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2022년 디지털 노마드 여정 돌아보기

8개국 12개 도시 224일 달팽이 라이프

디지털 노마드  여행하는 사람

하지만 여행은 우리가 디지털 노마드로서의 삶을 계속 유지하고 싶게 만들어주는 최고의 동기부여이자, 영감이 되어준다.


2022년은 코로나덕에 반강제로 선택한 제주살이를 종료하고 다시 달팽이 라이프를 시작한 의미 있는 해이기도 하니까, 어디를 다녔고 어디가 좋았는지 가볍게 브리핑해보려고 한다.



2022년 04월

프랑스 파리, 스페인 베날마데나


"한 달 살기 전후로 대도시를 짧게 여행하고 싶다"는 욕심도 끼워 넣어서 파리로 들어가는 항공권을 예약했다. 그렇게 4월엔 파리에 도착해 3박 4일간 열심히 돌아다닌 다녔고 올해 다녀온 여행지 중에 가장 좋았던 곳으로 파리를 주저 없이 꼽게 되었다. 오기 전에 하도 악평만 보고 와서인지 (심지어 파리 일정을 취소할까, 같은 이야기까지 했었다) 파리는 우리 예상보다 아름다웠고, 다리가 아프고 지쳐도 계속 걷고 싶었다. 여기서 꼭 한 달 살기 해보자고 약속했는데, 꼭 이뤄지면 좋겠다. 



그리고 "생일엔 스페인에서 한 달 살기를 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이뤄보고 싶어서, 스페인 남부 해안가에 있는 리조트를 예약했다. 부활절을 비롯한 연휴가 좀 있었지만 아직 성수기는 아닌 시기여서 생각보다 가격이 저렴했다. 


짧은 파리 여행을 마치고 스페인 베날마데나 오션뷰 리조트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치즈와 과일, 빵으로 아침을 차려 먹은 뒤 오후까지 일하고 퇴근하면 바다로 수영하러 나가는 한 달을 보냈다. 특히 아침마다 걸었던 해변 산책로가 정말 좋아서, 이것 때문이라도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2022년 05월

스페인 베날마데나, 스페인 네르하, 영국 런던, 북마케도니아 스코페


베날마데나에서 한 달 살기를 마치고 우리 부부가 스페인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인 네르하에서 며칠을 더 머물렀다. 네르하를 끝으로 당분간 바다 근처에서 지낼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날이 흐려도 꿋꿋하게 해변으로 달려가 시간을 보내곤 했다. 우리가 좋아하는 곳에 3년 만에 다시 온 게 벅차고 감격스러워서 매 순간이 소중하고 즐거웠다. 


5월 중순에는 3박 4일 런던 여행을 했다. 한 달씩 머무르는 곳에선 일하기 좋은 사이클로 하루가 돌아간다면, 파리나 런던 같은 대도시에선 일찍 일어나 많이 돌아다니고 저녁이면 숙소로 돌아오는 단기 여행자의 패턴으로 바뀐다. 스코페 한 달 숙소 가격과 큰 차이 없는 비용을 3박 호텔비로 지불하고, 우리가 자리를 비운 동안 일이 괜찮을는지 걱정하면서도 열심히 런던을 누비고 다녔다. 처음 와보는 런던이지만 워낙 익숙한 이름과 랜드마크가 많아서 그런지 어색하지 않았다. 사진 속에 들어와있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짧은 런던 여행 후엔 북마케도니아 스코페로 갔다. 원래 가고 싶었던 곳은 오흐리드였지만 일할만한 인터넷 속도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한 달짜리 숙소를 한참 알아보다가 결국 5일 정도로 조정하고 북마케도니아 수도인 스코페에서 한 달을 지내보기로 했다. 


인터넷 속도를 최대로 변경해준 호스트와 일하며 생활하기에 최적이었던 숙소 덕에 스코페에선 마음껏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올드타운과는 거리가 제법 있는 조용한 동네에서 머무르면서 맛있는 것 해 먹고, 더운 낮 시간엔 숙소에서 일하다가 해가 지면 산책을 하러 나갔다. 손을 잡고 가로수 아래를 걷다가 정해진 코스처럼 마지막엔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렀다. 처음 와본 도시지만 이미 발칸의 몇몇 도시에서 한 달 살기를 해본 우리에겐 마냥 낯설지만은 않은, 그런 나날이었다.




2022년 06월

북마케도니아 스코페, 오흐리드,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스코페 한 달 살기를 마치고 도착한 오흐리드는 내가 상상하던 것보다 더 아름답고 마음에 쏙 드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느리게 걸었고 많은 감정이 담긴 시선으로 호수를 바라봤다. 바다와는 또 다른 평화로움이 있었다. 



지금보다 더 복잡해지지 않길 바라면서도 다음엔 더 인터넷이 빨라졌으면 좋겠다는 양가감정을 느끼며 루마니아 부쿠레슈티로 이동했다. 두 도시를 거쳐 총 16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이동한 끝에 도착한 부쿠레슈티는 아침 6시가 조금 지난 때였는데도 출근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평온한 오흐리드에서의 시간이 꿈처럼 느껴졌다.


생각보다 숙소비가 비쌌던 탓에 중심가에서 좀 떨어진 곳으로 구했는데 굉장히 유쾌한 호스트를 만난 데다가 숙소가 사진보다 훨씬 좋았다. 테이블이 두 개나 있어서 끼니때마다 일하던 책상 위를 치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큰 메리트였다. 매트리스가 너무 얇아서 허리가 좀 고생하긴 했지만 근처 대형마트에서 저렴하게 공수 가능했던 삼겹살과 맛있는 자두가 큰 위안이 되어주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올드타운 쪽으로 나가서 분수쇼, 음악회 등의 문화생활을 누린 것도 잊지 못할 추억 중 하나다.




2022년 07월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루마니아 브라쇼브


부쿠레슈티는 정말 좋았지만 이미 스코페에서부터 33도를 웃도는 더위에 시달린 우리는 시원한 곳에 가고 싶었다. 그래서 지형상 한여름에도 많이 덥지 않다는 브라쇼브를 골랐고 거기서도 올드타운과 좀 거리가 있는 곳에 숙소를 잡았다. 그리고 그 동네에서 지내는 한 달 동안 지금까지 지내본 곳을 통틀어 친절한 사람들을 가장 많이 만났다. 처음 본 우리를 서슴없이 "한국에서 온 내 친구들"이라고 표현해주는 아저씨도 있었고, 현금도 없는데 하필 발권기의 카드 결제 기능이 잘 안 됐던 날 선뜻 버스표를 사주신 아주머니도 계셨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앉아계시던 할머니 할아버지가 인자한 미소와 함께 나란히 손을 흔들어 주실 때면 곧 떠날 우리의 처지를 알면서도 잠시나마 동네에 섞인 기분이라 그 자그마한 소속감에 마음이 따뜻해지곤 했다. 저렴한 가격에 눈이 멀어 흐린 눈으로 바라봤던 소파베드가 생각보다 불편해서 부쿠레슈티에 이어 두 달 연속 수면의 질이 하락했던 건 참 힘들었지만 다시 돌아봤을 때 육체적인 괴로움보다는 심적인 따스함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걸 보면 분명 의미 있는 시간이었던 거겠지?





2022년 08월

루마니아 브라쇼브, 헝가리 부다페스트, 폴란드 바르샤바


브라쇼브에서 15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달려 부다페스트로 갔다. 우리에겐 많은 추억이 담긴 곳으로 2018년 처음 지낼 때만 해도 일을 막 시작했을 때라 일은 일대로 하면서 돈은 돈대로 못 벌던 시기였다. 한국에 가서 재정비를 하기로 했고, 우리의 여행이 이제 끝난 건 아닐까 울적해하던 남편에게 "우린 우리가 번 돈으로 꼭 여기 다시 오게 될 거라고" 위로했다. 그리고 우리는 딱 1년 뒤에 또 부다페스트에 갔다. 



다시 시간이 흘러서 2022년 08월, 다뉴브 강가에 있는 한 호텔에서 머무르며 아침마다 산책하고 예전에 일하러 갔던 카페들을 다시 찾아가서 노트북을 켰다. 일이 끝나면 가방을 내려놓고 부다와 페스트를 오가며 야경을 감상했다. 부다페스트에 오기 전까지는 다시 달팽이 라이프가 시작됐다는 기쁨에 한 달에 한 번씩 매번 새로운 도시로 옮겨 다녔는데 그게 상당한 피로를 유발했음을 깨달았다. 일하고 여행하는 우리에겐 한 도시에서 적어도 한 달 반에서 두 달 정도의 머무름이 필요하다는 리뷰와 함께 이번 유럽 여정의 마지막 도시, 폴란드 바르샤바로 떠났다.


좌 : 부다페스트 CCC, 우 : 바르샤바 코스타 커피




2022년 09월

폴란드 바르샤바, 그리고 한국


와지엔키 공원에서 피아노 연주를 듣겠다는 일념 하나로 체류를 결정한 바르샤바는 생각보다 추웠고 우리는 감기에 시달렸다. (알고 보니 코로나였다.) 녹물이 나오고 지저분한 숙소, 속도 빠르다던 지인들의 호평이 무색할 정도로 느린 인터넷, 최악의 컨디션 속에서 열흘간 줌 라이브 수업을 네 번이나 진행했다. 한국에 도착해서도 코로나 양성으로 자가격리를 할 때도 숙소에서 VOD 찍었으니까 이쯤 되면 디지털 노마드가 아니라 디지털 노비가 아닐는지.


그 와중에도 바르샤바 숙소 근처에 있던 디저트 가게의 케이크가 맛있었다는 건 기억이 난다. 그래서 바르샤바는 여름 시즌에 꼭 다시 가보고 싶다. 녹음이 우거진 계절에 공원을 한번 걸어보면 지금보다는 훨씬 좋은 기억으로 업데이트할 수 있지 않을까. 




2022년 10월 - 12월

한국에서 태국으로


한국에 추위가 찾아오기 시작할 무렵 우리는 태국으로 왔다. 방콕에서 일주일 정도 지내고 치앙마이로 넘어와 두 달째 지내는 중이다. 이미 2년 간 약 일곱 달 정도를 태국에서 지냈기 때문에 익숙하고 편안했다. 치앙마이에 있는 동안 구매대행 셀러일을 하고 계신 분들과 같이 날짜를 맞춰 '노마드 원정대'라는 이름으로 모여서 같이 일하고 맛있는 거 먹으며 지내기도 했다. 


다 한국으로 돌아가시고 다시 남편과 둘이 되어 지내고 있는 요즘, 근 1년 중 그 어느 때보다 바쁘고 정신이 없지만 연말 연초라는 명목으로 일 년의 기억을 모아 돌아봤다. 2022년도 참 잘 살았으니 2023년에도 재밌게 떠돌아다닐 수 있길 희망해 본다. 2023년 12월엔 어디서 또 글을 쓰고 있게 될지, 기대가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도 우린 낯선 곳에서 적응해나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