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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노 6년 차, 내가 생각하는 디지털 노마드란


최근 나는 디지털 노마드에 대한 글을 기고하고, 우리가 디노로 살며 겪은 일화를 인스타툰(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카툰)으로 만들고 있다. 디지털 노마드라는 말속에는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회사라는 제약 가득한 곳을 벗어나서 일하는 프리랜서의 자유로움과 마음 끌리는 대로 훌쩍 떠날 수 있는 여행가의 자유로움이 함께 들어있는 것 같은 말처럼 들린다. 하나로도 좋은데 더블이니 끌리지 않을 수가 없다.


나도 이 단어가 주는 자유로움이 좋아서 디노를 꿈꿨고 홀가분함과 불안함을 품은 채 집 없이 떠돌며 6년째 살고 있다. 해외구매대행업을 하며 온라인 쇼핑몰에 올릴 상품을 찾고, 상품 이미지를 편집하고, 주문을 처리하고, 문의와 항의에 응대하는 일을 반복한다. 


좋아하는 일을 찾겠다는 명분하에 새로운 일 몇 가지를 동시에 시도해 봤다가 소소한 경험만 얻고 물러나기를 몇 번, 최근에는 즐겁게 몰두할 수 있는 일을 찾고도 팔꿈치의 충분한 협조를 얻지 못해 이틀 작업하고 하루 물리치료받으며 해오던 일과 하고 싶은 일을 병행하고 있다.


6년 전, 여행이 좋아서 선뜻 길 위에 섰지만 여행만 하고 살기엔 돈이 없었다. 유랑하며 만든 콘텐츠가 생계를 책임져 줄 때까지 버텨낼 정도의 열정이 없었다는 말이 정확하겠다. 


어쩌면 우리는 새로운 곳에 대한 호기심과 경험을 충족하기 위해 도전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거라기보다 반복되는 일상을 탈피했을 때 느낄 수 있는 여유로움에 빠져 여행을 원한다고 착각했던 것일지도. 그래서 떠나왔음에도 생계유지를 이유로 적극적인 관광을 미루고, 동시에 여행이 주는 여유로움을 그리워하며 사업의 규모를 제한하는, 그야말로 이도 저도 아닌 시간을 보냈다.


연차가 늘어날수록 우리를 “진짜 디지털 노마드"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생겼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당당하게 어깨 펴고 “핫핫, 네! 진짜가 여기 있습니다!”하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부러운 눈길로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기준에 부합할 만큼 많이 벌지도, 많이 놀지도 못하면서 타이틀만 달고 있는 거짓말쟁이가 된 기분이었다. 


온라인으로 돈을 버는 일에 관심이 쏠리면서 ‘수익 인증'이 넘쳐나고 하루 4시간,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하며 월 천만 원씩 번다는 사람들로 뒤덮인 세상에서 나만 계속 뒤처지고 있는 것 같아 불안했다. 


바보 같지만 어느 날은 ChatGPT에게 ‘돈을 잘 못 벌어도 사람들은 디지털 노마드가 되고 싶어 할까?’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나에게 ‘돈을 버는 것보다 삶의 질을 높이거나, 회사나 국가의 제약에서 벗어나거나, 일과 여행을 조화롭게 해 나가며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 목표인 사람들이 많이 있다'라고 답해주었다. 


이 답변을 듣고 내가 잊고 있던 마음, 원하는 곳에 갈 자유를 갈망했던 몇 년 전의 나를 떠올리며 펑펑 울었다. 그때 썼던 일기와 블로그를 아무리 찾아봐도 돈을 잘 벌고 싶어서 디노가 되고 싶다고 쓴 적이 없는데 어느 순간부터 돈을 많이 벌지 못하면 가짜인 것 같고, 내가 조금 더 좋은 숙소에 묵고 조금 더 좋은 항공기를 타지 못하는 게 잘못인 것만 같은 압박을 느끼고 있던 것이다. 그러니 원하는 삶을 살고 있어도 괴로울 수밖에.


내가 생각하는 디지털 노마드는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넓은' 사람이다. 어디로 갈지, 어디에 머무를지, 어디를 돌아볼지, 어디서 얼마나 일할지 등. 공간과 시간에 대해 각자의 기준에 맞춰 넣고 뺄 수 있는 항목이 조금 더 다양한 삶. 


좀 더 나아가 그러한 이점을 이용해 기르는 가축에게 먹이기 위해 머무르는 곳을 떠나 목초지를 찾아다니는 유목민처럼 익숙함을 내려두고 자신에게 보다 맞는 환경을 찾기 위해 짐을 꾸리는 사람들이 아닐까. 


회사 밖에서 살아가다 보면 나의 부족함이 극명하게 드러날 때가 많다. 온라인에서 다른 사람의 성과를 쉽게 접할 수 있어진 만큼 비교하기는 더더욱 쉬워졌다. 쉽게 드러난 한계에 좌절하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말처럼 쉽게 포기하기보다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었는지 되새기며 어제의 나를 돌아보고 오늘 아주 조금이라도 더 나아가자고 되뇐다. 이따금씩 방향을 잃고 다른 것에 눈이 팔리더라도 결국은 돌아와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지, 언제 떠날지, 당장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낼지, 끊임없이 묻고 선택하고 그 속에서 답을 찾아가는 동안 내가 조금 더 잘 살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나는 아직 디지털 노마드로 사는 게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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