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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봉봉 Aug 02. 2022

하드락카페와 IPA | 토르 러브앤썬더

그리고 물론 생당근과 블루치즈딥

 마블은 어느 순간 그런 걸 참 잘하는 것 같다. 관객이 극장에서 가장 두근두근하는 순간을 포착해 설렘요소를 마구 뿌려준다거나, 영화가 가장 클라이막스로 가는 순간에 필살기 치트기 다 몰아넣어서 황홀경의 세계로 인도하는. '판 깔렸을때 더 몰아치기' 전략. 

<토르 : 러브앤썬더> 를 나는 개봉 첫 날에 보러갔다. 

1. 티켓오픈 되자마자 돌비관을 예매해두고, 

2. 개봉날까지 기대기대기대하다가, 

3. 드디어 개봉날이 되어 극장에 앉아, 

4. 이제는 외우고 있는 돌비앳모스 광고 영상이 드디어 끝나고

적막이 깔린 그 순간...

이 모든 노력 끝에 어떤 영화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온갖 상상과 설렘과 기대로 가득한 바로 그때,

Guns N Roses의 'Sweet Child O'mine' 전주...그 까랑한 기타소리가 나오는데, 라그나로크의 향수가 올라오면서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지어졌다.


 어느 순간부터 '토르'를 떠올리면 하드락카페 갬성이 생각난다. <토르 : 라그나로크>에서 빌런들 때려잡는 장면을 아예 레드 제플린 'Immigration Song'의 고퀄 뮤비로 만들어놔서 그렇다. 그리고 진한 맥주 쉰내 비슷한 것도 느껴진다. 이건 <어벤저스 : 엔드게임> 에서 나온 뉴 아스가르드의 곰팡이 필 것 같은 집에서 칩거하는 모습을 봐버려서 그렇다. 짐승짐승한 외모 속에는 엄청난 순애보에 다정한 마음씨를 갖고 있으며, 백성을 끔찍히 생각하는 현명한 왕이지만 엄청 초딩같은 승부욕도 갖춘 팔색조 같은 남자. <토르:러브앤썬더> 에는 토르의 이 여러가지 매력을 구석구석 세심히 '구경'할 수 있는 시리즈였다.


 <토르>는 마블에서도 가장 변화가 많았던 시리즈 중 하나이다. 캐릭터와 세계관 무엇보다도 영화가 가지는 컨셉이 가장 많이 진화했다. 1, 2편은 어벤저스와 인피니티워로 향하는 마블유니버스의 중간다리 기능에 충실했던 시리즈이다. 사실 좋게 말해서 중간다리 인거지, <토르 : 다크월드>는 마블팬들 사이에서 가장 혹평받는 시리즈 중 하나이다. 설정과 '아스가르드' 세계관을 보여주는데 너무 치중한 나머지 캐릭터의 매력을 찾기가 힘들었던 것도 이유라고 볼 수 있다. 무려 나탈리 포트만이 나오는데도 여주는 매력적이지 않았고, 지금은 가장 사랑받는 빌런, 로키 역시 그저 '간악한 배다른 동생' 정도에서 그치는 정도였다. 아이러니하게도 토르 시리즈 주인공들의 매력은 토르 개별 시리즈에서보다 오히려 어벤져스 시리즈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시련(?)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역작이 탄생한다. 세 번째 토르 시리즈 <토르:라그나로크>는 마블 유니버스의 한 획을 그었다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연출을 선보였다. '라그나로크'의 감독 타이카 와이티티가 롹덕후인건지, 레드 제플린의  'Immigration Song', 이 명곡을 영화에 너무너무 잘 버무려냈다. 곡 자체가 가지고 있는 속도감과 파괴력을 토르의 썬더와 망치에 그대로 입혀놨다. 장면을 위해 곡이 사용된 것이 아니고 곡을 위해 장면이 만들어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빌런이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토르의 왕좌를 넘보는 헬라 역을 맡은 케이트 블란쳇. 반지의 제왕의 엘프군주 갈라드리엘과 동일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강력하고 폭력적인 여전사를 완벽하게 연기했다. 등장부터 너무나 파워풀하고 공포스러웠던 헬라. 역시 시리즈가 성공하려면 빌런의 존재감과 매력이 너무 중요하다. 전반적인 스토리 짜임 역시 쫀쫀했던 <토르 : 라그나로크>의 결말은 <어벤져스 : 인피니티워> 와 연결이 되면서 바야흐로 마블유니버스의 전성기를 여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시리즈였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흘러 인피니티워에 엔드게임까지 모두 치른 토르이지만 라그나로크 시리즈에서 만들어진 하드락카페 갬성은 러브앤썬더에서도 이어진다. 라그나로크가 2017년에 개봉했으니, 딱 5년 만이다. 하지만 5년의 세월이 무색할 만큼 라그나로크의 스토리문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고, 깨알같은 마블식 유머도 한번씩 등장하면서 옛 생각이 난다. 하지만 과거 마블시리즈의 영광을 빗댄다면 이번 시리즈가 좀 시시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기존의 문법을 그대로 유지하며 기본에 충실했다는 점은 반대로 생각하면 신선함이나 파격에서 약했다는 점도 되니까. 결말 역시...결말에 대해선 나도 좀 아쉬운 점이 많지만 각설하고 너무 디즈니스럽다는 말로 갈음하겠다.


 그래도 나는 마블과 디즈니 갬성에 좀 관대한 편이긴이고, 예술영화보다 상업영화를 좋아하는 취향이기에 즐겁게 봤다. 여전히 토르는 멋지고, 빌런 크리스챤 베일의 연기력이 관람포인트이다. 솔직히 나는 처음 1분은 크리스챤 베일인 줄 몰랐다. 물론 분장을 하긴했지만, 표정이 너무나 그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드러나는 그의 얼굴선...정말 소름이였다. <토르 : 러브앤썬더> 의 도입 5분의 몰입도는 굉장히 훌륭하다. (결말을 떠나서) 영화 내내 크리스챤 베일의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듯한 연기력을 볼 수 있다는 것이 특권처럼 느껴질만큼 훌륭한 빌런이었다.


 고로 나는 나중에 디플에 올라오면 집에서 다시 한 번 볼 것이다. 나도 마블처럼 한번 '판 깔렸을 때 더 몰아치기' 전략을 써볼까 한다. 토르에 묻어있는 하드락카페와 맥주쉰내 갬성을 살려서, 좋아하는 IPA 한 병을 따야지. 그리고 기본에 충실한 토르같은 생당근 깨끗이 씻어서 빌런같은 블루치즈딥 쿡 찔러 안주로 먹어야겠다. 생각만해도 기대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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