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상담에는 선생님께 롤케이크를 건넸다. 갑작스러운 이별이라서인지 선생님은 매우 당황하신 듯 보였다. 자신은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다며 울상을 짓는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웃음이 나왔다. 완벽한 타인의 앞에서 마음 놓고 웃는 시간도 이것이 마지막일 것이라는 생각이 상담 시간을 씁쓸하게 만들었다.
내가 상담치료를 1년 만에 그만둔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곧 공부에 전념해야 한다는 고3이 된다는 점이 고민의 시작이었고, 상담 예약을 토요일마다 잡았기 때문에 토요일에 잡히는 약속을 취소하거나 사정을 얼버무리기 어려웠다. 또한 상담치료를 받는 것에 '감정 쓰레기통을 해줄 사람을 돈으로 사는 것 같다'라는 죄책감이 들어 더 이상 치료를 이어나가기 버겁기도 했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나에게 여전히 상담이 필요하다 판단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와 같은 생각들 이외에도 내가 결국 상담 종료를 택한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더 이상 상담치료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과 짐작이었다. 상담 선생님을 만나지 않으면 세상이 무너질 것 같았던 과거의 나와는 확실히 다른 내가 느껴졌다.
나는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이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는 일이 빈번했다. 거기에 나보다도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성정도 있어 속에서 병을 더욱 키워갔다. 만나는 사람이 온통 정신병자라는 이유만으로 정신병자인 내가 의사 선생님을 걱정할 정도였다. 게다가 나는 소란을 일으키는 것이 싫다는 이유로 나의 이야기를 포함한 모든 이야기를 가족에게마저도 털어놓지 않았다. 내 입을 통하지 않으면 내 일이 남의 일로 변하기라도 하는지, 하고 싶은 말이 생기면 그것을 진료나 상담 시간까지 꾹꾹 눌러 담아 두었다가 엄마께 전해달라며 선생님들께 요청하고는 했다.
그런 것 치고는 상담 치료는 제법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어릴 적 또래상담 봉사의 경험이 있는 나는 오히려 익숙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나의 기억을 끄집어내고, 기억을 분석하여 어떠한 감정을 느꼈는지를 깨달았다. 이름을 찾은 감정은 과거에 차곡차곡 정리되고, 정리된 감정은 후련함이라는 이름의 휴지통에 들어가 더 이상 풀리지 않는 수학문제처럼 나의 머릿속을 괴롭히지 않았다.
내 안에는 케케묵은 감정이 많이 쌓여있었다. 처음 그것을 몇 가지 꺼내두었을 때는 말 그대로 세상이 달라 보였던 것 같다. 상담을 끝내고 나온 뒤 올려다본 하늘이 어찌나 청명하던지! 매연이 가득한 도시 속이었지만 마스크 속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시원했던 그 감각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상담 치료를 하며 내가 깨달은 점은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표출을 해야만 다음 상황에 대응할 힘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누군가와의 대화(상담)는 표출의 방법 중 가장 대중적이고 쉬운 방법인 것이다. 상담 치료를 하며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나를 비워내고 또 다른 감정을 담을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 상담의 주된 기능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때 쯔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전부터 공상을 좋아해 소설 한 두 편을 쓰던 것과는 달랐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의 영향이었는데, 우울증이 만든 돌고래와 비슷한 지능 때문인지 무언가 유의미한 결과물을 남기지는 못했다. 그러나 내 손이 한 자씩 써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그 글자를 따라 내가 하나 둘 정리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기를 쓰기 시작한 이후, 감정이 정리되는 감각과 그 방법을 배운 나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날이 오면 종이 한 장을 집어 들고 마구잡이로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글에는 내가 당장 하고 싶은 것이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담겼다. 그 후 수박 겉핥기식으로라도 원초적인 감정을 잡아낸다면 이후의 정리는 내 손이 도와주었다. 놀랍게도 당장 긴장된 몸과 마음이 진정되고 당장 터질 것 같았던 감정의 수위가 낮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시간이 흐른 후 그 글을 다시 읽어나가면 과거 내가 느꼈던 감정에게 이름을 붙여주거나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출처를 알 수 있었다. 그 후는 상담과 같은 절차를 거쳤다. 후련함이라는 이름의 쓰레기통에 감정을 가둔 종이를 버려 나를 비우는 것이다. 기억력이 나빠 다른 이들과 달리 당장의 것을 기록하는 것 밖에 하지 못했지만, 모든 것이 모래알처럼 손 안으로부터 빠져나가던 일상에서 무언가가 남는 감각은 나쁘지 않았다.
그즈음부터 상담치료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상태의 지표는 상담이 없는 주중에도 점점 앞으로 나아갔다. 그 사이에도 짧은 글쓰기는 계속 이어졌고, 일기장을 꾸미는 소위 '다꾸'에도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자 생활에는 더욱 활기가 넘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상담이 없어도 나를 비우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1년 만에 상담 치료를 그만두었다. 학교에서 연계되어 경험한 첫 상담이 최악으로 남았던 것과 비교하면 아주 좋은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