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를 돌아보고, 어떤 음식을 먹을지 고민하며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은 여행이 가져다주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하지만 때때로 아무 생각 없이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냥 푹 쉬어도 괜찮은 여행.
그렇다고 패키지여행을 떠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작년에 멕시코 칸쿤을 다녀와서 휴양지에 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때 내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이 바로 알래스카 크루즈였다.
배 안에서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쇼를 관람할지 결정하는 것은 그날그날의 기분과 컨디션에 따라 선택하면 되었다. 그리고 기항지에 도착해서 꼭 하고 싶었던 옵션 투어는 미리 예약을 해두었고 그렇지 않은 곳은 동네 산책을 하기로 가볍게 마음먹었다.
아이들 셋을 데리고 떠나려면 짐의 무게만큼이나 마음의 무게도 상당한데 크루즈 안에 키즈 프로그램도 잘 되어있다니 떠나기 전 이렇게 마음이 홀가분할 수가!
나는 그 순간 찰나의 기분 좋고 설레는 포인트를 감지했다. 그리고 그것은여행 전 일상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나에게 찾아온 마음의 여유는 나에게 기분 좋은 생각을 마구 가져다주었는데 나는 그것을 일에도 적용하고, 여행 준비에도 적용하면서 무척이나 설레었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나의 내면은 방방 뛰는 모습이 마치 하늘에 닿을 것처럼 느껴졌다.
아이디어나 영감은 어는 순간 홀연히 찾아온다. 그리고 신이 준 그 깜짝 선물은 그 순간 최대한의 효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중에 다시 끄집어낸 아이디어는 당시의 순간만큼의 설렘을 기대할 수도 없고, 흘러넘치는 에너지를 경험하기도 힘들다.
우리 부부는 그 영감을 놓치지 않았고, 뒤로 미루지도 않았다. 수첩에 마구 써내려 갔고, 일의 우선순위가 다소 변경되었다.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며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몰입했다. 힘들다는 생각보다 나로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느낌이 시간을 지배했다.
내가 그토록 원했던 자유
나는 자유를 간절히 원하며 회사를 그만두었다. 물론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계속 미루다 가는 결국 나이가 들어서도 그 삶을 지속할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하였고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용기를 내보기로 하였다.
다른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둘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취업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우리 부부가 원했던 것은 나이가 들어서도 지속할 수 있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사는 것이었다.
우리 부부는 그렇게 가보지 않은 길에 첫 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회사를 그만둔 나는 쉬는 법부터 제대로 익혀야 했다. 왜냐하면 회사를 그만두고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지만 여전히 형식적으로 쉬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해야 할 일들을 생각했고, 이렇게 쉬어도 되나 불안해했으며 남들 일할 때 놀았다는 생각에 불필요한 일거리를 만들어 댔다. 내가 그토록 원했던 자유를 삶에 펼쳐낼 방법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그토록 원하던 자유는 단순한 '쉼'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과 휴식 속에 교묘하게 숨겨져 어느 순간 느껴지는 벅차오르는 감정과도 같은 것이다. 내가 이번 여행을 특히나 기억하고 싶은 이유가 있다. 일과 삶의 조화라는 측면에서 그동안 그토록 꿈꾸던 모습에 가장 가까이 다가서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미친 듯이 일에 열정을 쏟아부었고, 여행을 떠나서는 오로지 그 여행에만 집중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 나는 그곳에 있었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즐기고 싶은 것을 즐기면서 일주일을 보냈다.
나는 과거에도 있지 않고, 미래에도 있지 않았다. 오직 현재라는 그 순간에 있었음을. 그리고 알래스카가 그 순간 나와 함께 했음을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