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브로콜리 Jan 30. 2023

나는 도대체 왜 먼저 연락을 했을까?

기억왜곡

독일어 학원에서의 인연  

우리는 한때 독일어 학원에서 함께 B2 시험반을 준비하던 사이였다. 그 친구는 나보다 대여섯 살쯤 어렸는데 어디서 왔는지 모를 자신감으로 무장한 독일어를 일단 내뱉고 보는 친구였다.  근데 그 친구 가만 보니 그녀는 그저 말하기 시간이 부족했을 뿐, 문법은 나보다 월등하게 잘했기에 저렇게 연습하다 보면 잘 말하게 되겠지 싶었다. 하지만 짝을 이뤄하는 말하기 수업이 다가오면, 난 굳이 그녀 옆에 앉지는 않았다. 


4년 만에 연락을 했다.

"너 스위스 돌아왔다면서?  오랜만에 우리 커피나 한잔 마실래?"라고 연락한 건 분명히 나다.  당시 함께 공부하며 함께 같이 성장한(스위스 정착, 취업, 독일어) 친구들 모임에 그 친구를 함께 부른 것이었다. 큰 뜻은 없었다. 가볍게 만나 그저 이야기나 하고 마음에 맞으면 또 만나면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날짜와 장소를 잡으니 다들 흔쾌히 좋아했고 우린 오전 10:30, 취리히의 한 카페에서 간단힌 브런치를 즐겼다. 


기억왜곡 

다들 오랜만에 만난 지라 서로의 근황을 털어놨다. 여자 넷이 만나니 얼마나 인텐시브 한 [Intensive] 대화였는지 숨도 안 쉬고 이야기가 돈다. 근데 이 4년 만에 온 이 친구, 한 친구가 이야기하는데 중간에 자르고 자기 말만 한다. 마치 이날의 주인공은 그 친구인 것처럼 주제를 확확 돌려대는 바람에 짜증이 슬금슬금 일어났지만 꾹 참았다. 하지만 너무 어이없는 구간에 상대의 말을 자르고 자기 말만 하기를 무한 반복.  


그때 생각났다. "아 맞다... 얘 원래 이런 애였지"  맞다. 내가 이 친구를 가까이하지 않았던 이유가 남의 말을 전혀 안 듣는 것이었는데, 그 동안 안 봤더니 이 친구에 대한 내 기억이 이 친구를 정상범위에 있는 사람이라고 크게 왜곡했나 보다. 


대화의 중간을 덜겅 잘라버리고 정말 자기 말만 하던 그 친구. 이건 말 자르기 대회에 나가면 세계 1등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녀의 심한 가로채기 대화로 인해 함께 있던 우리 셋은 서로의 눈을 보고 쓴웃음을 지은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나에겐 "넌 아기 왜 안 낳아? 이유가 뭐야?"라고 묻는데, 이게 굉장히 실례되는 질문인지 전혀 혀 모르는 것 같았다. 내가 임신을 안 하는 건지 혹은 하고 싶은데 못하는 건지 그걸 알고 싶어 하는 걸까? 만약 후자라면, 그게 얼마나 곤란스러운 질문인지 알려나 싶었다. 


그리고 이건 나중에 후 현타가 온 짜증남이다. (당시엔 바로 인지하지 못했었던게 후회된다.) 

그 친구는 1년전 출산을 했고, 애기 이쁨에 행복가득 생활을 즐기고 있는 시점이었다. 자연스럽게 아기 이름이 뭐냐고 물었었다. 아이 이름은 유럽, 미국 이름도 아닌 적어도 나에겐 낮선 이름이었다. 나는 애써 속으로 이름을 발음해보던 찰나 이 친구는 다른 친구에게 아기 이름을 한번 말해보라고 시키는것이 아닌가? 처음엔 외국이름을 다른 외국인이 발음을 들으니 그저 친구사이에 호기심으로 넘길 수 있겠다 싶었는데, 발음이 잘 안되는걸 가지고 여러번을 시키고 있었다. 여러번 아기 이름을 반복해도 발음이 썩 좋지 않은건 나도 알겠지만, 좀 과하다 싶었다.  그리고 확 껴들어 그냥 말해버렸다. "애기 이름 발음 못하는거, 그거 너네 나라에 그 소리나 발음이 없어서 그런거니까 그냥 냅둬" 그러고 나서야 질문공세는 마무리 되었다. 이전에도 그 친구가 독일어 발음도 힘들어했고, 암묵적으로 그 친구는 발음이 별로 안좋다는걸 알고있었는데 이번엔 독일어도 아닌그깟 외국 애기이름 가지고 놀리는것 같이 기분이 덩달아 나빠 버렸다.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 - 법정 스님

내 나라 아닌 먼 타국에 나와 살다 보니 확실히 사람 만나는 반경이 좁다. 너무 좁다. 게다가 30대 후반으로 접어들다 보니 더 어렵다. 그래서 나는 예전에 알게 되었던 사람들을 다시 연락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부담가지 않게, 커피 한잔 그리고 맛있는 점심도 그리고 산책도 제안해 본다. 연고지 없는 이곳에서 이 정도 에너지는 쏟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국사람이든 아니든 천천히 다가갔다. 이거 뭐 조심스럽게 썸 타는 남자 만나듯이 밀당하는 것 같이 들리는데, 음... 뭐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냥 그렇다고 치자. 


근데 이번엔 완전 대 실수다. 내가 왜 그 친구를 불러가지고 다른 친구들에게도 민폐를 끼쳤나 싶을 정도로 후회의 쓰나미가 몰려든다. 심지어 브런치가 끝나고 한 친구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솔직히 네가 걔를 불러서 놀랐어. 근데 어차피 네가 있으니까 난 그냥 나간 거야. 그것만 알아줘" 


옷깃 스치는 사람들 인연까지 맺으려 하는 그 소모적인 일, 창피하지만 바로 내가 저지른 일이다. 

나뿐만 아니라 같이 있던 친구들에게도 피해를 준 것이 곧네 미안해진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잘 마무리해야 할까? 

하이고야....

작가의 이전글 밥 차려 주는 손님, 그리고 날 성당으로 이끈 손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