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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heera Sep 26. 2019

39 : 그만큼의 무게

연애 에세이 : 처음이니까 좋을 줄만 알았다.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39 : 그만큼의 무게

연애 에세이 : 처음이니까 좋을 줄만 알았다.




 서로의 마음을 나눈다는 의미와 네가 나를, 내가 너를 소유했다는 의미의 커플링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껴 본 적이 없으므로. 소유보단 자유스러움을 더 좋아했기에 끼지 않아도 무방했지만, 과연 커플링을 끼는 느낌은 어떤 걸까 궁금했었다.     


 결혼을 하려면 반지를 나누어 가져야 하기에 반강제적으로 처음이자 마지막 반지를 맞추게 되었다. 같이 나눠 끼는 그런 반지를. 그는 결혼반지와 커플링을 한 번에 해결한 반지 하나를 나는 커플링으로 착용할 반지와 결혼반지를 따로 하여 두 개를 맞췄다. 기다림은 한달 여간이었다. 반지가 만들어지는 기간 동안 상상해보았다. 반지를 끼면 어떤 느낌일까.     


 예물을 맞추고 함을 들여오자마자 나는 커플링으로 맞춘 반지를 다음날부터 끼기 시작했다. 반지도 아름다웠고 품고 있던 환상에 끼고 싶은 마음 한가득 이었으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즐거움은 잠깐이었고 공교롭게도 반지란 물질이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며 환상적인 것도 아니라는걸 깨달았다. 몇 일째 끼고 다니다 알게 되었다. 무언의 중압감을. 반지에는 쓰여지는 가치의 무게가 달려 있었다.     


 첫날엔 느끼지 못했다. 두 번째 날엔 불편했다. 꼬냑다이아라는 보석이 닳을까봐 조심스러웠고, 손 씻을 땐 뺏다 꼈다를 반복했다. 이건 내가 악세서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였기도 했다. 세 번째 날에 느꼈다. 이 녀석의 무게감을. 그리고 불편함보다 늦게 찾아온 무게감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재료 탓일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네 번째 손가락에서만 느껴지는 무게는 무섭게도 심장까지 전달되어 추를 달았다. 내 이성은 그대로인데 마음이 어지러웠다. 내가 이 반지를 껴도 되는 건지 의심스러워졌다.     


 어릴 땐 그저 부러움에 껴보고 싶었던 커플링. 이제 와 끼게 되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평소 악세서리를 하지 않고 다녔기에 익숙치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이것만은 분명했다. 커플링이란 치장을 하기 위해 끼는 반지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라는 것을. 하지 않는 연인들도 많겠지만 그 외의 수 많은 연인들은 커플링을 한다. 후에 결혼하지 않으면 대다수가 헤어지므로 헤어지는 순간 그 반지는 소멸할 수밖에 없다. 그것만의 임무가 주어졌다가 반작반짝 빛을 발하던 가치가 시들기 시작하는 거다.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반지들의 가치가 의미 있게 시작되어 시들시들 떨어지게 되는 걸까. 헤어진 연인들이 모두 한강에 반지를 던졌다면 매년 여름마다 한강물이 넘치고 넘쳐 물바다를 만들었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봤다.     


 소중했던 만큼 소유했던 만큼 잃게 되는 순간, 버려지게 되는 순간, 더 큰 실망감과 좌절감 그리고 아픔이 따라온다. 반지 또한 그러했기에 나누었던 것이니 그 가치는 배가 되어 돌아오겠지. 참 간사하게 다행이란 생각처럼 적어도 나에겐 처음이자 마지막 반지이니 가치를 떨어트릴 일은 없을 거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럼에도 내 마음에 추는 이미 달아졌고, 평생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쿵 하고 떨어지지 않도록. ‘끼익’하고 녹슬지 않도록. 그러니 나의 결혼은 추의 무게를 가늠하는 것부터 시작된 듯하다.          




의미가 깊이 배인 것이 떠나가면 그만큼 배가되어 돌아옵니다.
어떤 사물이던 아무런 의미조차 없다가 나에게로 왔을 때
천천히 깊어지기 마련이죠. 물건에 생명은 없지만 함께한 추억이 깃듭니다.
내 주변의 사물들을 둘러보세요. 신경쓰지 못해서 녹슬고 있는 것은 없는지...



일러스트 @jeheera.illust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출간된 에세이 책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사랑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토대로 자아와 인생의 성찰을 보여주는 인문학적인 사랑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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