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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미 Apr 06. 2022

추억으로 돈 벌어 본 노스탤지어 안티 이야기

잊고 싶었던 시절이 그리워질 때, 그리운 시절을 잊어야 할 때

레트로는 대중문화의 영원한 히트 상품이다. 레트로를 내세운 창작물이 동서를 막론하고 크게 흥행하는 걸 보면서, 좋고 나쁨을 떠나 대체 과거가 저 정도로 추억할 가치가 있는 것이 맞는지 의심해본 적이 있다. 그렇게 의심한 이유는 당장 나에게 과거가 돌아가고 싶은 시간이 아니어서였다.


스무 살이 된 해 나는 가족들과 함께 10대 시절을 함께한 동네를 떠났다. 4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그곳에는 한 차례도 다시 가 보지 않았고, 나는 100억을 받아도 학창 시절로 돌아가지는 않을 거라고 말하고 다녔다. (액수가 더 커져도 답변은 마찬가지다.) 존재 여부를 타인에게 입증하기 어려웠지만 나에게는 보였던 배제의 공기, 그 공기 속 잊을 만 하면 마주하는 모멸감, 프라이버시 없이 모든 것이 타인에게 공개되어야 하는 갑갑함… 그 시절을 넘어오며 어른이 되니 재만 남은 것 같았다.


나는 그 후 모멸감이 아닌 다른 것으로 나를 쌓아올리는 데에 몰두했다. 10대 시절 이상하기만 했던 나와 주변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글을 쓰던 습관 덕분에 성인이 된 뒤 내 기억을 내 손으로 편집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어떻게든 행복을 얻어보려 분투하고, 그 과정에서 내 관점을 얻어낸 것으로 그 시절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내가 기억하고 싶은 대로 과거 사건의 중요도를 재배열하여 글을 쓴 뒤 더 구체적인 사건과 감정은 굳이 기억하려 애쓰지 않기로 했다.


적당한 재편집권과 적당한 망각은 사람을 살게 하는 시너지 효과를 냈다. 인간관계 속 폭력과 갈등으로 고생하던 아이가 자라, 그 안에서 나름대로 투쟁하던 기록을 갖고 관계 맺기와 성장의 기회를 얻었다는 건 꽤 짜릿한 서사다.  




글을 쓰며 한 시기를 완전히 넘어온 지금은 다른 난관을 마주하고 다른 고민을 시작했다. 요새는 글에 쓰지 않고 잊으려 했던 시간들이 종종 떠오른다. 인천광역시 홍보 광고의 90% 지분을 차지하는 그 동네에는 깔끔하고 특이하게 지어진 높은 건물과 비싸지만 맛있고 잘 꾸며진 가게, 밤에 산책하기 좋은 공원이 있었다. 그곳에서의 시간 중 괴롭지 않았던 부분에는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찾아가던 식당의 음식 맛, 무엇인가에 기뻐하며 열심히 먹고 이야기하던 가족들과의 수다, 식당을 나와 예쁜 야경을 보며 마시는 시원한 공기가 있었다. 겨울마다 온몸으로 맞았던 바닷바람과 습한 공기도 아련해지는 건 그것이 지금 보는 고민과 비극이 없던 시절의 것이어서다.


레트로와 노스탤지어가 왜 그렇게 잘 팔리는지 이제는 이해하게 됐다. 영광과 뿌듯함, 설렘과 짜릿함만이 그리운 게 아니었다. 돌아가고 싶지 않은, 빛나지도 않았던 것 같은 시절에도 웃음 짓던 순간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슬며시 웃게 된다. 돌아오지 않을 순간들이라 더 아련해지는 걸까? 그 웃음을 조금씩 이어 붙여 삶이 만들어진다는 걸 최근에 알았다.


작년 한 해 나에게 성장의 기회를 제공한 사람은, 사람이 기억으로 산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던 인생 선배들이다. 사회에 자리잡아 각자의 추억을 기반으로 아이디어를 떠올린 선배들은 같은 아티스트와의 기억을 공유하는 동지였던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글을 쓰던 나는 각자의 청춘을 불태워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았던 이들을 최대한 존중하려고 했다. 과거를 상징하는 음악을 다룬다는 것은 곧 과거를 지나온 사람들의 기억을 다룬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2021년 한 해 내내 <놀면 뭐하니?>를 필두로, 2000년대를 빛낸 여러 아티스트들이 과거의 상징으로 불려나와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 와중에 한 시대를 빛내 놓고도 아무데서도 초청받지 못한 아티스트도 있었다. 그의 히트곡을 써준 작곡가, 그와 같은 회사에서 활동했던 동료 가수, 그가 작사한 히트곡을 부른 가수들이 <놀면 뭐하니?> 등 여러 매체에 출연했는데 정작 그는 그 어디에서도 언급되지 못했다. 그가 출연한 방송은 그의 재판을 보도한 뉴스 뿐이었다.


나는 이 사람을 모티브로 삼아 <김도훈으로 보는 K-R&B의 시대>를 썼다. 대외적으로는 SG워너비 얘기하는 글이라 소개하지만 실제 이 글에서 가장 많은 곡이 소개된 가수는 이 사람이다. 그는 김도훈 작곡가와 많은 곡을 함께한 가수이고, 한 시대를 대표할 만한 히트곡을 가진 가수다. 이 글을 읽고 그의 음악을 오랜만에 찾아 들은 편집자님이 그의 곡을 10년 만에 먹은 라면 같다고 말씀해주신 적이 있다.


그는 이 글의 주 소재였던 가수 중 내가 가장 좋아한 사람이었다. 허나 그의 이름을 글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그 어느 곳에서도 거론하지 않은 것은, 약물 범죄로 재판을 치르며 여성을 대상으로 인격의 바닥을 내놓은 사람을 기억할 만한 아티스트로 지목하기 싫어서였다. 제아무리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은 사람일지언정 그를 언급하여 메인스트림에 소환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에게 기어코 작은 무대를 열어 주었고, 어느 날 동네에서 그의 공연 포스터를 본 날 이루 말할 수 없는 골때림을 느꼈다.




근래 이 비슷한 류의 골때림을 온 국민이 느끼게 된 사건이 일어났다. 우주 대폭발을 팀명의 어원으로 삼았던, 성폭력을 포함한 다양한 범죄를 저지르고 책임을 지지 않은 유명 아이돌 그룹이 기어코 복귀하였다. 막대한 영향력 탓에 국내외로 복귀가 가시화되던 이들은, 이들을 보며 성장한 이들의 기억에 기대어 높은 차트 성적을 기록하였다. 그들에게 환대에 가까운 성적을 선사한 노스탤지어를 원망하는 목소리는 차트 성적 못지않게 크다. ‘클릭 수 1 증가’가 그들의 복귀를 재촉하는 신호로 읽히는 세상이니까.


나는 그들의 신곡을 두 번 이상 들을 가치를 찾지 못했다. 맥없이 낡아버린 음악을 들으며 정이 떨어졌다. 그들의 높은 음원 성적이 너무 싫지만, 클릭 한 번으로 3분 동안 십수 년의 기억에 빠져 보려는 마음을 이제는 함부로 원망할 수 없게 되었다. 근래의 나도 노스탤지어가 주는 히죽거림으로 하루하루를 사니까. 1인당 100원도 안 되는 수익을 주는 음악 청취자보다는, 그들에게 수천만원에서 억대를 투자하여 복귀의 기반을 마련한 산업계를 좀더 탓하고 싶다. 물론 스포티파이의 월 수백만 청취자를 보면 복귀를 재촉하고 싶어졌을 수도 있긴 하지만, 지지 기반이 뻔히 보이는데도 복귀의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던 아티스트들을 떠올리면 죄인에게도 기회를 준 관계자들이 원망스럽다.


최근 레트로 트렌드 속에는 큰 관심을 받지 못하더라도 꾸준히 활동하며 기량을 유지한 사람, 한창 주목받던 시절 이상의 무대 매너로 폭발력을 발휘하는 사람, 음악이 아닌 다른 직업에 종사하면서도 자기 삶에 충실한 사람이 나온다.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채로도 단단히 삶을 이어간 사람에게서 용기를 얻기만도 바쁘다. 음악인을 팬보다 가까이에서 접하며 그들에게 돈과 힘으로 영향을 끼치는 이들이 해악보다는 단단함에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 노스탤지어에 잠시 기대고 싶은 마음이 세상을 뒤로 가게 하는 퇴보로 느껴질 일, 어찌 보면 자연스러울 마음을 가진 동료 시민을 비난할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음악 기획사를 운영하는 이들에게는 클릭 수가 돈으로 보일 수 있을텐데, 다들 책임감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과거를 상징하는 음악을 다룬다는 것은 곧 과거를 지나온 사람들의 기억을 다룬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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