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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미 Jun 17. 2022

9년의 증명을 마치며

BTS의 단체 활동 중단 소식을 듣고

언제부턴가, 나와 생일이 같은 유명 인사나 내 생일과 같은 날짜에 발매된 앨범을 기억하곤 하는 습관이 들었다. 나와 정확히 같은 날 태어난 사람이 트와이스의 쯔위라면, 내 생일과 같은 날에 발매된 유명 케이팝 곡 중에는 NCT 127의 ‘Cherry Bomb’, 유명 국내 힙합 음반 중에는 저스디스의 [2 MANY HOMES 4 1 KID]가 있는 식으로. 반면 내 생일 즈음 데뷔한 그룹이 누구인지를 많이 떠올리지는 않았는데, BTS의 데뷔일이 내 생일 즈음이었다는 걸 이제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데뷔 9주년을 맞아, 단체 활동 중단 발표 영상이 올라온 날이 내 생일이었으니 말이다.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lists/best-bts-songs-1316499/


지난 3월, BTS의 곡 100개를 순위 매겨 리뷰하는 롤링 스톤의 기사가 나왔다. 나는 이 리스트를 정서적 거리를 두고 볼 수 없었다. 리스트의 상당 부분이 이들이 영미권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이전 발표된 곡이었는데, 그 곡들이 내 10대 중후반을 관통한 탓이었다. 이 리스트 속 상당수의 곡이 수록된 이번 앤솔로지 앨범 [Proof]를 들으면서, 그 곡들을 처음 듣던 시공간으로 잠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 고등학교 시절은 ‘I NEED U’부터 ‘DNA’까지다. 나는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를 나왔는데, 기상송을 신청 받아서 틀었던 우리 학교의 여학생 기숙사에서는 그 당시 흥했던 거의 모든 아이돌 그룹의 음악이 아침마다 나왔다. 기숙사에서 단연 큰 비중을 차지한 그룹은 방탄소년단이었다. 타이틀곡들은 물론, ‘Whalien 52’, ‘Save Me’, ‘뱁새’, ‘Lost’, ‘고민보다 Go’ 등 유명 수록곡 대부분을 기숙사에서 들었다. 내 룸메이트가 침대 옆에 방탄소년단 포스터를 붙인 적도 있었는데, ‘피 땀 눈물’을 처음 들려준 사람이 그 친구였다. 심지어 ‘쩔어’를 처음 들은 곳은 학교 댄스부 공연이었는데, 이 정도면 흔히 아이돌 케이팝의 주 타겟이라는 10대 여학생으로 BTS의 한 시기를 관통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시절 보고 들은 방탄소년단의 음악과 행보는 케이팝 역사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들은 내가 기숙사에서 마지막으로 들었던 ‘DNA’로 미국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무대에 섰고, 내가 대학에 입학한 그 다음 해 이들은 빌보드 200 1위를 달성하며 본격적으로 월드스타가 되었다. 이들의 음악, 스타일, 지향점은 이후 데뷔하는 다수의 아이돌 그룹에게 참고사항이 되었고, 필진 활동을 시작한 나도 자라면서 보고 들은 그들의 행보와 음악을 일종의 기반으로 쓰게 되었다.


활동하는 웹진에 ‘Butter’와 ‘Permission to Dance’ 리뷰를 쓰면서, 오랫동안 보고 자란 가수의 곡을 다룰 수 있게 된 게 기뻤다. 케이팝 아이돌의 주 소비층과 너무나도 다른 얼굴을 한 사람들이 이들을 여러 창구에서 다룰 때면, 그 사이에 ‘BTS를 보고 자란 여자 사람’으로서 내 관점을 집어 넣고픈 마음도 들었다. 이들의 정서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어렴풋이 잡히니 목소리 내고 싶은 욕심이 더 커지기도 했다. 우리 학교 인기 가수가 월드스타가 되었다던가, 그 월드스타가 10대 사회 밖에서는 일일이 소개가 필요할 만큼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던가 하는 경험 역시 꽤 크게 각인됐다.


이들이 월드스타가 된 뒤 올라갈 수 있는 곳은 다 올라 봤으면 했는데, 그런 바램을 가졌던 건 지금 나에게도 이들과 관련된 경험이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라서였다.




하나 아쉬운 점은, 내가 필진 활동을 시작한 2021년 이후로 이들 커리어의 본편 격인 EP 이상의 작업물이나 한국어 싱글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는 거였다. 지금의 위치와 경지에서 보이는 것들을 이야기하며 앨범을 내 준다면 너무 좋을 것 같았지만, 정황상 그럴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Proof’라는 제목으로 과거 발매곡을 묶은 앨범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무언가가 끝나겠구나 하는 걸 예감했다. 단체 활동 중단 소식을 듣고도 ‘올 것이 왔다’ 싶었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은연중에 느꼈던 것들을 멤버들도 느끼고 있었다는 것, 그 사실을 직접 이야기한 것이 꽤 놀라웠다. [MAP OF THE SOUL : 7] 앨범이 이들 커리어의 한 장을 닫는 작업물이었고, 그 이후의 영어 싱글들이 보너스에 가깝다는 것은 보는 사람 대부분이 느낀 바였다. 


영어 곡으로 빌보드 1위를 찍은 뒤, 나는 팬데믹 없는 세상에서 ‘ON’이 투어 공연장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게 빌보드 1위를 하는 것보다 차라리 더 좋았을 것 같았다. 하고 싶은 말이 늘 중요하던 이들이 하고 싶은 말보다 더 중요한 것, 예컨대 성과나 책임감 같은 것을 우선하여 활동하다가 소진되어 가는 것이 안타까웠다. 개인을 채울 틈 없이 빽빽하게 돌아가는 케이팝 업계도 문제겠지만, 가사의 언어에 따라 프로모션의 정도를 달리 하여 활동 방향을 이들이 더 빨리 지치는 방향으로 고정시켜 버린 미국 팝 업계도 비판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아이돌 그룹 한 팀에 밑도 끝도 없이 의미부여가 되는 상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아이돌 그룹이라는 포맷은 비록 활동 중엔 영원히 갈 듯한 단결력을 과시하더라도, 실상 영원히 유지될 수는 없는 활동 형태다. 상식적으로 그 많은 사람의 관심사가 언제까지나 그룹 활동에만 머무를 리가 없다. 그룹 활동에 모든 것을 쏟아붓다가도 어느 순간부터 각자의 삶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굳이 떠들썩하게 발표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알 만한 수순이기도 하다. 


단체 활동 중단을 굳이 발표하기로 한 것도, 멤버들이 그 소식을 전달하는 화법도 지극히 그들답다고 생각했다. '멈춤'을 원한 건 관계자보다는 멤버일 테이니, 지금의 결정이 멤버의 의향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이 정도 되는 슈퍼스타의 행보에는 수많은 사람의 생계가 달려 있고, 그렇기에 이들의 거취는 절대 자의에 의해서만 결정될 수 없을 텐데 그 중간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은 전부 소거하고 팬과 멤버만 1대 1로 남는 구도를 만든 게 과연 정말로 멤버의 행복을 위하는 방법인지는 모르겠다. 애초에 여러 사람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 의사 결정이라면, 이 결정에 영향을 끼친 사람들이 최대한 많이 전면에 나서 다 함께 책임을 나눠 지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각자의 행복을 다지기 위해서라는 목표를 더 잘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언제부턴가 각자의 삶에 더 충실해지는 것은 정해진 수순에 가깝다. 유난스럽게 놀랄 일은 아니고, 슬퍼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9년간 쓰인 어떤 장의 '끝'을 무미건조하게 맞이하지는 못할 것 같다. 그 9년이 곧 중학교 2학년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의 시간을 의미하니까.


그동안 고마웠다. 상상할 수 없는 세상을 만들어 주고, 본의 아니게 휘말린 상황 속에서도 그때 그때 최선을 다해 온 게 고마웠다. 살면서 찾아오는 예측할 수 없는 일들에 최선의 책임을 다하는 법을 덕분에 많이 배웠다. 책임감이라는 게 멋진 가치라는 것도.


이들이 그룹이 아닌 개인으로서는 또 어떤 생각을 갖고 이야기할지 궁금하다. 너 자신을 사랑하라고 외치던 이들이 정말로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을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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