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빌론 [EGO 90'S] 앨범 감상
베이빌론의 [EGO 90'S] 앨범은 발매 전 크레딧 발표만으로 나를 뒤집어지게 한 작품이었다. 크레딧을 퇴근길 만원 지하철에서 봤는데, 마스크 속에서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살아 생전에 이 얼굴들이 한 앨범에 모인 모습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내가 이 앨범을 살펴보며 가장 많이 생각한 단어는 '기억'이었다. 90년대 R&B를 구현하는 것에 집중한 레트로 지향 작품이기에 기억이라는 키워드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겠지만, 이 앨범은 높은 확률로 베이빌론의 기억에 근간하여 만들어졌을 것이며, 듣는 나 역시 기억에 근간해 들었기 때문에 그렇다.
[EGO 90'S] 앨범에는 90년대에 활동한 뮤지션보다 90년대에 성장한 뮤지션이 더 많이 참여했다. 이 앨범 참여진 중 90년대에 대표곡을 내며 알려진 뮤지션이 이현도와 정연준이라면, 90년대에 성장한 뮤지션은 나얼, 앤, 하림, 임정희, 영준, 휘성, 김범수, 이효리 정도가 있다.
이 앨범 참여진의 면면에서 볼 수 있듯, 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생 한국 뮤지션 중에는 90년대 R&B를 따라 부르며 성장한 뒤 2000년대 음악계를 휩쓴 이들이 꽤 많다. 적지 않은 수가 2022년 현재까지도 '노래 잘 하는 가수'로 기억될 정도로 그 역량도 빼어나다. R&B에 기반한 명창이 집단적으로 배출된 이 세대를 보면, R&B와 소울 음악이 90년대 청소년들에게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절로 느껴진다.
2000년대 명창들을 보고 자란 베이빌론의 세대, 즉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생 중에도 유명 R&B 아티스트가 꽤 있다. 자이언티, 딘, 크러쉬 3인이 그 대표주자다. 허나 나얼이나 휘성이 90년대 R&B 팬이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되는 반면, 자이언티가 2000년대 R&B를 듣고 자랐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인데도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자이언티가 '불치병'을 듣고 부르는 장면을 상상해본 사람은 아마 이 글 읽는 사람 중에는 없을 것 같다.
그 정도로 R&B는 90~00년대와 2010년대의 간극이 굉장히 큰 장르다. 얼터너티브 R&B가 주류화되며 음악 양식이 대격변을 맞이했다는 것은 한국과 영미권이 똑같은데, 한국은 R&B 양식을 둘러싼 산업의 양상이 뒤바뀌었기 때문에 어쩌면 한국의 변화상이 더 클 지도 모르겠다. 모두들 알듯, 자이언티 같은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한국에서 R&B 가수로 기억된다는 것은 2010년대가 되어서야 가능해진 일이지만, 한국에서 힙합 뮤지션이 만든 장르 특화 레이블에서 R&B 가수를 제작하여 성공시키는 것 역시 2010년대가 되어서야 가능해진 일이다.
위 문단에서 후자의 현상은 전자의 현상을 추동했다. R&B 음악의 주 판매처가 불특정 다수의 발라드 가요 청자에서 힙합 청자로 바뀌며 한국 R&B 음악의 방향성은 급속도로 미국과 비슷해졌고, 미국 R&B에 다양한 음색의 보컬리스트가 등장한 만큼 한국 R&B에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다. 각 시대에 R&B 장르를 대표한 이들의 결과물과 그에 대한 청자의 반응을 돌이켜 보면, 2010년대 들어 R&B를 둘러싼 시장 상황은 장르 매니아의 기호에 좀 더 부합하는 음악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고 볼 수 있을 듯 하다.
2010년대의 R&B 아티스트인 베이빌론이 90~2000년대 R&B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게 새삼스럽게 느껴진 이유는, R&B 청자가 시대별 한국 R&B를 들으며 떠올리는 음악 및 시대상, 이에 대한 가치 판단이 아티스트의 실제 성장 과정보다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서 그랬던 것 같다. 적어도 90~2000년대는 돌출보다 녹아들기를 택하는 가창 스타일을 가진, 인디펜던트로 활동하는 R&B 싱어송라이터가 [EGO 90'S]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를 성사시킬 만큼 성공하는 것이 절대 불가능한 시대였다.
영업력 있는 기획사가 강렬한 가창 테크닉이 R&B 장르를 규정하는, 작법이나 감정선보다도 중요한 핵심 요소라고 우겨서 그 주장을 관철시키던 시대에서 우리는 멀어지고 싶었던 것 같다. [EGO 90'S] 앨범 작업이 성사되어 주목을 받은 것은, 시대상이 주는 압도감을 걷어내고 음악과 음악인에 대한 애정을 온전히 직면할 수 있을 만큼 산업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일 듯 하다.
애정을 그대로 작업으로 치환할 수 있는 여건이 시대적으로 마련되고 나서야, 우리는 음악이 주었던 즐거움을 웃으며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즐거움을 잊기 전에 시대가 바뀐 것이 다행스럽다.
앨범 참여진들의 대표곡들을 떠올려 보자. 이들은 장르의 정의가 흔들리던 그 시대에도 시대상에 발맞추는 동시에 사랑하던 음악을 치열하게 탐구하며 노력에 걸맞는 명곡을 만들어냈다.
아티스트가 자신이 듣고 부르며 자란, 자신에게 치열함을 가르쳐 준 음악을 성인이 된 뒤 구현해보고 싶다는 것은 꽤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2022년 현재까지도 90년대 R&B를 사랑하며, 기회가 되면 그 시절 음악을 다시 부르고 싶어하던 이들이 모조리 [EGO 90'S]에 모인 걸 보면 그렇다. 20세기 R&B에 대한 '덕심'을 커리어의 축으로 삼은 나얼, SNP 정모를 뛰며 음악인을 꿈꾸던 휘성, 음원 발매가 불허될 것을 알면서도 <나는 가수다>에서 굳이 '그대의 향기'를 부른 김범수 등의 이름을 앨범 참여진 리스트에서 보며, 이들이 커리어 내내 보여준 열망이 실현된 사례를 본 것 같았다.
나는 앨범 크레딧을 보며, 이들과 함께 90년대 R&B를 사랑했지만 지금은 다른 장르의 음악을 부르는 동료들을 떠올렸다. R&B를 연습하며 가수가 된 이들 중에는 현재 발라드 가요, 뮤지컬, 드라마 OST, 포크, 록 등 다른 장르를 주로 부르는 사람도 많다. 시간이 지나며 활동 영역이 달라지는 게 잘못된 일은 아니다. 일반 사회인도 20년쯤 지나면 관심사가 이전과 전혀 달라져 있는 경우가 태반인데, 음악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허나 자신과 세상이 모두 변했는데도 품을 들여 과거의 열망을 기억하고 기록하려는 음악인들을 보며, 중견 음악인에게 원점이 무슨 역할을 할까 생각해보게 됐다. 어린 시절 자신을 매료시켰던 음악을 듣고 부를 때면, 자신이 왜 이 길을 택했는지, 나아가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할 수 있지 않았을까?
흔히들 '덕업일치'라 부르는 길을 걸으면서 자신이 사랑하던 일을 싫어하게 되는 건 생각보다 흔한 일이다. 깊이 사랑하던 분야인 만큼 환멸도 사랑의 크기와 비슷하게 다가올 테니까. 하지만 무엇인가를 깊이 사랑하다 못해 직업으로까지 삼았다면 그 분야는 그의 정체성 한 켠에 새겨져 있을 텐데, 그만큼 사랑하던 것을 싫어하게 되는 것은 정신을 소모시키는 동시에 때로 정체성 상실을 일으키기도 한다.
음악 양식과 산업 형태가 함께 요동친 21세기 한국 가요계에서 20년 가까이 가수로 활동했다는 것은, 저 '덕업일치'와 자아 상실의 위험 사이를 20여년 간 걸어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이들에게 [EGO 90'S] 작업은 자신의 원점을 되새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을 것 같다. 시작점에 다시 서는 마음으로 음악을 다뤄 본 시간이 앨범을 만든 모두에게 앞날을 그릴 힘이 되어 주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EGO 90'S]에 참여한 뮤지션들의 음악과 활동은, 음악 청자 및 필자로서 나의 원점이기도 하다. 10년 전, 살며 처음으로 정규 앨범 전집을 다 들어 본 가수가 김범수였다. 그 시절 나의 몇 안 되는 낙은 김범수를 시작으로 그 주변 동료들의 음악과 활동을 되는 대로 섭렵하는 거였다. 그 기억을 살며 처음 쓴 대형 아티클의 주제로 삼으며, 이들은 내 필자로서의 시작점이 되었다.
[EGO 90'S] 앨범의 크레딧을 본 날은, 음악을 듣고 말하고 쓰는 일이 지루하고 피곤해질 때였다. 음악이 삶에 중요하지 않게 느껴지는 날이 그때 살며 처음으로 왔다. 음악만큼 삶도 지루해지는 순간이 왔는데, 좋아하던 것에 대한 애정을 잃다가 까딱 잘못하면 삶에 대한 애착도 사라질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런 순간에도 앨범 크레딧 속 '바보같은 내게'를 봤을 때, 앨범을 듣다 '여전히 우린 이렇게 마주앉아 있지만~'이 흘러나온 순간에는 눈이 번쩍 뜨였다. 본능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61ZBW6Vetg
'바보같은 내게'는 10년 전 내가 김범수 노래 중 가장 열심히 듣던 곡이었다. 그 시절 나는 발라드 대표곡에서는 들을 수 없는, 스물 넷 김범수가 청년의 이별을 그린 순간을 사랑했다. 듀스 활동으로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 등재된 이현도가 그 이외에도 다양한 역량을 뽐냈다는 것을 이 곡을 통해 알았다. 그 이후 나는 주석의 '정상을 향한 독주 2', 에픽하이의 'Paris'를 10대 시절 내내 마르고 닳도록 들었는데, 분명히 같은 사람의 이력인데도 내가 사랑한 작곡가 이현도는 왠지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 것 같은 게 (이해가 가면서도) 억울했던 적도 있었다.
베이빌론은 본작에 '듀스의 이현도'가 만든 곡과 김범수가 참여한 곡을 실었고, 이현도가 만들어 김범수가 부른 '바보같은 내게'를 리메이크하여 수록했다. 알아채는 사람이 많을 걸 같지는 않지만, 적어도 뭔가 아는 사람들을 대놓고 노린 것 같은 구성을 보며 정말 많이 웃었다. 그가 케이시와 함께 부른 버전의 '바보같은 내게'를 즐겁게 들으며, 내가 가진 기억을 작품에 녹여 준 사람이 있다는 게 놀랍고 짜릿했다.
같은 음악을 시작점 삼은 사람이 같은 세상에 있다는 게, 누군가의 작업물을 보고 잊어가던 즐거움을 다시 떠올릴 수 있게 된 게 고마웠다. 초심을 떠올리기 위해 만든 음악이 다른 사람의 초심을 깨워 줬다면, 앨범의 목표는 완전히 달성된 것 같다.
** 이 글 속 '기억'은 참여진의 음악 커리어 위주로 채웠습니다. 참여진들의 모든 행적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쓴 글은 아닙니다. 다만 도저히 가볍게 볼 수 없는 행적을 보여준 음악인이더라도, 그가 선사한 한 순간의 기억이 때로 사람을 지탱할 만큼 강렬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점을 감안해주시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