다는 농사일을 많이 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진학도 농대로 하게 되었고요. 졸업하고 나서는 유통 관련 일을 잠깐 했어요.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시니깐 유통시스템을 알면 조금이나마 부모님께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직접 겪어보니 유통의 실상은 농부들이 배제된 시스템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농사를 짓는 것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미국에 있는 유통회사에 취업하게 되었는데 3년 정도 지내면서 한국에 들어가서 귀농을 해야겠다는 결심하게 되었어요.



Q. 귀농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나중에 결혼하게 되면 시골에서 살면 좋겠다는 얘기를 아내와 자주 나누곤 했어요. 아내가 도시에서만 나고 자라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시골의 감수성을 참 좋아했거든요. 미국에 가기 전에 결혼식을 올렸고, 제가 먼저 가서 자리를 잡았죠. 중간에 아내가 합류했는데 비자를 연장할 시기 즈음에 아이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아이육아에 대한 고민을 하다 보니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더라고요. 태어날 아이에게 외국에서의 삶이 아닌, 한국 시골에서의 삶을 먼저 경험시켜주고 싶었어요. 한국으로 돌아와서 땅을 알아보고 농사를 지을 준비를 했죠. 아이가 태어나고 5개월 즘 되었을 때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했어요.





사진출처: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8402333&memberNo=954004&vType=VERTICAL "월간 전원속의 내집", 홍덕선님께 제공 받은 사진





Q. 아드님의 경우 어릴 때부터 농장에서 자라왔잖아요.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친구들과는 좀 다를 것 같은데 어떤가요?


그렇죠. 아이들 상황마다 조금씩 다르므로 기준이 될 수 없겠지만, 주변 분들한테 얘기를 들었을 때 원호(정광하 농부 아들)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아토피가 있다거나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간 적이 딱히 없으니까요. (웃음) 저희가 귀농하고서 3년 차가 되었을 때 둘째 처제가 귀촌을 결심하고서 내려오게 된 거에요. 둘째 처제한테 아이들이 둘이 있는데 아이들이 서울에서만 계속 지내다 보니 시골에 내려오게 되니깐 적응을 잘 못 하더라고요. 저희 아들 같은 경우는 나무작대기만 있어도 뭐든지 장난감처럼 잘 가지고 놀거든요. 물론 지금은 그 두 아이도 잘 적응을 하고 있어요. 딱히 차이는 잘 모르겠지만,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에 비해 시골에서 자란 아이들이 조금 더 자연에서 잘 뛰어노는 것 같아요.





Q. 본격적으로 농사 얘기를 좀 들어볼 텐데요. 꽃비원에 심긴 '배'는 시중에서 유통되는 품종과는 조금 다르다고 들었는데요?


시중에서 드시는 '배'는 보통 신고배(품종의 이름)를 많이 접하셨을 거에요. 보통 80% 이상 신고배가 유통되고 있으니까요. 이렇게 신고배가 많이 판매가 되는데는 유통구조 속에서 적합하기 때문이에요. 과형이 예쁘고 저장을 오래 할 수 있는 특징이 있죠. 저희가 심은 만풍, 감천배는 사실 많이 알아주시는 품종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 나름의 맛과 향이 있죠. 우선 만풍배는 겉이 푸르스름하고 과육이 좀 단단해서 새콤하고 아삭한 맛이 있어요. 그에 반해 감천배는 엄청나게 부드럽고, 향이 짖고, 즙을 냈을 때 당도가 아주 높죠. 하지만 금방 물러지기 때문에 현재 유통구조에서는 적합하지 않은 품종인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도 이런 품종을 선택하게 된 건 소비자들에게 차별화된 품종을 소개하고 싶어서예요. 


사실 과수원으로 봤을 때 2천 평이 큰 규모는 절대 아니거든요. 농진청에서 통계 낸 것만 봐도 천 평당 소득이 천만 원이에요. 대략 봤을 때 2천 평이면 1년에 소득이 2천만 원이라는 뜻인데 3인 가족이 생활을 유지하기에 큰돈은 절대 아니죠. 저희 목표가 큰 규모의 농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소농, 가족농으로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거든요. 더욱 많은 사람이 저희 과수원에 놀러 오셨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서 꾸미고 생각 하다 보니 지금의 꽃비원이 탄생하게 되었고, 수익성을 고려하지 않은 품종을 선택하게 된 것 같아요. 





Q. 꾸러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처음에 농사를 지을 때 아버지가 "한 3년까지 과일이 열리지 않을 테니 밭작물을 키워보는 것이 어떠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아내가 요리하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저희 둘 다 농사짓는 걸 좋아하다 보니 밭에 여러 가지 작물을 심게 되었어요. 1년 동안 어떤 작물이 심기는지 저희도 궁금해지더라고요. 허브류도 키워보고 다양한 작물을 심다 보니 어느새 다품종 소량생산이 되어버렸죠. 이맘때 뭘 심고 뭘 수학해야 할지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작부체계를 좀 더 이해하게 된 거죠.


지속 가능한 농사를 짓기 위해서 금전도 조금 필요했어요. 마침 주변 지인들이 저희가 귀농해서 생산한 농산물을 받아보고 싶다고 하셔서 지인분들을 통해 꾸러미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정식으로 30가구를 모집하게 되었죠. 하다 보니 30가구를 다 보내드리는 게 힘들어서 지금은 20가구로 줄었고요. (웃음) 밭작물은 대략 90가지 정도를 하고 있어요. 물론, 계속 심기도 하고 이미 심어놓은 걸 수확만 하는 작물도 있고요. 저희가 꾸러미로 보내드리는 농산물은 처음 귀농했을 때 책정했던 가격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요. 뭐 그렇다고 가격이 낮은 건 아니지만, 시세에 상관없이 어떤 때는 조금 비싸기도 하고 보통일 때도 있고요. 저희가 스스로 가격을 정해서 판매하는 부분이 꽤 만족스러운 것 같아요. 





Q. 꽃비원 홈키친은 어떻게 시작하시게 된 거죠?


처음에는 테이블 2개를 놓고 예약제로 식당을 운영했어요. 10평 남짓했고, 최소 2시간 전에 메뉴를 선택해서 예약하시면 저희가 농사를 짓다가 중간에 와서 요리를 해드리고 또 끝나면 농사를 지으러 가는 식이었죠. 실험적으로 했던 것이 지금은 규모가 조금 커진 거고요. 현재는 11시 30분 부터 3시까지만 운영을 하고 있고, 저녁에는 예약제로만 운영하고 있어요. 


고정 수입에 대해 계속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올해는 한 번 도 못 나갔지만 꾸준하게 마르쉐에 참여해 왔거든요. 마르쉐에 개점해서 농산물도 판매하고, 꾸러미도 보내보고 하는데도 농사를 짓고 생계를 유지하는 게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수익성이 높은 작물인 고추를 해볼까 하는 고민을 하기도 했고요. 그런 고민 중에 꽃비원 키친을 시작하게 된 거예요. 사실, 키친을 시작할 때 아내가 요리에 대한 부담이 있었어요. 요리를 좋아하고 잘하지만 전문 요리사는 아니니까요. 


그래도 해본 거죠. 우리가 생산한 걸 바로 소비할 수 있고, 소비자 중에서 요리하는 걸 부담스러워 하는 분들에게 건강한 먹거리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요. 저희가 가지고 있는 방향성은 우리 가족이 함께 시골에서 삶을 살아내는 거에요. 농약을 치고 수익성이 높은 농산물을 생산하기보단, 우리가 우애에게 먹이려고 건강하게 키웠던 밭작물. 그걸로 자급자족하고 남는 생산물을 가지고 여러 가지 형태로 확장해 나가고 있는 거죠.





Q. 농사도 지으면서 키친을 운영한다는 게 쉽지 않아 보이는데 어떠신가요?


농사일을 너무 우리의 삶에 끼워 맞추려고 하지 않아요.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의도치 않은 변수가 많이 생기거든요. 밭에 조금 일찍 나가려고 했지만, 아이가 늦게 일어나기도 하고, 밭에서 일하다 보면 아이가 힘들어서 일찍 들어오게 되기도 하고요. 우리가 너무 체계적으로 일했으면 힘들었을 텐데, 그렇게 일을 하지는 않아요. (웃음) 아침에 아내가 먼저 밭에 나갈 동안 제가 아이를 돌보고요. 아내가 들어와서 같이 식사를 하고 나면 그제야 제가 밖에 일하러 나가요. 아이의 스케줄에 맞게 유동적으로 일하게 되는 거죠. 식당을 운영하는 것도 시간을 정해 놓았고 저희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서 크게 힘들지는 않아요. 지금은 또 막내 처제가 내려와서 같이 도와주고 있고요. 사실, 올여름도 너무 더웠잖아요. 이럴 때는 오히려 식당에서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행복하기도 해요. (웃음)





Q. 농사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농사의 매력은 자급자족인 것 같아요. 예전에 도시생활을 할 때 규격화된 먹거리의 상품화에 대해 안타까움을 많이 느꼈거든요. 제철이라는 말이 무색하기도 하고, 무엇이든 원하면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세상이잖아요. 사람들이 직접 생산하고 요리를 하는 즐거움에 대해 알면 좋겠다는 생각을 그즈음에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아내랑도 나중에 농사를 직접 지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많이 했고요. 


땀을 흘리는 노동, 식물을 가꿔서 열매를 맺은 걸 직접 먹어보는 게 정말 큰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시골에서 농사 짓는 게 힘들다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저랑 아내의 경우에는 농사일에 대한 만족도가 높거든요. 농사일이 실제로 힐링도 많이 되고요. 저희는 계속해서 소농, 자급농으로서 농업의 카테고리 안에서 농사를 짓고 싶은 마음이에요. (웃음)



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대학교를 졸업할 때 즈음 일본에 있는 '모꾸모꾸 농장'사례를 접하게 되었어요. 당시, 6차 산업형 농장으로 큰 성공을 거둔 곳이었는데요. 저희가 처음 농사를 시작했을 때 모꾸모꾸 농장과 같이 농장 안에 레스토랑, 여러 가지 공방, 다양한 체험 거리가 있는 그런 농장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꿨던 것 같아요.  


6년이 지났고 형태가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농장과 조금 떨어진 곳에 키친을 마련하게 되었고 이제 곧 있으면 키친옆에 민박집도 같이 운영할 예정이거든요. 비록 규모 면에 있어서 6차산업형 농장이라고 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는 농장을 만들어 나가고 싶어요. 우리가족이 소농으로써 계속해서 자립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네요. (웃음) 





Q. 끝으로 귀농 준비하거나, 시골에서의 삶을 희망하는 분들에게 조언을 하자면요?


일단 목표가 확실해야 할 것 같아요. 저나 아내의 경우는 농사를 좋아하기 때문에 시골에 내려올 수 있었고, 농사도 시작할 수 있었거든요. 어느 한 시점만 바라보고 동경해서 시골로 내려온다면 그 삶을 지속하기는 어려울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시골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정확하게 계획을 세우는 게 중요할 것 같은데, 이왕이면 시골에 내려와서 이미 적응을 잘하고 있는 분들을 만나 뵙고 조언을 구하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네요. 또 한가지는 귀농, 귀촌했으니깐 '나 혼자만의 삶을 누릴 거야'라는 마음가짐보다는 마을 사람들과 잘 어울려서 지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마을마다 상황이 다를 테지만 훗날 분명 서로에게 도움이 필요한 순간들이 찾아오거든요. (웃음)  





꽃비원 농장 인터뷰를 마치며


8월의 어느 무더운 여름날, 논산에 있는 꽃비원 농장을 다녀왔습니다. 정광하 농부님이 운영 중이신 꽃비원 키친에서 1시간가량 꽃비원이 걸어온 길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늘 좋은 농부님을 만나 뵙고, 그분들과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감사함을 느낍니다. 부디 이번 편에서도 정광하 농부님과 가족분들의 진솔한 농사 이야기가 읽는 이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농사가 주는 진정한 매력은 무엇일까요? 저도 가끔 고민을 해봅니다. 과연 어떠한 매력이 농부에게 농사가 즐겁다는 느낌을 주는 것일까 하고요. 정광하 농부님이 말씀하신 대로 자급자족, 땀을 흘리는 노동의 가치, 치유의 의미에 크게 공감을 합니다. 실제로 네덜란드의 한 농가에 방문했을 때, 농사일하면서 삶에 활력을 받는 사람들을 직접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다양한 매력이 있는 것이겠지요. 정광하 농부님을 만나 뵙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시금 농사의 매력은 참 무궁무진 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렇기에 더 많은 사람이 다양한 농사의 매력을 느꼈으면 하는 소망도 생겼습니다. 언젠가는 더 많은 사람이 농사의 매력을 느끼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농부님이 그러셨죠. "보다 많은 사람이 찾아올 수 있는 농장을 만들고 싶다"고요. 저는 그 얘기가 참 와 닿았습니다. 더욱 많은 이들에게 농사의 매력이 무엇인지, 자연에서 얻은 작물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려줄 수 있는 그런 꽃비원이 되었으면 합니다. 사람들이 자주 드나들고 농장의 이야기가 곳곳에 울려 퍼지면 언젠가는 '모꾸모꾸 농장'의 사람들도 꽃비원을 방문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웃음)


꽃비원을 방문하는 이들이 제2의 꽃비원을 꿈꾸는 그런 농장으로 커 나가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언젠가 감천배가 무르익어서 수확할 시기가 되면 한 번 불러주세요. 그 맛이 얼마나 달지 무척이나 궁금하거든요. 그럼 가족분들 모두 몸 건강히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     


월간농터뷰 [9월호]로 곧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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