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한 달짜리 우리 집과 이별하는 날
한 달 살기의 마지막 날. 새로운 도시로 이동하기 위해 에어비앤비 호스트와 11시에 만나 키를 건네고 바로 버스터미널로 이동할 예정이다. 일어나서 간단히 일을 하고 씻고 가방을 싼 뒤 청소를 했다. 숙박비에 청소비가 떡하니 추가로 붙어 있지만 그래도 한 달간 우리가 지낸 곳이니 마무리하는 마음으로 바닥을 쓸고 괜히 물티슈로 한 번씩 더 닦아낸다.
처음엔 남편이 왜 마지막 날 굳이 청소를 하느냐고, 혹시 호스트 눈치를 보는 것은 아닌지 묻길래 우리가 지나간 자리가 지저분한 채로 남아있는 걸 원하지 않고 무엇보다 한 달간 잘 지낸 곳에서 마지막까지 깔끔한 기억을 남기고 싶어서 그러는 거라고 답했다.
우리는 종종 누군가를 배려하는 행동이 남에게 비위 맞추고 눈치 보는 것이라 말하곤 한다. 하지만 남을 배려하는 나를 가장 많이 보고 좋은 영향을 받는 건 나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그 모든 것은 결국 나를 위한 일인 것이다. 호스트나 우리가 나간 이후 이곳을 청소할 누군가에게가 잘 보이고 싶은 게 아니라 내가 이곳을, 그리고 이곳을 지낸 우리의 시간을 잘 봐줬으면 하는 그런 마음.
그리고 마무리 청소를 하면서 한 가지 더 좋은 건 깜빡하고 두고 갈 뻔했던 물건을 찾을 수 있다. 둘러본다고 여기저기 봐도 가끔 놓치는 것이 생기는데 특히 침대 헤드와 매트리스 사이에 끼인 작은 머리끈이나 간밤에 읽다 베개 밑에 밀어 넣어둔 책 같은 것을 빠뜨리지 않고 챙길 수 있다. 욕실에 둔 샤워타월을, 침대 옆 협탁에 꽂아둔 충전기를, 거실 테이블 위에 어제 개켜둔 양말과 티셔츠를 빠짐없이 담는다.
그렇게 하나씩 우리 물품을 챙기고 필요에 의해 옮겨둔 숙소 물건의 위치를 원래대로 되돌리다 보면 마치 되감기 버튼이라도 누른 것처럼 점점 우리가 처음 왔던 한 달 전 모습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한 달간 지낼 곳이라는 설렘으로 늘어둔 우리의 흔적을 다시 거둬들이며 자연스럽게 집과의 이별 과정을 거친다.
빗자루질과 물티슈 청소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쓰레기를 버렸다. 다시 남의 집이 되었다. 긴 외출 끝에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아, 집이다! 외쳤던 곳에서 현관을 나서는 순간 화장실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낯선 곳이 된다. 적지 않은 횟수의 체크아웃을 했음에도 이 순간이 오면 왠지 모를 긴장감이 돈다. 이문을 나서면 어젯밤까지만 해도 자연스럽게 열고 들어온 현관문을 이제 마음껏 열 수 없다. 이 장소는 더 이상 우리의 공간이 아니다.
고작 한 달일 뿐이지만, 일이 년 산 것이 아니라고 한 달짜리 정이 더 작거나 가벼운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저 우리를 기다리는 새로운 집이 있기 때문에, 아쉬움을 뒤로 한채 씩씩하게 가방을 메고 나와 문을 닫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