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제약에서 벗어났고, 나의 일상은 회사를 다닐 때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제는 평범한 일상이 되었고, '그때 어떻게 회사를 다녔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의 삶은 정말 많이 변했다.
작년 말 우리 부부는 알래스카 크루즈를 떠나기로 계획했다. 여행을 예약할 당시는 무려 8개월 뒤의 일이라 까마득히 멀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일상에 집중하고 살다 보니 어느덧 시간은 훌쩍 지나가 있었고 아이들 여름방학과 함께 알래스카는 슬슬 우리 삶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마치 고질병처럼 어디론가 훌쩍 떠나는 것을 좋아하는데 지금 내 삶에서 여행은 회사원이라는 신분일 때 떠났던 여행과는 사뭇 다르다. 회사를 다닐 때는 나의 시간과 노동에 대한 보상으로 과감하게 항공권을 예매하고, 어디론가 떠나 일상을 벗어나는 것에 여행의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여행은 어떤 보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행을 떠나기 전 우리 부부는 막판 스퍼트를 올리며 일에 열중했다. 일주일간 자리를 비울 것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몸이 빠르게 움직여졌다. 아니, 몸이 아닌 생각이 빨라졌다고 해야겠다. 여행은 나를 어디론가 데려간다. 만약 여행을 가서도 마음이 다른 곳에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여행이 될 수 없다. 내 마음을 온전히 새로운 장소에 놓아두기 위해 나는 여행을 떠나기 전 미련 없이 할 것을 다해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렇다. 지금 나에게 여행은 내 안의 잠재된 힘을 끌어내어 현재의 삶을 더 충만하게 해 주고, 미래의 원하는 순간에 나를 온전히 묶어주는 힘이다.
여행을 떠날 시간이 다가올수록 삶에서 알래스카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커져만 갔다. 여행의 설렘 덕분일까? 내 안의 기분 좋은 상태는 나에게 새로운 아이디어와 영감을 샘솟게 했다. 여행은 그간 정체된 일상에 새로운 공기를 불어넣어 주었고 내 머릿속은 마치 잠에서 깨어난 듯 느껴졌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은 집을 떠나는 순간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대나 설렘, 아이디어 등 여행을 준비하면서 비롯된 간접적 경험은 여행을 떠나기도 전에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알래스카 크루즈 일정은 7일이지만 여행이 방사하는 영향권 내 머물렀던 기간까지 합하면 대략 총 21일간의 여정이 될 것 같다.
총 21일간의 여정, 여행을 준비했던 14일, 여행지에서 7일
여행을 떠나기 전 14일은 열정이 불길처럼 타올랐던 시간이라면 여행기간 7일은 고요하고 평온했으며 감동의 순간들이 온몸을 에워싸듯 포근하게 느껴진 시간이다.
여행을 다녀온 지 이제 일주일이 지났다. 아직 여독이 채 풀리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알래스카에 있었던 것이 마치 꿈인 양 느껴진다. 모든 여행은 특별하고 소중하다. 하지만 이번 알래스카 여행은 그 장소가 주는 특별함도 있지만 퇴사를 하고 캐나다에 온 뒤 내가 꿈꾸었던 일과 삶의 조화라는 측면에서 그것에 가장 가까운 경험을 선사해 주었다.
이번 알래스카 여행이 그러한 특별한 경험을 선사했다는 것은 나에게 큰 의미를 지니며 앞으로 여행이 갖는 의미 또한 많은 측면에서 달라질 것임을 직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