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도 그 정보를 접하자 어이없는 상태를 넘어 화까지 났다.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생각을 해 보자면, 아마 내가 평범한 상태가 아님을 단도직입적으로 확인당한 듯한 부끄러움과 죽을 생각을 하지 않는 행복한 사람들을 향한 열등감이지 않았을까... 어떠한 감정이 머리를 잠식해도 그것을 표현할 기력이 없었던 과거의 나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이런 찌꺼기뿐이다, 한심하게도.
아마 '행복한 상태'를 향한 열망도 그때부터가 아니었나 싶다. 단순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열망이었지만 내가 가지지 못한 ‘행복한 상태'와 죽고 싶지 않은 일상이라는 것은 내가 욕심내기에는 충분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행복한 상태를 열망했던 나는 결국 '죽고 싶지만 죽을 생각은 없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이것을 편의상 '덜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기로 했다. 그리고 알아낸 점은...
'행복한 사람은 아무 생각도 없다'라는 점이다!
아니 아니, 비방하는 뜻의 ‘아무 생각도 없다'가 아니라, 정말로 '어떠한 상념이나 우울한 감정도 없는 상태'를 뜻하는 것이다.
드디어 알아냈다. '난 죽지 않을 거야~' 같은 생각을 매번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불필요한 생각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오히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오히려 행복한 사람의 머릿속은 우울한 생각이 끼어들 틈도 없는 것 같았다. 당장 ‘내일은 뭐 하지?’ 같은 주제에 사로잡혀 가라앉을 틈이 없는 것이다... 헐, 세상에!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이들이 있다. 바로 내가 그렇고, 나와 같은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다.
나는 어떻게 '가끔 행복한 사람(덜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니 상당히 불행해 보인다)'이 되었을까. 잘 생각해보고 나니 내 여유는 역시 휴학에서 나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사람에게는 휴식이 중요하다. 이제는 복학 후에 어떻게든 내 상태를 최소한 악화시키지는 않을까-를 궁리해야 하는 시기이다만...
내가 휴학을 한 목적은 오로지 휴식이었다. 학교에 다니고 있을 당시 나는 당장 약도 없는 상태에서 시도 때도 없이 나를 찾아오는 공황 발작과 싸워야만 했다. 그렇게 생긴 외출공포증과 대인공포증은 당연히 학업에도 지장을 주었고, 당장 출석도 제대로 채우지 못한 채로 종강을 맞이했다. 그렇게 내게 남은 것은 너덜너덜한 몸과 마음, 그리고 D와 F가 있는 성적표였다.
수면, 그리고 끼니. 휴학하는 동안 내가 가장 신경을 썼고, 의사 선생님이 당부하신 부분이며, 나를 '행복하지 않은 사람'에서 '가끔 행복한 사람'으로 발전시켜 준 소중한 것들이다.
우선 과제와 정신병으로 피폐해진 몸을 달래려 잘 수 있는 만큼 잠을 잤다. 어떨 때는 밥도 거르고 잠을 잔 것 같다. 단 하루라도 자고 싶을 때 자고, 눈이 떠질 때 눈을 뜨니 잠에 젖어 축 늘어지는 눈꺼풀마저도 기꺼웠다. 보통 때라면 '망한 상황'을 연출해 주는 지저귀는 새들과 쏟아지는 햇빛이 얼마나 아름답게 느껴지던지! 내가 주로 스트레스를 푸는 방식이 수면인 것과는 별개로, 잠을 적게 자는 사람이 단명한다는 연구결과가 왜 존재하는지 알 것만 같은 경험이었다.
그리고 역시 사람은 먹어야 했다. 우울이 극에 달했던 시절, 가장 끼니를 적게 챙겼을 때가 3일에 한 번 정도였는데(이마저도 단순 간식거리였다), 덩달아 배출도 늦어지니 건강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나빠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루 걸러 하루 먹던 삶을 살다가 갑자기 규칙적인 식사를 하는 것은 꽤 고역이었다. 장염에 위경련이 쉴 새 없이 와 이온음료를 옆구리에 끼고 살던 때도 있었다. 그래도 당장 내 영양에 균형이 잡히기 시작하니 성격이 한층 너그러워지더라. 다이어트고 뭐고 다 필요 없다. 당장 내가 배불러야 '행복한' 돼지라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영양에 불균형이 오면 그저 배고프고 아픈 성격파탄자가 된다. 또한 먹기 위해 사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 만큼, 뭐라도 재미를 붙여야 일단 살아갈 의지가 생기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서 나는 음식이 살아갈 재미를 붙이는 데에 아주 훌륭한 녀석이라고 생각한다... 산책 같은 것은 잠시 미뤄두어도 늦지 않는다.
이것들을 하나씩 신경 쓰고 있으면 어느샌가 내 머릿속에서 상념이 하나 둘 사라지는 것이 느껴진다. 이번엔 이것을 하고, 다음엔 무엇을 하지? 이번엔 여기에 산책을 끼워볼까? 이런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오히려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의사들은 이러한 상태를 '행복한 상태'라고 한단다.
의외로 행복이라는 녀석은 별 거 아니었다. '나 지금 엄~청 행복해!'라고 가슴이 외쳐야만 행복한 상태인 것이 아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며 살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의 디폴트는 행복이라고, 매일 되새기다 보면 언젠간 나도 가끔 행복한 사람에서 매일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