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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Feb 22. 2024

할머니를 위한 유일한 기도

”요즘 할머니 어떠세요?“

“좀 괜찮아지는가 싶더니 또 그러시네. 매일이 살얼음 판이다.”

“아휴… 병인 걸 알면서도 엄마가 너무 힘들어하니 나도 너무 속상하네요.”

“그래, 나도 똑같다. 병인 거 알면서도 할머니가 막 윽박지르고 그럴 땐 정말 못 견디겠네.”

“아무튼 엄마가 고생이 많아요.“


딸깍. 엄마와의 전화를 끊으며 크게 한숨을 내쉬니 곁에 있던 아이들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증조할머니가 많이 아프신가 봐.”

“그럼 어떡해? 할머니 하늘나라 가?”

“아니, 아직 그런 건 아니야.”

“우리가 기도해야겠다.”


아이들은 증조할머니를 걱정하더니, 이내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뭐라고 기도를 했냐고 물었더니 증조할머니 오래오래 사실 수 있게 기도를 했다고 했다. 참아왔던 눈물이 터졌다. 할머니에게 너무 죄송해서. 잠시나마 할머니를 미워했던 나를 용서하기 어려워서. 쏟아지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올해로 89세가 되셨다. 5년 전 할아버지를 먼저 보내드리고도 할머니는 큰 병 없이 잘 지내셨다. 허리와 무릎 관절 등이 안 좋아 몇 차례 수술을 하시긴 했지만, 생명과 직결되는 지병은 없으셨다. 그랬기에 할머니가 떠나면 홀로 남을 엄마는, 늘 할머니가 10년만 더 사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다. 그만큼 혼자인 엄마에겐 혼자인 할머니가 벗이자 가족이고 버팀목이셨다. 그렇게 두 분이서 외로운 마음을 기대가며 잘 사시는 것이 나에게도 축복처럼 느껴졌다. 내가 엄마 곁에 있지 못하는 상황에서 엄마 곁에 할머니가 계신다는 건 큰 위안이었다.


그런 할머니가 아프시다. 엄마 말에 의하면 작년 초부터 약간씩 낌새가 있었다고 하는데 아무도 그렇게까지 짐작하지 못했다. 할머니에게 치매가 오고 있을 줄이야.


어느 날부터 할머니는 부쩍 돈에 민감해지셨다. 돈을 둔 자리를 기억하지 못하셨고, 함께 사는 유일한 가족인 엄마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한두 번은 해프닝이었지만 서너 번이 되자 엄마도 참지 못하고 맞섰다. 남의 돈이라면 십 원짜리 하나도 손대지 않는 엄마에게, 하필 돈과 관련된 의심은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엄마는 억울하고, 할머니는 분노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여러 가족의 설득으로 할머니는 치매 검사를 받으셨고, 치매 초기라는 진단을 받으셨다. 하루아침에 할머니는 치매 환자가, 엄마는 치매 노인을 간병하는 간병인이 되었다.


할머니의 증상은 여타의 초기 치매 환자들이 그렇듯 어느 날은 괜찮다가 어느 날은 폭발하기를 반복했다. 엄마는 그런 할머니를 이해해 보려 노력했지만, 병은 이해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별다른 약이 없는 치매라는 질병 앞에서 엄마와 할머니는 매일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갔다. 할머니가 괜찮은 날에는 엄마도 괜찮고, 할머니가 무너지는 날에는 엄마도 함께 무너지면서. 일상인 듯 일상 아닌 날들을 살아가게 되었다.


할머니의 분노가 극에 달했던 날, 결국 엄마가 할머니를 견디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왔던 날. 나는 해서는 안될 생각을 하고 말았다. ‘할머니가 더 나빠지시기 전에, 더 엄마를 비참하게 만들기 전에, 이제 그만 할아버지 곁으로 가셨으면.’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소름 끼쳐서 정신을 다잡고 온마음으로 할머니께 죄송하다고 빌었다.


엄마가 직장생활을 하던 동안, 나를 먹이고 입혀주셨던 분은 할머니셨다. 군식구였던 엄마와, 나, 동생을 한 번도 천덕꾸러기 취급하지 않고 우리를 거둬주신 할머니. 내가 거쳐온 수많은 생의 이벤트(수능, 입시, 임용, 결혼, 출산 등)마다 간절한 기도로 내 앞길에 등불을 놓아주신 우리 할머니.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집에 가면 굽어진 허리와 꺾인 무릎에도 한달음에 달려 나와 “진아, 왔나. 오느라 고생했제?”를 연발하는 우리 할머니. 그런 할머니의 저물어가는 생 앞에서 내가 한 생각이 고작 그런 생각이라니.


오늘도 할머니와 엄마는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 중이다. 생의 기억을 하나씩 잃어가는 할머니와 그런 할머니를 오롯이 혼자 힘으로 모시며 자신의 생을 소진하고 있는 엄마. 두 여자의 삶이 너무나 슬프고 아프다. 멀리 있다는 핑계로 전화 통화나 겨우 하면서 할머니가 안쓰럽다고, 하지만 엄마의 고통도 이해한다고 차마 말할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들어주고 또 들어주는 일뿐임을 안다.


알쓸인잡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김영하 작가가 치매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치매가 과거를 잃어버리는 병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미래를 잃어버리는 병이라고. 그 말이 비수처럼 꽂힌다. 미래를 잃은 할머니와 그런 할머니에게 미래를 저당 잡힌 엄마는 오늘도 각자의 불안 속에서 하루를 마무리했을 것이다. 부디 내일은 할머니의 마음이 온전하시길. 그리하여 엄마의 마음도 조금은 평안하시길. 할머니가 살아계신 동안, 내 몫의 기도는 그뿐임을 되새기며. 건강하시던 때의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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