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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지니 Jul 09. 2024

밴쿠버에서 인생 첫 캠핑

특별한 것도 없었는데 뭐가 그렇게 좋았을까?

대자연 속에서 디지털 디톡스

전화도, 인터넷도 되지 않는 곳에서 하루동안 살아보기


 공원 입구에서 캠프사이트로 더 깊숙이 들어가자 어느 순간 세상과의 연결이 끊겼다.


 내가 비행기를 탔을 때를 빼고 또 이런 순간이 있었던가? 그런데 그것이 대자연 속에서라면?


 나는 첫 캠핑에 대한 기대를 거의 하지 않았지만 이러한 상황 자체만으로도 마치 새로운 세계에 도착한 듯 낯선 설렘으로 다가왔다.


 문명의 이기(利器)와 멀어지면 과연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


 온 가족이 다 함께 텐트를 치고, 에어매트에 바람을 넣고, 캠핑의자를 꺼내어 둥그렇게 세팅도 했다. 마치 텅 빈 공간에 우리 가족만의 아지트를 만드는 것처럼 힘을 합쳐 무언가를 이루어 낸 뿌듯함이 있었다.


 캠프장 주변을 한 바퀴 쭉 돌아보고 우리 자리로 돌아왔을 때 정말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이 순간을 내 눈에 담은 것만으로도 이번 캠핑의 역할은 이미 다 한 것이 다름없다고 여겼다.


나무 사이사이를 비집고 펼쳐지는 찬란한 빛들의 향연. ‘내가 이렇게 멋진 자연의 경이로운 광경 속에 있다니!’

 빼곡히 들어선 나무, 오래된 이끼, 떨어진 나뭇가지들… 굳이 꾸미려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자연의 모습은 너무 아름다웠다.


 빛은 아름다운 자연을 비춰 주기도 했지만 그 속에 있던 우리들 한 명 한 명도 빠지지 않고 빛나게 해주고 있었음을 안다. 당신도 자연처럼 지금 그대로 충분히 아름답다며!


쉽게 불붙는 가스 파이어 핏도 있었지만

굳이 나무 장작을 챙겨간 이유

 

 자연은 나를 반강제적으로 문명의 이기와 멀어지게 하였고 나는 의도치 않게 그 덕을 톡톡히 보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나를 그 순간에 온전히 머무를 수 있게 해 준 것이었다.


 강렬히 타오르는 불빛에 이토록 멍하니 빠져든 적이 있었던가?


 남편과 나란히 앉아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며 소소한 대화가 오갔던 순간. 나의 정신은 다른 곳에 있지 않고 온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쉽게 불을 붙일 수 있는 가스 파이어 핏이 있었지만 우리는 굳이 나무 장작을 챙겨갔다. 나무에 불을 피우고 캠프파이어를 해야 캠핑의 느낌을 제대로 살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불 붙이기가 쉽지 않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우리가 불 앞에서 이렇게 쩔쩔매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불 앞에서 뿌연 연기를 잔뜩 들이마시고 저 멀리 도망쳤다가 다음번엔 연기가 눈에 들어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아니 불 붙이기가 이렇게 힘든데 어찌 그리 산불은 자주 나는 거야?” 사라지는 불꽃을 향해 연신 부채질을 해대는 남편을 향해 한마디 던져 본다.

 나무 장작에 불이 제대로 붙자 자욱했던 연기는 사라지고 비로소 불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다.


 솟아오르는 강렬한 붉은빛, 타닥타닥 나무 타 들어가는 소리, 어릴 적 시골에 가야만 맡을 수 있었던 추억의 냄새, 손을 지그시 갖다 대면 느껴지는 따뜻한 기운, 그리고 불 속에서 익은 감자를 꼬치로 꺼내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느껴지는 달콤함.

 

 나에게 오감(五感)이 충족되면 그것은 하나의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된다.


 이토록 작고 둥근 화로 하나가 나에게 이렇게 강렬한 추억을 남기게 될 줄이야!

 


추위, 곰 출몰, 화장실

마치 오지로 캠핑을 떠난 것처럼

 

 캐나다에 온 지 6년 차가 되었지만 이번이 첫 캠핑이라는 것은 이곳이 캐나다이기 때문에 한 번쯤 짚고 넘어갈만하다. 내가 오버 나잇 캠핑을 주저했던 이유 몇 가지 꼽자면 밤중 추위, 곰 출몰, 화장실 이 세 가지가 가장 컸을 것이다.


 이 세 가지는 캠핑을 망설이게 만들지만 한편으론 호텔에 머무는 여행과는 차원이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캠핑장에서 참고 참다 결국 들어간 화장실에는 밑이 내려다 보이는 오래된 변기가 놓여 있었다. 순간적으로 ‘왜 화장실 시설을 개선하지 않고 이대로 두는 거야’하고 불만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텐트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기 위해 침낭 속에 들어가 누웠는데 양 옆의 창문으로 높이 솟아오른 나무들이 나를 에워싼 듯 느껴졌다. 좀 전에 화장실에서 품었던 불만은 어느새 싹 잊고 나는 또다시 첫 캠핑의 낭만에 빠져 들었다.


 ‘내가 이런 곳에서 잠을 자게 되다니!’


 그동안 따뜻하고 모든 게 갖춰져 있는 곳이 최고라고 여겨왔다. 그런데 제대로 갖춰진 것 하나 없는 이곳에 머리를 대고 누웠는데 나는 왜 그토록 마냥 좋았을까?


 다음 날 맑고 경쾌한 새소리에 절로 잠이 깼다. 전날 밤 완전히 골아떨어졌던 나는 그제야 몸 전체가 뻐근한 게 느껴졌다. 나는 또다시 화장실의 불편함과 마주해야 했지만 그것들은 내게 잠시 머무를 뿐 캠핑장에서 우리 가족이 함께 했던 모든 순간은 결코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있다.


 이제는 내가 느꼈던 그 불편함 마저도 캠핑을 더 캠핑답게 만들어주는 것이라 여기며 집에 돌아와 현재 편하게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에 더욱 감사하게 되었으니 첫 캠핑은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의 소득이었다.


 집에 돌아와 다음 주 캠핑장 예약까지 해버렸는데 이것 만으로 우리 가족의 첫 캠핑이 어떠했는지 아마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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