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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류 Sep 22. 2023

나는 나를 해하는 것에 중독되었다.

정신과는 추천하지만 학교 상담실은 추천하지 않는 이유

세상에는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는 게 몇 존재한다고 한다. 술이나 담배가 그중 대표적인 것이다. 이들의 공통점이란 역시 자기 자신을 갉아먹는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중독이란 무섭다.

나도 어린 나이에 중독된 것이 있었다. 휴대폰과 같은 전자기기류나 음료수 같은 귀여운 것이었다면 참 좋으련만, 위험하게도 나는 나를 직접적으로 해하는 것에 맛이 들려버렸다.


내가 언제 자해를 시작했는지는 가물가물하다. 중학교 1학년인지 2학년인지. 그저 즐겁기만 해야 할 체육대회 날을 피로 얼룩지게 했다는 것만이 생생할 뿐이다. 그저 손짓 한 번으로 우울감이 댐 넘치듯 흘러넘쳤다. 내 자해는 그날부터 시작이었다.

죽고 싶었지만 죽을 만큼 피를 내지는 못했다. 나는 겁쟁이였다. 누군가는 자해를 하는 아이들을 보고 ‘관종(관심종자)’라고도 부른다는데, 나는 꼴에 수치를 알아서 누군가에게 들킬까 전전긍긍하며 소매를 내렸다.


 청소년들이 자해를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살아있음을 확인받고 싶어서, 부모님을 화나게 하고 싶어서, 감정을 해소하고 싶어서. 나의 경우는 갈 곳 없는 감정, 특히 분노가 더러운 피와 함께 배출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 느껴본 해방감은 위험했다. 자살 충동이 들 때도 자해를 한 것은 물론이었고, 감정이 정의 내려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계산기를 두들기듯 당장 결론을 내기 위해 몸에 칼을 댔다. 기쁨의 눈물과 함께 피가 흘러내렸고, 자해를 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그 죄책감을 해소하기 위해 자해를 하는 딜레마가 반복되었다.


 우울감에 잠긴 나는 이상하게도 붕 뜬 것처럼 자만심이 가득했다. 당장 내가 자해를 하는 것은 내 의지이며, 마음만 먹으면 자해 따위는 쉽게 멈출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충동과 자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사실 자해는 아프다. 그 순간에는 당장의 해방감에 취해 고통보다도 희열이 앞서지만, 짧은 파도가 지나가면 남는 것은 아픔과 비참함이다. 그뿐인가, 상처가 나는 시간보다도 치유되는 시간은 훨씬 길어서 새 살이 돋을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여러 행동에 제약이 걸린다. 심지어 자해를 하는 것에 있어서도. 그럼에도 나는 자해를 멈출 생각을 하지 못했다.

설마 했던 중독이었다.


 중독을 실감하자 불안감이 성큼 다가왔다. 나는 내 의지로 나의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으리라 믿어왔고, 내 모든 행동은 그러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기인했다. 그러나 나를 통제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미래의 나를 향한 인식이 바뀌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어두컴컴했다. 그런 미지를 향한 감정의 이름은 두려움이었다. 나 자체를 두려워하게 된 나는 나를 통제할 수 없어 어쩔 줄 몰라했다. 그 안에서 내가 내 의지대로 행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만 했다. 그리고 이어진 자해. 또 똑같은 상황이었다.


 그 상황에서 내가 행할 수 있는 일은 얼마 없었다. 그러나 내가 택한 방법은 최선이 아니었다. 당시의 나는 어이없을 정도로 너무 순진했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학교의 상담실을 찾았고, 나 스스로 드러낸 자해 상처를 본 상담 선생님은 즉시 상담실의 문을 걸어잠갔다. 그리고 이어진 상담. 다음 날이 되자 부모님부터 옆 반 선생님까지 모두가 나의 자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나마 학생들은 몰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싶다. 부모님에게도 말하지 않는다고, 비밀을 지켜준다던 상담은 자해에는 해당되지 않았나 보다.

문구용으로 들고 다니던 커터칼을 빼앗겼다. 나를 모범생이라 칭찬하던 선생님들의 눈빛은 180도 달라져 있었다. 신실한 기독교 신자인 엄마는 나에게 지옥에 갈지도 모른다며 눈물을 보였고, 아빠는 겉멋이 든 거라며 때려서 고쳐야 한다고 했다. 연계된 상담 시설은 별 이상한 질문만을 했다.

“네가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에게 자해 흉터에 대해 뭐라고 설명할 거니?”

어쩌라고요. 당장 나 하나 건사하지 못해서 죽고 싶다는 나에게 미래의 아이 따위 어찌 되든 좋았는데. 영문 모를 질문만을 남기고 상담이 종료되었다. 사실 뭐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 또한 이상한 말을 늘어놓았지만 역시 어른은 믿을 게 못 된다고 생각한 날이었다.

나는 그 이후로 몇 년이고 자해행동을 이어나갔다. 잠시간 소강상태였던 적도 있지만, 여전히 자해의 유혹은 떨쳐내지 못한 채다.




 정신과의 약은 나에게서 자유의지를 빼앗아 간 듯했다. 정확히는 나 스스로를 벼랑 끝까지 몰아갔던 원인-우울한 감정-도 함께 빼앗은 것 같았다. 어떨 때는 내가 스스로 칼을 댈 자유도 묶인 듯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이전에는 누군가가 내 삶을 벼랑 끝까지 몰아가 결국 떨어져 버린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벼랑 끝까지 몰리되 그래도 육지에 발을 대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것은 같았지만 하늘과 땅의 느낌이 다르듯 감정의 고저는 상당히 큰 영향을 끼쳤다. 물속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지만, 뭍에서는 벼랑 끝에 몰렸다고 다른 이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다. 그런 점이 확실히 달랐다. 나는 그렇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할 힘이 생겼다. 그렇지만 그런 청소년기를 지난 이가 부모님을, 어른을 다시 믿기까지는 매우 큰 용기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도 나는 마지막으로 사람을 믿어보기로 했다. 사람을 낙원 삼으면 안 된다지만, 결국 우리는 사람에 의해 살아가기 때문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기 때문일까. 그래도 행복해진다면 사람 덕분에 행복해지고 싶었다. 이왕이면 자해 따위는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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