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덟이 저물어가던 2011년 겨울, 면허를 땄다. 친구들 대부분이 수능을 치르자마자 유행처럼 면허를 땄지만 겁이 많아도 너무 많던 나는 면허 같은 건 꿈도 못 꾸었다. ‘내가 운전을 한다고? 내가 운전대를 잡고 도로를 달린다고? 말도 안 돼!‘ 그랬던 내가 다른 지역으로 임용을 치고, 차 없이는 출퇴근이 힘든 곳에 첫 발령을 받으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면허를 따게 되었다. 면허를 따고 도로 연수도 마치기 전에 이미 내가 살던 원룸 주차장에는 나를 위한 하늘색 마티즈가 마련되어 있었다. 덜덜 떨며 마티즈에 시동을 걸고 첫 출근을 했던 날을 잊지 못한다. 집에서 학교까지 고속도로는 30분, 산길로 돌아가면 50분이었지만, 그날은 한 시간 반이나 일찍 출발을 했다. 도로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어쩌지, 출근을 했는데 주차를 못하면 어쩌지, 별의별 고민과 걱정에 밤을 거의 새우다시피 했던 그날. 그 작은 차를 주차선 안에 주차하기 위해 몇 번이나 차를 이리 빼고 저리 빼던, 그 첫날.
올해로 운전대를 잡은 지 14년이다. 두려움으로 가득하던 첫날의 기억과는 달리, 이제 운전은 나의 노랑이 되었다. 운전 그 자체도, 차라는 공간이 주는 아늑함도 모두 좋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커피 한 잔을 사서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꽂은 뒤, 시동 버튼을 누르고 D로 변속을 하는 순간이면 노랑 빛이 탁, 켜지는 듯하다. 아, 이 작고 귀한 나만의 공간. 이곳은 안전해. 그리고 다정해. 따뜻해.
여전히 나는 겁이 많고, 가끔씩 어이없는 실수도 한다. 그래도 운전대를 잡은 순간이 기꺼운 여러 이유가 있다. 운전을 하는 동안은 다른 생각을 깊이 하기 어렵다. 운전은 주의해야 할 것이 많으니까. 주변의 풍경도 계속해서 바뀌니까. 창문을 열고 달리며 맞는 바람은 특별하다. 운전하며 맞는 바람은 길을 걸으며 맞는 바람보다 조금 더 매섭지만 언제든 창문을 닫아버리면 막을 수 있는 바람이니까. 즐기고 싶은 만큼 즐기다가 피하고 싶을 땐 언제든 피할 수 있으니까. 비가 오는 날이면 앞유리에 토닥토닥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위로가 된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도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리는 소리도 토닥토닥, 마법처럼 같은 소리니까. 차 안에서는 내가 울든 웃든 떠들든 누구의 눈치도 살필 필요가 없다. 오직 나만의 아지트가 되니까. 때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우리들‘의 아지트가 되기도 하고.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좋은 건 내 속도대로, 내가 핸들을 트는 방향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운전대를 잡은 게 나라면 목적지까지의 길은 오직 내 판단대로 가야 하니까. 목적지가 없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고.
요즘 첫째 아이의 축구 경기를 따라다니며 부쩍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 얼마 전에는 강원도 정선에 다녀왔고, 이번 주에는 춘천과 양구에 가야 한다. 이제 울진이나 보은, 제천 등은 가깝게 느껴질 지경이다. 편도 두 시간쯤은 ‘뭐, 가깝네!’ 허세까지 부리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운전을 싫어했다면 그 모든 길이 고통스러웠을 텐데. 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일인지!
가끔은 혼자 조용히 운전대를 잡고 싶은 욕망이 피어오를 때도 있으나 사랑하는 두 아이와 함께여도 상관없다. 두 아이를 태우고 운전대를 잡으면 고요함은 잠시 포기해야 하지만. 혼자일 때 느끼지 못했던 설렘이 샘솟는다. ‘나’라는 자리에 ‘우리’를 넣고 나면 전혀 다른 감각이 일어난다. 이 작고 아늑한 공간에서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이 먼 미래에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 기대하는 마음이. ‘우리는 또 새로운 곳에 닿을 거야. 그곳에서 크고 작은 추억을 만들 거야. 그건 대체로 기쁘고 두근거리겠지만, 때론 슬프고 힘든 순간도 있을지 몰라. 어떤 추억이든, 먼 훗날에는 모두 그리운 순간으로 남을 거야.‘ 속으로 주절주절 주문을 외듯이 되뇌고 나면 아무리 먼 길이라도 용기가 생긴다. 새 다짐이 피어오른다.
어떤 파랑의 날들이 와도 괜찮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질 것을 믿기에 또 괜찮다. 내게는 매일 우리를 새로운 곳으로 데려다 줄 크고 튼튼한 차가 있고, 운전대를 잡는 것을 즐거워할 마음이 있고, 내 자리 뒤에는 큰소리로 노래하는 두 아이가 있으니까. 나의 노랑이 이토록 충만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