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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파리에 가본 후 내가 느낀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그토록 아름다운 곳에서 왜 그랬을까


예전에 나는 파리를 떠올리면 이런 말부터 했다.

"난 그렇게까지 파리가 궁금하진 않아. 에펠탑 말고는 볼 게 없을 거야."

"지하철에서 냄새도 엄청 난다고 들었어. 몽마르트르 언덕에선 호객 행위하는 사람밖에 없다고 하던데."


그러면서도 '에펠탑은 한번쯤 보고 싶네' 같은 생각을 함께 한 건 안 비밀.


파리행을 결정하기 전까지 내가 이랬다면 그곳에 가기로 결정한 이후부터는 오히려 남편이 유난이었다. 인터넷을 한참 찾아보고 온갖 사건사고 사례를 섭렵하더니 거의 뭐 가면 털리는 게 확정인 것처럼 말해서 파리를 아예 건너뛰어야 하나 고민했을 정도였다.


걱정 끝에 도착한 공항에서 유심은 먹통이고, 수하물로 온 캐리어 바퀴 하나는 날아갔고, 남편은 그 앞에서 갑자기 코피를 쏟는 등 정말 야단법석이었지만 그 와중에도 우리 둘 다 묘하게 들떠있었다.


퍼붓는 비로 인해 운동화가 흠뻑 젖었음에도 체크인 후 꿋꿋하게 다시 축축한 신발을 신고 나섰다. 빅버스 로고가 박힌 우비를 야무지게 챙겨 입고 2층 제일 앞에 앉아 겨우 두어 줄의 좌석을 가려주는 위쪽 칸막이에 의지해가며 시내를 구경했다. 개선문을 지나 에펠탑이 보이는 곳까지 가는 동안 아마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바보처럼 웃었을 것이다.


처음 가본 파리는 그간의 걱정이 무색하도록 우리 마음에 쏙 들었다. 안전제일주의 남편의 철통 방어덕인지, 앞뒤좌우로 보아도 털어봐야 뭐 하나 없을 것 같은 행색이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우리 근처에 오는 검은손 같은 것도 없었다.


어느 정도 적응하고 본격적으로 돌아다녀보니 에펠탑도, 개선문도, 루브르 박물관도, 오랑주리 미술관도 다 멋졌지만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걷기 좋은 파리 그 자체였다. 특히 봄의 파리는 연둣빛 나뭇잎들이 한껏 올라와 푸릇푸릇한 길을 만들고 있었고 여기저기 핀 노랑 분홍 빨강 꽃 덕분에 화사한 느낌이 가득했다.


모든 순간이 꿈같았고, 행복했다.


그렇다면 나는 왜 파리를 경험해 보기도 전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그건 아마도, 대도시는 '비싸다', '정신없다' 등의 의견을 내세워 그 안에 내가 진짜 가지고 있던 감정을 숨기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선뜻 가기 어려운 곳, 길게 체류하기엔 부담되는 가격일 거라 예상되는 곳이어서 지레 겁먹고 거기에 대한 어떤 동경을 갖지 않기 위해 먼저 방어막을 친 거다. 손이 닿지 않는다고 해서 저 높이 달린 포도가 신포도일 거라 치부해 버렸던 이솝 우화 속 여우처럼.


하지만 계속 몰랐으면 몰라도, 한번 안 이상 계속 밀어내기란 어려워졌다. 파리에 다녀온 이후 나는 가지고 있던 편견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좀 더 마음을 열기로 했다. 더불어 내년엔 파리 한 달 살기를 꿈꾸는 중이다.


속에서 신포도를 꺼내어 인정하고 나자, 그것은 그 무엇보다 달고 맛있는 포도가 되었다. 나는 고품질 파리도 얻고, 후련함까지 얻었다. 파리 좋아. 나는 파리가 좋아. 너무 좋았어. 그러니까 또 가고 싶어. 이렇게 말할수록 정말 내가 그곳에 가있는 것만 같고, 에펠탑 앞으로 길게 뻗은 공원을 매일 산책하고 있을 것만 같은 생생함에 빠져들어 기분이 묘하다. 비행기 표도 끊지 않았는데 이미 나는 파리 한 달 살기를 하고 와서 다시 가기 위해 준비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깊은 곳에서 알게 모르게 벽을 만들고 있었던 제2, 제3의 파리가 하나씩 고개를 들었다. 하나하나 다 돌아보려면 돈도 시간도 많이 필요할 것 같고 어쩌면 가보지 못하는 곳이 훨씬 더 많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경험해 보기 전까지는 덮어놓고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기로 했으니 누가 좋다, 나쁘다 하더라도 내가 직접 겪어볼 순간을 기다리며 마음을 넓혀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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