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끝나는 긴긴 3월
3월이 드디어 끝난다. 한 달 견디기 너무 힘들었다. 3월이 엄청나게 즐거웠던 적은 별로 없었지만, 솔직히 3월 한 달이 빨리 끝나기를 빌었던 건 처음이었다.
초중고는 물론, 대학까지 휴학 없이 졸업했던 나에게 올해 3월은 아무런 소속이나 할 일 없이 지내기 시작하는 첫 시기였다. 물론 아무런 할 일이 없는 건 아니었다. 미리 잡아 놓은 약속과 미리 신청해 놓은 코딩 강의, 미리 녹음해 놓고 송출을 기다리고 있는 팟캐스트가 있었고, 나름대로의 계획은 머릿속에 그려놓고 있었다. 집에만 있어도 사람은 할 일이 계속 생기다 보니, 쓸데없이 바쁘기도 했다. 그래도 소속이나 의무적인 할 일 없이 맞는 3월이 처음이다 보니, 뭔가 기대되기도 했다. 원래 날씨가 따뜻해지면 없는 기대감도 생기곤 하니까.
그러나 월초에 안 좋은 일이 있었다 보니 얼마 이상 행복하기는 힘들었다. 안면을 트고 지냈던 아버지 친구 분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는데, 정황상 자발적일 것으로 아주 강하게 추정되지만, 대체 어떤 이유로 세상을 하직하셨는지 아직도 전혀 알 수가 없다. 그 소식이 들린 시간은 마지막 대선토론 다음 날,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를 발표한 아침이었다. 가족 셋이서 뉴스보다도 더 황당한 소식을 함께 들으며 말을 잃었다. 그 주 주말에 아버지를 따라 빈소에 갔는데, 영정 앞에서 두 번 절하는 순간까지도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전혀 파악이 안 된 채 머리 위에 물음표만 끝없이 떠 있는 것 같았다. 한 달이 다 끝나가는 지금까지도 고인에 대한 생각은 여전히 물음표 가득 뜬 순간에서 멈춰 있다.
평론가로서 2021년은 행복한 한 해였다. 좋은 선배를 많이 만났고 신인 평론가로서는 꿈꿀 수 없었던 일을 경험했다. 하지만 자연인으로서 2021년은 견디기만도 벅찬 해였다. 짜릿한 경험 사이사이에 고모, 강아지, 외할아버지까지 가까운 가족의 장례를 세 차례 치렀다. 작년 한 해는 기회와 설렘, 발전이 주는 짜릿함이 상실감을 압도했다. '어떻게든 살아간다면 행복은 있다'는 말을 그래서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부고를 들은 후, 머릿속 퓨즈가 딱 끊겨버린 것 같다. 3월 한 달이 버거워졌다. 피곤함을 느낄 때면, 주변 사람들이 몰아치듯 떠나가고 남은 허망함이 몰려왔다. 당장 나의 상실감과 피로감도 크지만, 나보다도 떠나신 분들과 더 오래 알고 지냈던 부모님의 상실감도 같이 견디는 게 쉽지 않다. 대선 이후 정권 교체가 결정된 뒤 나도는 해괴한 정책과 어둡고 공포스러운 전망들은 불에 기름 붓는 느낌이었다. 공포에 떨 힘도 없어서인지 낙관과 환상에 기대고 싶어진다. 뉴스가 안 나오고 대통령이 바뀌지 않는, 떠난 사람이 다시 돌아온 환상 세계가 있었으면 좋겠다. 잠시 거기 살고 싶다.
4월에 처음 확정된 일정은 작년에 돌아가신 고모의 제사다. 부모님은 나보다 더 많은 빈소를 찾아가신다. 내가 빈소에 다녀온 그 다음 주말에도 아버지의 친척 분이 돌아가셔서, 빈소에 다녀오셨다. 아버지는 "원래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는 게 사회인의 삶이야." 라고 하셨다. 그 사실을 안다고 해서 덜 슬퍼지지는 않는 것 같다. 이쯤 되니 '상상더하기' 노래를 '상실에 상실에 상실을 더해서~'로 바꾸게 된다. 만남과 헤어짐에 대한 이야기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아티스트를 심정적으로 이해하게 됐다.
일상 생활은 어찌어찌 굴러간다. 나름대로 할 일을 만들되 여유를 두고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지친 것 같아서 조금은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 SNS와 뉴스를 외면하고 있다. 웃긴 일엔 웃으며 지내고 있다. 탄산음료와 과일을 조금 더 많이 찾는 것 같긴 한데, 술은 그리 늘지 않았다. 그렇지만 밤마다 탈력감이 장난 없이 밀려온다.
고인이 떠난 뒤 남은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보니, 주어진 만큼 사는 건 의무다. 너무 어려워서 그렇지. 아무튼 올해 상반기부터 험난해졌으니.... 올해도 이걸 상회할 만큼의 짜릿함과 발전으로 버틸 수 있다면 좋겠다. 가까운 사람들과 오래도록 함께하고 싶다.
https://www.youtube.com/watch?v=TgOu00Mf3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