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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heera Sep 17. 2019

33 : 안 해보고는 모르는 거

연애 에세이 : 누구에게나 두려움은 찾아온다.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33 : 안 해보고는 모르는 거      

연애 에세이 : 누구에게나 두려움은 찾아온다.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처음에 그가 먼저 가까이 왔는데 이번에도 그가 먼저 멀어졌다. 두려움이라는 망토를 덮어쓰고 슬쩍 발을 감췄다.   

  

 상견례를 기다리는 우리 부모님. 그와 나는 최대한 늦게 하고 싶었다. 결혼도 상견례도 모두. 부모님과 부모님이 만나면 당연히 결혼은 앞당겨질 것이고, 결혼이 기정사실화될 것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미루고 싶었다. 그래도 남자가 말이야, 그렇게 우물쭈물하면 되겠어? 하고 마음으로만 생각했다. 나도 그와 같은 생각이긴 하지만, 강단 없는 모습에 그만 실망이 찾아오려고 했다.


 ‘우리 부모님을 만나 당차게 결혼하겠다고 대답했으면서.’

 ‘늦게 했으면 좋겠다고 확실하게 말하던가.’

 ‘부모님을 계속 기다리게만 하면 어떻게.’


 와 같은 잡다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빙빙 돌아다녔다.     

 구름 사이로 희미한 달빛이 비추던 날. 부모님의 초대로 놀러 온 그는 우리 집 건물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는 담배 연기 속에 갇힌 그에게 차분하게 말했다.


 “예전엔 결혼하고 싶다더니 이제는 말을 아끼네.”

 “결혼은 하고 싶지. 근데 빨리할 생각이 없다는 거지.”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늦게 하겠다고 말이라도 하면 되잖아.”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기도 하고 늦게 한다고 했다가 헤어지라고 하시면 어떻게.”


 우리 부모님은 딸을 데리고 갈 그가 직접 찾아와서 결혼하겠다고 당당하게 말해주길 원하셨다. 그런데 그는 발을 담그려다 말았다가를 반복했다. 그런 반복이 답답했다. 저녁 자리가 끝나고 그가 집 문을 나서려 할 때 다짜고짜 결혼할 거라고 두서없이 내 입으로 내뱉어 버렸다. 아빠가 언제 정식으로 인사하러 올 거냐고 물었기 때문이었다. 그를 몇 번이고 집으로 초대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은근슬쩍 계속 말할 기회를 손에 쥐어 주려고 말이다.     


 결혼을 한 후 우리의 신혼 집에서 술집 부럽지 않은 분위기를 내어 소주에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였다. 연지 곤지를 찍은 얼굴로 그가 말했다.

 “나는 모르는 것에 추진력이 부족해. 그런데 너는 안 그러더라. 몰라도 그냥 막 하는 거야. 나는 무수히 많은 가능성을 생각하고 가장 힘들지 않은 길을 골라 돌아가는데, 너는 확실하게 정한 건 무작정 하고 보는 거야. 힘들든 아니든. 나와 달라서 멋졌어. 그 모습에 내가 너한테 점수를 좀 많이 줬지.”

 결혼하겠다는 말을 왜 그리 망설였냐는 질문을 하니 이렇게 답하더라. 그런가 싶다가도 다시 곱씹어 보았다. 내가 들은 말로는 그에게만 보여지는 모습이 아니었으니까. 내 친구도 아는 언니도, 아는 동생한테도 ‘남자들은 결혼 이야기가 나오면 망설인다’라는 말을 들었거든.     


 아직 까지는 집을 구하는 몫은 남자가 부담 해야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고, 아기를 낳으면 여자보단 남자가 경제적인 부분을 많이 책임지며, 맞벌이를 해야 할 경우엔 그만의 고난을 겪어야 한다. 어느 누구에게나 결혼을 위한 비용은 만만치 않게 들어가고 거기다 한 번의 이벤트를 위해 들이는 비용이 어마어마해 쉽게 결정할 일은 아니다. 그러니 그도 모든 준비가 되면 결혼을 하고 싶었을 것이고 누구에게도 실망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쉽지 않은 결정을 해야 할 때는 누구에게나 두려움이 찾아온다. 예를 들면 퇴사결정을 하거나 독립을 한다거나 큰 돈을 대출 받아야 한다거나와 같은 묵직한 무게감의 문제들. 결혼도 이젠 이런 문제들 사이에 낄 만한 주제가 된지 오래다. 그러니 쉽지 않은 결혼이라는 결정을 내릴 때에는 남자의 어깨에 부담이라는 모래주머니가 ‘턱’하고 올려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단연, 여자들의 부담도 만만치 않지만, 희생의 무게는 여자가 더 무거워도 부담의 무게는 남자가 배로 더 무겁지 않을까.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결혼이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가보지 않은길은 어렵고 두렵고 불안합니다.
나는 괜찮은데 상대가 망설인다면 나를 불안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두렵기 때문이란걸 알아주세요. 그 마음을 이해하고 헤아려 주세요.
조금만 기다려보면 해답은 나옵니다.

그럼에도, 당신의 노력에도 망설인다면
상대의 의견을 수용해주세요. 어쩔수없어요.
내 선택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선택이에요.
두려움을 이길 것인지 두려움 속에 갇힐 것인지는 그 사람의 몫입니다.




일러스트 @jeheera.illust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출간된 에세이 책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사랑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토대로 자아와 인생의 성찰을 보여주는 인문학적인 사랑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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