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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미 Oct 21. 2024

[신발장 10주년] 3편

2024년에 읽는 [신발장] 리뷰

내가 음악 필자로 활동하게 된 꽤 큰 계기는, 에픽하이가 평론이나 인터뷰가 많이 나오는 가수였다는 데에 있다. 그들은 2000년대에 대중 지향적으로 활동한 아티스트 중 손에 꼽히게 큰 청소년 팬덤을 가졌고, 그 팬 상당수가 이들에 대한 호감을 유지한 채 2010년대 이후 음악 및 문화산업계 종사자로 성장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신발장] 발매 시기는 ‘Fly’나 ‘Fan’을 듣고 자란 사람들이 막 성인이 되어 자신들의 견해를 문화산업계에 관철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그 시기 만난 음악과 아티클이 나의 진로를 결정할 거라는 건...정말 상상 밖의 일이었다.


그래서 나의 현재를 가능케 한 그 당시의 리뷰와 인터뷰를 매체별로 모아서 짚어보려고 한다.



IZM


https://www.izm.co.kr/posts?id=26350 (앨범 리뷰)


https://www.izm.co.kr/posts?id=26399 (인터뷰)


웹진의 이름값만큼 가장 처음, 가장 많이 읽은 리뷰다. 별 4개로 시작하여 앨범을 긍정 평가하는 동시에 각 수록곡별 특징을 짚으며 그 흐름을 깔끔한 문장으로 정리하고, 이 앨범이 발매된 시대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짚으며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준 점이 좋았다. 사실 마지막 문장 “힙합으로 힙합 이상의 것을 만들어 낸 그들은 그래서 2014년의 히어로일 수밖에 없다. 자신한다. 어느 아티스트보다도 완벽한 귀환이다.” 를 보고 유입되어 읽은 글인데, 리뷰 전체에 걸쳐 쌓은 감정선이 마지막 문장에서 터지는 순간은 지금도 감격스럽다.


세부적으로는 약간씩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들도 있다. [신발장]의 사운드가 어둡고 무거운 [Remapping the Human Soul]을 닮은 건 맞지만, 앨범 구성이나 커리어에서의 역할 면에서는 5집 [Pieces, Part One]과 이어 보게 된다. ‘The Future’의 역할을 ‘부르즈 할리파'가, ‘Eight by Eight’의 역할을 ‘Born Hater’가, ‘우산'의 역할을 ‘헤픈엔딩'이나 ‘스포일러'가 하는 것 같아 보이는데, 이렇게 강성 랩 뱅어, 단체곡, 서정적 팝 등 에픽하이의 앨범을 이루는 주요 요소와 정서를 규정하고 이어간다는 면에서 두 앨범이 에픽하이 디스코그래피에서 맡는 역할이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이슈제작엔 탁월할 지언정 매력적인 정규작 제작에는 인색한 지금 세대의 래퍼들'과 에픽하이를 비교하는 대목 역시 약간 갸우뚱해지는 면이 있다. 2014년 당시 화제의 힙합계 인물들 중 에픽하이보다 디스코그래피의 질이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그 해는 이슈제작 그 자체만으로도 한국 힙합 역사에 남을 만한 해였다고 생각해서 그렇다. 보컬이 단 한 줄도 없이 욕설 섞인 랩만 3~4분씩 나오는 19금 음악이 방송과 차트를 뒤엎은 그 해로부터 힙합의 시대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동세대 젊은이 모두가 힙합 즐기는 법을 학습했고, 그 학습의 결과로 랩이 익숙한 청자 세대와 그렇지 않은 청자 세대가 음악 청취법부터 독법까지 많은 면을 달리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청자층이 분화되기 시작한 ‘힙합의 시대' 초입에 발매되어 이들의 자리를 찾아주었다는 점에서 [신발장]의 발매 시점은 에픽하이에겐 큰 행운이었다고 본다. 90~2000년대에 주로 활동한 한국 힙합 아티스트 중 이 ‘힙합의 시대'에 자리를 찾지 못한 이 상당수는 이후 빠른 속도로 구시대의 존재가 되어버렸으니까. 리뷰 중 ‘블랙 뮤직의 상승세 아래에서'를 언급하는 행간에 이런 안도감이 있는 것 아닐까 추측해 본다.


인터뷰는 이 당시 대외적으로 알려진 [신발장] 앨범의 화두를 하나씩 짚는 성격이 강했는데, 팝/가요를 베이스로 음악을 즐기는 일반 청자의 궁금증을 주로 묻는 구성이 IZM의 대외적 이미지와 맞닿아 있었다. ‘타블로'와 ‘에픽하이'의 관계, 콜라보레이션을 대하는 관점과 비화, YG 사외 스튜디오를 사용하라고 했던 양현석 사장의 권유 등, 장르 씬 구성원으로서의 이들보다는 팝 아티스트로서 이들의 측면에 보다 주목하는 듯한 질문이 많았던 것도 어떤 ‘IZM 스러움'의 일종일까? 


그렇지만 이러한 팝/가요의 관점에서 에픽하이를 읽는 게 이들의 가장 넓은 측면을 가장 높은 해상도로 보는 방법인 것 같다. 이들은 힙합 뮤지션으로서 큰 족적을 남겼지만 장르에 모든 면에서 천착하는 정체성을 가져가지는 않았기에, 이들을 힙합 스페셜리스트의 관점에서 조명하면 어딘가 마찰이 생기게 된다. 반면 가창이 아닌 랩을 하는 싱어송라이터로 타블로를 관찰하면, 그는 탁월한 캐릭터와 세계관, 자신만의 멜로디/사운드/가사 작법, 라이브 기량 등 (주로 컴퓨터를 통해) 사운드를 직접 제작하는 팝 싱어송라이터에게 요구되는 거의 모든 면에서 균형 잡힌 역량을 갖춘 뮤지션으로 읽힌다. 나는 그렇게 알아낸 좋은 팝 싱어송라이터의 덕목을 이후 다른 아티스트를 읽어내는 데에 적용하며, 나의 재미를 충족시키고 컨텐츠를 만들 때 꽤 큰 도움을 받았다.


IZM의 리뷰와 인터뷰를 읽으며 웹진 필진의 꿈을 막연하게 생각하던 청소년기의 나는, 리뷰를 쓴 황선업 평론가나 인터뷰어 중 한 명이었던 김도헌 평론가와 성인이 된 뒤 연을 맺게 된 게 너무너무 신기했다. 이들의 리뷰와 인터뷰를 여러 번 읽으면서 웹진 필진직을 막연히 구름 위에 있는 고수나 연예인같은 존재로 생각하곤 했으니까. 


두 사람의 궤적을 좇는 과정에서 나는 에픽하이와 일본 대중음악의 연관성을 떠올리게 되었다. <주간 제이팝>을 장기간 운영하며 제이팝과 관련된 각종 활동에 선두 주자로 나서는 황선업 평론가와, 학창 시절 범프 오브 치킨을 좋아했다고 털어놓는 김도헌 평론가의 모습에서 에픽하이가 제이팝 레퍼런스 사용으로 이름난 팀이었다는 게 생각났다. 엠플로와 누자베스 레퍼런스는 물론, ‘Fly’와 ‘Love Love Love’처럼 제이팝식 IV – V7 – iii – vi 코드를 루프 돌린 결과물이 대표곡인 아티스트가 에픽하이인데, 이런 제이팝 레퍼런스를 반복 학습한 이들이 훗날 자신의 청취 이력에 이끌려 제이팝 청자가 된 것 아닐까 싶었다. 물론 “이 얘기 하는 당신만 그렇잖아" 라고 반박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내가 에픽하이 팬 출신 제이팝 리스너를 그 이외에도 많이 만났던 게 마냥 우연은 아니었던 것 같다.



리드머

http://board.rhythmer.net/src/go.php?n=15482&m=view&c=16&s=review (앨범 리뷰)


별 4개를 준 이즘과 달리 별 3개에 그쳤고, 글의 논조가 이즘과는 별점 이상의 온도차를 보인다. 이즘 리뷰가 에픽하이의 재도약에 감정적으로 공감하고 기뻐하는 사람이 쓴 글이라면, 리드머 리뷰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쓴 글 아닐까 싶다.


필자 이병주는 ‘무색무취의 음악' 이나 ‘특별한 아이디어 없이 무난함으로 점철된 비트' 등의 문구로 앨범 사운드를 평가한다. 이즘 리뷰에서는 ‘비트와 랩이라는 기본 요소에 충실한 프로듀싱' 이었던 것이 리드머 리뷰에서는 ‘무색무취의 음악'이 된 것을 보면 확실히 어조가 좋지 않다. 대중 지향적 트랙이 연출이나 비트보다는 보컬의 개성에 기대고 힙합 트랙 역시 어중간한 위치를 잡는다고 언급하다가, 리뷰 중후반부에 인상적인 트랙과 나름의 장점을 짚은 뒤 이내 아쉬움을 드러내며 글을 마무리한다.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앨범 중 인상적인 부분의 감흥이 글로 드러난 것보다 크게 느껴졌을 지 모르겠으나,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좋은 점보다 아쉬운 점이 더 길게 적혀 있으니 별을 3개나 준 것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사운드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청자에 따라 이견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마지막 문단에서의 가치 평가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마지막 문장 ‘에픽하이의 성공적이고 긴 커리어 안에서 손꼽을 만한 앨범은 아니다.’는 발매 당시까지의 커리어를 기준으로 [신발장]을 [Remappning the Human Soul] 과 비교한다면 나올 수 있는 문장이다. 다만 ‘하지만 그것(타블로의 인상적인 라인들)이 변화한 개인의 삶이나 상황으로 깊이 들어가기보다는 주로 추상적인 영역 안에 머물고 있다보니’는 발매 당시의 기준으로도 틀렸다고 생각한다. “타진요도 기어와 I’m tryin’ to love ya”, “무한대를 그려주려 쓰러진 팔자", “열꽃이 절망 과다 복용 And this is rehab” 처럼 타진요 사건의 여파를 적나라하게 담은 가사가 버젓이 있는데, 필자가 생각하는 ‘인상적인 라인들'이 무엇이어서 이런 문장을 썼는지 물어보고 싶다.


리드머는 에픽하이의 이후 작품을 연이어 혹평하며 힙합 커뮤니티와 수 차례 갈등을 빚었다. 악적으로 하강곡선을 그렸다는 9집 [We’ve Done Something Wonderful] 리뷰는 2017년 별 2개 반에서 2020년 별 2개로 재조정되었고, 10집 첫 CD인 [Epik High Is Here 上] 역시 ‘제자리걸음'이라는 평가와 함께 별 2개 반을 받았다. [Epik High Is Here 上] 리뷰는 그 와중에 본문에서 9집 제목의 마지막 단어 Wonderful을 Beautiful로 잘못 적었던 실수가 (현재는 수정됨) 낮은 별점과 합쳐져, 몇몇 커뮤니티 유저들이 이 리뷰가 가수에 대한 불호 혹은 악의를 담은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해당 리뷰들을 읽어보면 9집이나 10집 리뷰가 8집 리뷰보다 설득력이 있다. 9집이나 10집을 낼 때의 에픽하이가 동시대의 최전선이나 커리어 최고점에 있지 않고, 본인들의 영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이진석과 황두하가 각각 맡은 해당 리뷰의 논조가 마냥 거슬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앨범의 구성 요소 상당수를 부정 평가하면서 그에 대한 근거를 얼마 적지 않은 8집 리뷰를 읽다 보면, 애초부터 [신발장]에 주어진 들뜬 주목의 온도를 낮추려는 의도를 갖고 리뷰를 적은 것 같아 보인다. 이쯤 되면 작품 리뷰의 첫 문단에서 [신발장]의 성공 요인에 굳이 연예인으로서의 매력을 언급하는 것을 이후 내용에 대한 복선으로 읽어도 되는 걸까 싶다.


고백하자면, 내가 한국 음악 웹진 중 가장 치열하게 대항하고 싶어했던 매체는 리드머였다. 한국에서 한국어로 힙합이라는 장르를 오랜 시간 동안 다루면서 이를 이해하는 관점과 독법을 탄탄히 쌓아나간 지면이라는 점은 리스펙하는데, 그 장르에 대한 가치 판단 기준으로 자신들의 것만 유효하다고 승인하는 듯한 뉘앙스가 언뜻언뜻 보일 때 화가 되게 많이 났다. 돌이켜보면 나는 여러 종류의 소리를 만들고 다양한 영역의 청자를 끌어안는 음악가를 통해 관점을 세우기 시작했으니, 장르의 스페셜리스트로서 어쩔 수 없이 보이게 되는 완고한 측면에 유독 반감을 가졌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저항감으로 한 언행이 전부 옳았던 것은 아니고, 내용이 옳았다 하더라도 불필요하게 거친 표현 방식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을 수도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렇지만 그 시끄럽던 나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내게 본격적으로 글 쓸 기회를 제공하고, 그 기회가 또 다른 기회를 낳았으며, 내게 기회를 준 이들이 나를 변호하여 같이 싸워준 적도 있었다. 그 마찰의 시간을 마냥 부끄럽게 기억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아이돌로지

https://idology.kr/disc/2141 (앨범 리뷰)


아이돌로지에도 [신발장] 발매 당시 리뷰가 올라왔다. 창간 반 년밖에 되지 않은 아이돌로지를 앨범 발매 당시의 나는 전혀 몰랐고, 이후 이 리뷰를 읽게 된 건 내가 아이돌로지 필진이 된 뒤 이전의 역사를 공부할 때였다.


이 리뷰를 쓴 필자 조은재는 2021년 멜론에서 진행한 ‘K-POP 명곡 100’ 기획에 참여하여, 95위에 선정된 에픽하이 ‘Fly’의 해설을 적었다. 에픽하이가 기획형 댄스 그룹이 아닌 자연 발생한 힙합 그룹이다 보니 선정 당시에도 상당히 놀랍다는 반응이 많았는데, 조은재는 에픽하이를 힙합 아이돌 부류에 큰 영향을 끼친 모델로 접근한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서 자연 발생한 가수 그룹 중 이만큼 아이돌적인 팬덤을 보유한 그룹도 많지 않았고, 힙합 뮤지션 중 손에 꼽히게 어린 여성 팬이 많았던 팀이니 그렇게 짚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이돌로지의 [신발장] 리뷰는 다른 호평과 비슷하게 커리어 전반과 연결된 앨범의 특성을 짚지만, 그것을 “초기작을 포함한 그간의 모든 행보를 포괄하여 하나의 맥락으로 만들고자 하는 시도”라는 문장으로 간결하게 정리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2021년에 이 문장을 처음 읽으면서, [신발장] 앨범이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에픽하이 커리어를 지배하다시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커리어를 한 맥락으로 정리했다는 점에 있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또한 팬덤과 소통하며 공동체로서의 음악을 구축해온 이들을 조명하는 것도 상당히 창의적이면서 정확하다고 생각했다. 


이 글을 읽어본 건 내가 아이돌로지에 에픽하이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을 때였다. 이들은 K팝 아이돌을 키우는 기획사에 두 차례 소속되어 있었고, 그 이후로도 K팝 아이돌 업계와 지속적으로 교류하는 동시에 K팝의 글로벌화와 발맞추어 활동 영역을 국제적으로 넓혔다. 그렇게 아이돌 판과 영향을 주고받는 에픽하이의 모습을 내가 소속한 매체에 그려보고 싶어서 선례를 조사하는 차원에서 이 글을 찾아봤는데, 내가 짚어보고 싶었던 부분을 내가 미처 언어화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정리해 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지금까지도 크다.



힙합엘이

https://hiphople.com/music_feature/2897677 (앨범 리뷰)

https://hiphople.com/music_feature/2939173 (에픽하이 인터뷰 2014)

https://hiphople.com/music_feature/1523840 (타블로 인터뷰 2013)



힙합엘이는 에픽하이 10주년 기념으로 2013년에 타블로 인터뷰를 진행한 데에 뒤이어, [신발장] 발매 당시 주간 앨범 리뷰와 함께 에픽하이 인터뷰를 진행했다. 2024년 현재까지 에픽하이 인터뷰 중 힙합엘이의 두 인터뷰만큼 본인들의 커리어를 깊이 있게 다룬 사료가 없다. 


그만큼 깊이 있는 인터뷰가 가능했던 건 아마 인터뷰어가 아티스트를 굉장히 자세히 독해하고 조사해서, 아티스트가 그 정성에 부응하여 귀한 답변을 했기 때문 아닐까 싶다. 인터뷰를 진행한 블럭은 [신발장] 앨범 리뷰에서 앨범의 내적 서사와 감정선, 에픽하이 과거 앨범과의 연결 지점을 읽어내는 데 집중했고, 인터뷰에서는 한국 힙합 초창기인 90년대 후반 에픽하이 각 멤버의 행적과 <꽃미남 아롱사태> 같은 소소한 방송 활동까지 아주 자세하게 자료를 조사했다. 아티스트가 ‘Fly’ 음원 수익을 1원도 받지 못한 이야기나, 맵더소울 경영진이 자금을 횡령하여 회사 문을 닫고 울림에 다시 들어가서 타의로 [Epilogue] 앨범을 낼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들려준 게 인터뷰어의 정성에 감동한 덕분인 듯해 보였다.


힙합엘이의 2013년 타블로 인터뷰와 2014년 에픽하이 인터뷰는 마치 꼭 맞는 퍼즐처럼 이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타블로 개인 및 그룹 에픽하이의 역사, 그리고 미쓰라, 투컷의 이력과 3인이 이루는 팀 케미스트리가 1년의 격차를 두고 두 인터뷰에 나뉘어 있다. 그 사이에 놓인 [신발장]의 대성공이 두 인터뷰의 온도를 가른다. 그룹의 과거와 미래를 쉽사리 확신하지 못하던 타블로의 씁쓸함과, [신발장]이 성공하고 미래를 기약할 수 있게 되어 매사에 감사하는 에픽하이의 에너지로.


[신발장]의 대성공 비결을 인터뷰어가 묻자, 타블로는 “행운은 분석이 불가능하다" 라고 말한다. 한편 투컷은 [신발장]이 나온 그 시점을 ‘에픽하이 시즌 2의 시작'이라 말한다. 그 ‘시즌 2’의 시작점에는 에픽하이를 보고 자란 젊은 사회인, 예술인들이 그들의 뒤에 서 있었고, 그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방탄소년단이다. 이처럼 이들의 성공과 행복을 바라는 사람들이 사회 곳곳에 가득해질 때쯤 [신발장]이 대성공한 건 분명 분석 불가능한 행운이지만, 커리어의 분기점에서 승부수를 내 기어코 성공시킨 뒤 이를 10년 가까이 영광으로 이끌어온 건 당신들의 실력과 열정이라고 진심으로 말하고 싶다.


ize

https://www.ize.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517 (인터뷰)


과거 강명석 편집장이 ize에 있고 지금까지도 음악 관련 필자로 활동하는 이 상당수가 그와 연을 맺던 시절, 엔터 산업 전반을 이런 진지하면서도 산뜻한 톤으로 다루는 매체는 분명 흥미로운 것이었다. 강명석 편집장이 ize를 나가고 이후 ize가 평범한 연예 매체로 변화하면서 큰 반발이 있었던 것이 괜한 이유가 아니었다. 위버스매거진이 국내 음악 필자들을 여럿 초빙하여 흥미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것도 그 중심에는 강명석 편집장이 있다. 음악과 관련된 길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돈을 받고 쓸 수 있는 지면이 존재한다는 건 분명 감사한 일이지만, 그 지면이 특정 기획사의 지배력 아래 있다는 것이 요새 같은 시국에는 대단히 가슴 아프게 느껴진다.


이 인터뷰는 앨범 작업 과정을 상세히 담으며 그 과정에서 팀내 역학관계에 주목한다. “이번 앨범을 만들 때는 오랜만에 날 리더로 생각하고 하라는 대로 따라와 달라”고 했던 타블로의 발언에서는 이 앨범이 원래 타블로 솔로 2집이었다는 설이 단순 뜬소문이 아니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에픽하이의 프론트맨으로서 타블로가 팀 전체의 방향타를 쥐고, ‘Born Hater’ 류의 단체곡은 투컷이 섭외부터 기획까지 주도적으로 진행하며, 혹독했던 미쓰라의 슬럼프를 끊어내기 위해 다른 두 사람이 노력하는 모습은 이 팀이 지향하는 팀워크와 역할 분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메인 송라이터가 두 명 있는 록 밴드가 연상되는 장수 힙합 그룹으로서 이들이 보여준 것 중에는 우정과 공동체의식이 있던 것 아닐까 읽어보게 된다.


질문 곳곳에 있는 강명석의 앨범 해석은 에픽하이를 자극시키는 좋은 질문이자, 이 앨범과 아티스트의 궤적을 선으로 이어 독자에게 납득시키는 좋은 해석이었다. ‘헤픈엔딩'과 ‘스포일러'가 누군가의 연애담을 보편적인 이별로 넓히는 곡임을 거론한 질문에 대한 타블로의 답은 그의 창작물 속 여러 레이어를 손으로 만져볼 수 있게 풀어낸다. [99]와 [신발장]을 회피와 직면으로 나열한 해석에 대해 타블로가 내놓은 해석을 읽으면서는, 인간이 역경을 마주할 때 가라앉거나 슬퍼하는 것 외에 다양한 자세를 취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강명석 편집장은 음악과 방송 등 다양한 분야에서 깊이 있는 인터뷰와 리뷰를 만들어낼 수 있는 필자로, 그가 쌓아 온 네트워크가 다수의 좋은 필자를 만들어내는 데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그런 매체가 돈이 도는 곳으로 지속하기 어렵다는 것을, 내가 좋아하는 일을 전업으로 하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현재의 ize와 강명석 편집장을 보며 많이 느낀다. 그런 일들이 쌓이고 쌓여 내 진로 결정에도 영향을 끼쳤던 것 아닌가, 잠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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