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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가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하는 일

디지털 유목민의 새로운 동네 적응하기

(이번 글은 2019년 08월을 기준으로 쓴 글입니다)


지난 주말, 90일간 머무르던 베오그라드를 떠나 바로 옆 나라의 수도인 포드고리차로 이동했다.


차로 약 7시간 정도 소요되는 거리지만 버스나 기차 편이 거의 없어 비행기를 타야 했다. 서울에서 제주 가는 듯 40여분 남짓 날아갔을 뿐임에도 새로운 곳, 낯선 도시!라는 설렘이 은은하게 들어찼다.


이곳에서 한 달간 지낸 후에 늘 사랑해 마지않는 스페인으로 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크게 무리하지 않고 숙소에서 푹 쉬면서 느긋하게 지내자 다짐했다.



낯선 도시에서 한 달 살기는 사실 긴 시간이 아니다.


집에서 일할 건지, 나가서 일할 건지도 정해야 하고, 혹 도착 전에 정했다 하더라도 집이나 동네 상황에 따라 계획이 바뀔 수도 있으며 숙소 컨디션, 날씨, 치안, 도시 인프라 등등의 다양한 요소들은 나보다 먼저 그곳을 다녀간 다른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참고하더라도 온전하게 내가 겪는 순간 예상과 다르게 흘러갈 수 있는 변수이기 때문에 그런 것에 들이는 에너지와 시간을 얼마나 빨리 안정화시키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물론 가서 부딪히다 보면 다 된다. 하지만 변수가 많아지면 그만큼 일에 지장이 생기고, 그 상황을 수습하는 데에 너무 많은 시간을 써버리면 도시를 돌아볼 여유가 부족해지므로 새로운 곳에 도착한 초반에는 우리의 일과 생활이 적당한 범위 내에서 잘 굴러갈 수 있게 만드는 일에 우선적으로 노력을 들인다.



(베란다로 나가면 말, 양, 소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 머무는 동안 악셀 린덴의 '사랑한다고 했다가 죽이겠다고 했다가'를 읽었다.)

새로운 숙소에 도착하면 이동하느라 지친 몸을 침대에 내던지고 싶지만 그 마음은 고이 접어두고 가장 먼저 와이파이 속도를 측정할 수 있는 앱을 켠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테이블과 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매트리스는 괜찮은지, 주방은 한 달간 밥 해 먹고살기에 적당한지, 마지막으로 화장실과 샤워실까지 쭉 확인해본다.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인터넷이 빠르다고 장담하더니 과연 인터넷 속도가 제법 괜찮게 나왔다. 적어도 일하는 동안 답답한 일은 덜 생기겠구나 싶어 한시름 놓았다가 며칠 뒤 우박을 동반한 폭우가 내려 8시간가량 인터넷이 안 되는 바람에 다음 달 바로 시내로 나가 유심을 사 오긴 했지만...


여기까지 확인한 다음엔 체력이 정말로 바닥나버리기 전에 서둘러 외출한다. 늦은 밤이 아닌 이상 가급적이면 도착한 날 최대한 많이 눈도장을 찍고 생필품과 식재료를 사둬야 하기 때문이다.


희한하게도 첫날 얼마나 봐 두느냐로  도시에서의 행동반경이 정해진다. 도착한  많이 돌아다닌 동네는 계속해서 새로운 곳을 찾아다니게 되는 반면 적당히 보고 말아 버린 동네에선 항상 같은 길로만 다닌다든지 새로운 곳에  가지 않는 경향이 있다.


포르토에서 열흘 정도 지낼 때도 바로 옆 골목에 지름길이 떡하니 있는데 불구하고 항상 같은 길을 통해 무거운 생수병을 몇 통씩 들고 다니다가 떠나기 전날 지름길의 존재를 알게 된 적이 있다. 물론 여행 초반이어서 구글맵이 전부인 줄 알았던 시기여서 더 그랬던 것 같지만.


장을 보러 가는 길과 보고 오는 길목에 위치한 카페나 식당을 잘 살펴두는 것도 중요하다. 시선을 이끄는 인테리어의 카페가 있다면 벌써부터 한 달 라이프가 기대되고 아담한 테라스가 딸린 캐주얼한 레스토랑이라도 보이면 동네 맛집을 찾은 건 아닌지 싶어져 피곤하지만 즐겁다.


무엇보다 산책하기 좋은 곳이 있는지가 중요하다. 운동과는 거리가 먼 우리 두 사람이지만 느긋하게 걷는 시간만큼은 사랑하기 때문에 집 근처에 우리 취향에 부합하는 산책 코스가 있는지에 따라 한 달 간의 만족도가 달라진다.



그렇게 동네 탐험을 마치고 마실 것과 식재료, 부족한 생필품을 사 와 이곳저곳 채우고 나면 오리엔테이션은 끝. 내일부터 언제 어디서 일하고, 언제 밖으로 나갈 것인지 등의 이야기까지 어느 정도 정하고 나면 첫날의 태스크는 거의 끝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예전엔 이동하는 날도 짐을 푼 다음 이동시간 동안 처리하지 못한 일을 하곤 했는데 첫날  쉬어주지 않으면   내내 피곤할  있다는 것을  차례 경험한 이후론 가급적 이동한 날은  해야 하는 최소한의  정도만 처리하고  쉬려고 노력 중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어떤  달을 보내게 될지. 설레는 마음으로  늦게까지 놀고 싶지만 내일을 위해 늦지 않게 잠자리에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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