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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도 하고 여행도 하며 살고 있습니다

디지털 노마드와 디지털 노비 그 사이쯤에서 살아가는 이야기 

2016년 여름, 스페인을 다녀온 이후 5년 이내에 스페인에 가서 살아보자는 남편의 말을 시작으로

2017년 겨울, 회사에 안녕을 고하고

2018년 봄, 집도 없고 빚도 없는 가뿐한 몸으로 제주도에 내려갔다.


2년여 사이 우리의 목표는 스페인 정착에서 일단 해외로 나가본다로 바뀌었고 여행을 지속하기 위한 방법을 찾다가 온라인 셀러를 해보기로 결정, 출국 전 아슬아슬하게 사업자 등록까지 마치고 미리 끊어둔 스페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두어 달 가량은 여행에 집중했고 그 해 여름, 그 전까진 한 번도 가본 적 없었던 낯선 도시 베오그라드에서 본격적으로 일과 여행을 같이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헝가리 부다페스트,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루마니아 티미쇼아라,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불가리아 소피아, 태국 치앙마이와 방콕, 일본 오사카, 베트남 호찌민, 말레이시아 조호바루 등등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 이상 머무르며 일정 시간은 일하고 그 외엔 천천히 도시를 돌아보는 여행을 이어가다 코로나가 터진 2020년 다시 제주로 들어와 현재까지 머무르고 있다. 


(루마니아 티미쇼아라)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세르비아 수보티차)


(헝가리 부다페스트)


그렇게 여행하며 다녀온 곳들에 대한 정보와 이런 삶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운영 중인 블로그에 포스팅하다 보면 종종 '저도 디지털 노마드가 되고 싶어요' 같은 댓글을 접하곤 한다.

디지털 노마드가 꼭 여행이란 단어를 포함하는 것은 아니기도 하고 디지털 노마드 같은 그럴싸한 단어가 우리에게 가당키나 할까 싶은 오글거림이 따라붙지만 과거에 우리가 했던 정해진 곳으로 출퇴근하고 이동이 가능한 범위 내에 집을 얻어 살던 방식에 비해 공간적 제약이 거의 없다시피 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디지털 유목민이라는 정의는 우리를 어딘가에 소개할 때 유용한 표현이 되어준다. 


한 때 포털 사이트에 디지털 노마드를 검색하면 나오던 이미지처럼 해변에 앉아 노트북으로 일하거나 하는 일은 없다. 운 좋게 이국적인 풍경을 자랑하는 테라스에 앉아 푸른 숲을 바라보며 일할 때는 있지만 그마저도 테라스석만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는다면 말짱 꽝이다. 


일과 여행을 함께 시작한 이후로 우리가 해온 여행은 일을 한 후, 혹은 일하기 전의 시간을 이용해 현지를 즐기는 방식이었다. 가장 중요한 건 여행이 아니라 일이었다.







항상 인터넷이 잘 되는지, 콘센트는 가까이에 있는지, 오래 앉아 일해도 될만한 장소인지 등을 따져가며 일할 곳을 찾고 가능하다면 일정 시간은 숙소에서 일을 한 이후에 밖으로 나갔다.

도시의 모습과 거리의 사람들을 구경하고, 그들 사이에 섞여 식사를 하거나 커피를 마시고 시간이 허락하는 선에서 이곳저곳 걸어 다니다가 몇 시간 남짓의 짧은 여행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온다. 내일의 일과 여행을 위해 정해진 시간에 잠을 자야 하기 때문이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마을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베오그라드 성사바 교회)


(세르비아 전통 레스토랑)


여행이 좋은 이유는 새로운 경험, 새로운 문화, 색다른 음식 앞에서 반복되는 일상을 잊고 여유로움과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어서는 아닐까. 대체로 우리가 즐겨온 여행이란 그러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일하며 여행을 하기 시작한 이후로 하루 중 새로움이 차지하는 시간은 줄어들고 반복되는 일상이 많은 시간을 차지하게 됐다. 노트북 앞에서 몇 시간씩 앉아있다 보면 내가 지금 제주에 있는 것인지, 발칸반도 어느 나라에 와있는 것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가끔은 몰린 업무를 간신히 쳐내고 정신을 차려보면 창 밖이 어두컴컴하다. 그럴 때면 허탈하지만 어쩔 수 없다. 여행보다는 늘 일이 앞에 있다. 건물도 없고 로또도 안된 우리의 생계와 여행은 우리가 지켜야 하기 때문에.


사실 여행을 동반한 생활은 아주 쉽게 텅장을 유발한다. 여행과 관련된 일을 하지 않는 우리로선 여행을 하면 할수록 금전적 플러스가 되는 것은 없다. 그럼에도 오늘도 낯선 곳에서 일하는 여행자로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다양한 도시를 겪어보면서 마주하는 다른 사람들을 통해 배우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대처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좋아서이다. 좀 더 나아가서는 '가고 싶다'라고 말하고 시간이 지나 진짜로 그곳에 갔을 때의 희열이 중독적이다. '말하는 대로'가 이루어지면 계속 말하고 싶어 진다. 말하고, 이루고, 말하고, 이루고. 


그리고 다소 꿈같은 이야기지만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고 싶다. 그렇게 될 때까지, 정말 바람대로 살 수 있을지 실험해보는 중이다. 코로나로 인해 예정에 없이 제주에 오래 머물고 있지만 제주에서 1년 정도 살아보고 싶다던 남편의 말은 이미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제 '생일을 스페인에서 보내보고 싶다'던 나의 바람을 이루러 다시 떠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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