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농터뷰 [10월호] 인물 편
안녕하세요, 제주도에서 가족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있는 강지완 농부입니다. 어릴 때는 미술에 소질이 있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서 화가가 되거나 미술을 전공하게 될 줄 알았어요. 하지만 집안의 여건이 안돼서 다른 진로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아버지께서 농사를 짓는 걸 어릴 때부터 지켜보면서 자라기도 했고, 20년 후의 제 모습을 그려보니 농사를 짓고 있는 제 모습이 제일 저와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버지께 정식으로 농사를 배운지는 이제 햇수로 4년째가 되어가네요. 뭐랄까요. 농촌에서 자라는 자식들의 경우에는 어릴 때부터 일을 배우면서 자라잖아요. 한 30년 정도 농사일을 배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웃음)
사실, 어릴 때는 농사를 짓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아버지가 1년 동안 정말 힘들게 농사를 지어서 600만 원 정도 벌면 그걸로 가족들이 1년을 생활해야 했거든요. 농사를 짓겠다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빨리 돈을 벌어서 집안에 보탬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 이유로 대학교도 가지 않으려고 했고요. 하지만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으로 대학교는 들어가게 되었어요.
대학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아버지 일손을 도와드렸어요. 한 날은 선과장에서 아버지가 키우신 귤을 납품하는데 주변에서 그러시더라고요. "너희 아버지 진짜 귤 잘키우시는 거 아니?" "제주도에서 정말 손으로 꼽히는 품질의 귤을 키우시는 분이셔". 이런 얘기를 들으니 괜히 제가 뿌듯해지더라고요. 그간의 노력을 인정받아서인지 최근에는 전보다 훨씬 후한 값에 귤을 납품하기 시작했고요. 20년 30년 뒤 제 모습을 그려봤을 때 제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 제일 성공할 수 있는 일이 자연스럽게 농사일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
저희 농장에는 이름이 없어요. 대신 저희 농장의 주소인 두모리 30번지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어요. 저도 농장 이름이 없는지에 대한 이유는 잘 모르겠네요. (웃음) 주로 두모농장, 30번지라는 이름으로 납품하고 있어요.
저희는 가족 농이고, 최근에 동생이 합류하게 되면서 네 식구가 함께 일을 하고 있어요. 워낙 제주도에 귤을 키우는 농가가 많잖아요. 수많은 농가들 중에서 그래도 농장이 깨끗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고 자부해요. 그에 맞는 인증서도 많이 보유하고 있고요. 저희 생각에는 청결이 잘 유지된 농장에서 더 좋은 품질의 귤을 생산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실제로 제주에서 정말 손꼽는 품질의 귤을 생산하고 있기도 하고요. (웃음)
귤은 우선 일남일호라고 해서 극조생이 있고요. 보통 10월~11월 사이에 수확해요. 12월이 조금 넘으면 나오는 귤은 조생이라고 하고요. 동쪽에는 햇볕이 좋아서 조금 더 일찍 수확하기도 해요. 저희 농장에서 키우는 극조생은 유라실생이라는 품종이 있고, 조생 귤은 산나홍, 블러브 오렌지가 있어요. 이 외에도 여러 가지 품종을 키우고 있어요.
예전에는 아버지께서 한 품종만을 고집하셨어요. 그러다 보니 수확이 집중되는 시기에 사람 구하기도 힘들고 전량 물량을 판매하는 것도 힘들더라고요. 품질이 아무리 좋아도 물량이 한꺼번에 몰리니 판매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어요. 그때부터 계획적으로 재배하고 수확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셨던 것 같아요. 극조생부터 조생까지 여러 품종을 재배하게 되면 차례로 수확을 해서 판매할 수 있게 되니 농가의 입장에서는 안정적으로 농장을 운영할 수 있거든요.
12월에 전정(가지를 잘라주는 일)작업을 해요. 나무의 모양새를 만들어주는데 이 작업이 정말 중요해요. 5월이 되면 나무에서 꽃이 펴요. 꽃이 만개하는 거죠. 그러면 꽃 털기 작업을 해요. 나무를 툭툭 쳐서 꽃잎을 떨어뜨리는 작업이에요. 아무래도 꽃이 너무 많이 달리면 꽃에서 생긴 꿀 때문에 온갖 곤충들이 날아와서 피해를 보기도 하고, 곰팡이가 피기도 하거든요. 과실이 어느 정도 자라서 3~5cm가 되면 열매 속기 작업을 해요. 한 가지에 귤이 너무 많이 달리게 되면 아주 작은 크기의 귤만 달리게 되거든요. 적절한 크기의 귤이 달리도록 열매를 솎아주는 작업을 하는 거죠. 이 작업이 끝나면 그 이후로는 수확 철까지 크게 할 일이 없긴 해요.
과일을 고르실 때 꼭지를 보잖아요. 귤은 별 모양 꼭지가 달려있는데, 눈으로 보기에 꼭지 색깔이 초록색이면 그건 귤이 덜 익은 거에요. 또 노랗게 잘 익었지만 말라 비틀어져 있으면 저장이 조금 오래된 귤이고요. 저온저장실에서 귤을 인위적으로 온도를 높여서 빨리 익힌 거에요. 저희 농가 같은 경우에는 나무에 조금 더 귤이 달려 있게끔 한 다음에 수확하고 있어요. 그러면 소비자분들이 귤을 받아보셨을 때 꼭지가 노랗고 싱싱한 귤을 받아 보실 수 있거든요.
우선 배울 게 너무 많아요. 농사를 짓다가 기계가 고장 나면 기계도 고쳐야 하고요. 과학, 수확도 알아야 하고 토양은 말할 것도 없고요. 물론 이건 귤 농사뿐만 아니라 모든 농사가 똑같이 해당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아까 잠깐 얘기 드렸던 전정 작업이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학교에서 배운 기술 방법은 다양한데 아무래도 살아 있는 식물을 상대하다 보니 변수가 많더라고요. 이론과 실전이 많이 다르다는 걸 농장에서 몸소 겪고 있는 중이에요.
지금도 전정을 배워가는 처지지만 처음에는 온종일 나무를 빙글빙글 돌기만 했어요. '여기를 잘라야 하는 것 같은데?', '혹 잘랐는데 잘못 자른 거면 어떡하지?' 분명히 아버지가 나무 근처에 가시면 어떤 가지를 잘라야 할지 보이는데 막상 제가 나무 앞에 서면 안보이더라고요. (웃음) 가지를 잘못 자르면 수확하는데 문제가 생겨요. 귤이 많이 안 달리거나, 맛이 없는 귤이 달리게 되거든요.
즐거운 농사 이야기를 얘기하고 싶은데 그런 기억은 많이 없는 것 같아요. (웃음) 대부분 농사일을 하면서 힘들거나 어려웠던 기억들이 떠오르는데요. 올해 태풍이 유난히 심했어요. 태풍이 워낙 세기도 했고, 하루 반 나절 동안 머물다가 소멸하더라고요.
하우스에서 재배하는 귤을 홈쇼핑에 납품하기로 했는데 태풍 피해 때문에 그러지 못하게 되었어요. 저희는 나름대로 대비를 잘 했지만 하우스 문을 닫고 하루 반나절 정도 있다 보니 습도가 많이 올라가서 귤이 잔뜩 습도를 먹게 되었고, 결국엔 열매껍질이 푸석푸석해져서 품질이 많이 나빠졌거든요. 농사라는 게 자연에서 크는 거다보니 변수가 정말 큰 것 같아요.
95%는 만족하고 있어요. 우선 혼자서 일하는 게 익숙하고 편해서요. 그런 부분이 잘 맞는 것 같고요. 나름의 보람도 있거든요. 열심히 농사를 키워서 제값을 받을 때의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고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귤 농사에 대한 자부심도 많이 생겼고요. 다만 부족한 5%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농사일이 워낙 힘들기도 하고요. 농촌에서 배우자를 만나는 게 조금 힘들거든요. 물론 저 같은 경우는 올해 11월에 결혼을 하게 되었지만, 결혼하기까지 우여곡절이 참 많기도 했고요.
중간 상인 업체에서 농가에 방문해서 귤의 값을 매기고 가져가는 경우가 있고요. 저희가 직접 농협이나 감협 선과장에 납품하는 때도 있어요. 극히 드물게는 홈쇼핑, 백화점에서 직원들이 나와서 귤을 가져가는 일도 있는데요. 이런 농가는 몇 군데 되질 않아요. 그만큼 품질이 아주 뛰어나야 하거든요. 또 홈쇼핑이나 백화점에 납품하게 될 때 그들이 원하는 일정 물량을 맞춰줘야 해서 보유하고 있는 생산량이 많아야 하고요.
그럼요. 저희도 계획은 2년 전부터 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일이 바빠서 짬이 안 나기도 하고, 지금까지는 판매하는 데 크게 어려움이 없었거든요. 하지만 준비는 해두려고 해요. 아무래도 중간 단계를 거치게 되면 소비자분들과 직접거래했을 때보다 제값을 못 받기도 하고요. 소비자로서도 갓 수확한 싱싱한 귤을 다음 날 받아 보실 수 있으니 더 좋고요. 하지만 아직은 농장의 품질을 올리고 저희가 만들어갈 농장을 준비하는 데 조금 더 집중하려고 해요.
아버지께서는 30년 전부터 6차 산업형 농장을 꿈꿔오셨어요. 농장에 놀러 오신 사람들이 직접 귤을 따서 맛도 보고, 귤로 만든 차도 드시고, 농장 근처에서 하룻밤 정도 쉬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오셨던 거죠. 그거를 위해 요즘 가족들이 함께 농장 주변으로 돌도 쌓고, 산책로도 만들고 있어요. 아버지의 오랜 꿈이 저희 모두의 꿈이 된 거에요. 먼 훗날, 이 농장이 완성되게 된다면 농장에 놀러 오시는 분들이 요양할 수 있고, 치유 받을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다른 일을 찾아보세요. (웃음) 진심 반 농담 반인데요. 우선 농사일은 준비하는 과정도 힘들고 자본도 많이 들어요. 제주도만 봐도 땅값이 많이 올랐거든요. 앞으로는 더욱 많이 오를 거고요. 혹 농사를 짓고 싶은 청년 중에서 집에 부모님이 농사를 짓고 있다면 그런 분들에게는 농사일을 추천해 드려요. 당장 부모님께 농사에 관한 기술을 배울 수도 있고 농사를 지어 볼 땅도 있으니깐요. 그렇지 않다면 농사를 짓는 것은 별로 추천해 드리고 싶지않아요. 다만 정말 농사를 짓고 싶다면 농가에 가서 일을 먼저 배워 보는 걸 추천드리고 싶어요. 아니면 직장 생활을 하다가 틈틈이 수확철 에만 가서 일손을 돕는 것도 좋지 않겠냐는 생각이 드네요. (웃음)
강지완 농부의 인터뷰를 마치며
늘 누군가와 함께했던 제주도행. 막상 혼자 오게 되니, 외롭고 쓸쓸한 기분이 든다. 더군다나 날씨도 흐리고 비바람이 쏟아지니까 외로움이 배가 된다. 왠지 집으로 돌아가면 감기에 걸릴 것 같다.
누군가를 만나서 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된다. 짧게나마 그 사람의 인생과 철학을 들을 수 있는 이 시간이 참으로 좋다. 이제 돌아가면 글을 정리해야 하는 고된 숙제가 남아 있지만, 그 또한 금방 지나가리라.
- 제주도 여행 일기 중 -
강지완 농부님의 트럭을 타고 도착한 두모리 30번지 농장. 작고 아담한 제주다운 담벼락, 끝없이 펼쳐진 정돈 된 산책길이 제가 본 농장의 첫 모습이었습니다. 산책길을 따라 걷다 보니 중간마다 귤나무가 심긴 밭이 보이더군요. 아직 귤이 맺히지 않은 어린나무도 보였고, 먹음직스럽게 한 움큼 귤이 맺힌 나무도 보였습니다.
좀 더 가까이 가서 귤을 보니 어찌나 색깔이 노랗고 예쁘던지. 농부님이 먹어보라고 주신 귤을 한 입 베어 물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달콤함이 느껴졌습니다. 더 신기한 건 농부님은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귤을 드시더군요. 저에게 그 귤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맛이었습니다.
농부님의 집 앞 벤치에 앉아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탁 트인 공간에 푸른 귤나무와 나무들이 보였습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동안의 걱정이나 스트레스가 많이 날아가더군요. 그리고 이어진 대화에서 농부님이 앞으로 가족분들과 만들고 싶다던 치유 농장의 얘기를 들으면서 참으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저 또한 마음의 치유를 받고 농장을 떠납니다. 더욱 많은 이들이 두모리 30번지 농장을 찾아서 맛있는 귤도 먹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자연과 함께하는 순간을 만끽하는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날씨가 더 쌀쌀해졌네요. 추운 날 감기 조심하시고요, 제주도에 내려가면 또 찾아 뵙겠습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
월간농터뷰 [11월호]로 곧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