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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eadreads Mar 05. 2020

인도에는 인도가 없다

뚜벅이의 인도 회사 출퇴근길



인도에 오기 전, 인사담당자분에게 연락이 왔다. 내가 받은 메일에는 회사로 출퇴근 시 회사 차량이 제공된다고 적혀 있었다. 나 같은 인턴 나부랭이에게 기사와 차량을 지원해준다는 사실을 듣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스물넷에 벌써 기사가 있는 삶이라니. 인도에서 대접받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집 근처의 구글 인디아

교통편이 해결되어 걱정은 덜었지만, 애초에 내가 살게 될 숙소와 회사와의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았다. 구글맵상으로는 1km도 안 되는 거리로 걸으면 회사에 금방 도착할 것 같았다. 걷는 것을 참 좋아하는 나이기에, 당시 연락을 주고받았던 인사 담당자에게 회사로 걸어서 출근을 해도 되느냐고 물었지만, 그러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회사와 집까지의 거리는 도보로 약 10분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걸어서 10분 거리인 회사에 걸어 다닐 수 없다는 건 뭐랄까 조금 당황스러웠다. 중간에 마을이 있어서 그렇다는 말에 그 마을이 무슨 슬럼가 정도 되는 건가 싶었다. 그렇게 말하신 이유가 있겠지 싶으면서도 걸어서 출퇴근을 할 수 없는 건 조금 아쉽긴 했다. 분명 가까웠고 나는 평소에 회사에 걸어서 갈 수 있는 삶을 조금은 동경해왔기 때문이다.

인도에 온 다음 날, 즉 내 공식적인 첫 출근 날에 회사로 가는 차창밖을 보면서 그러한 대답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분명히 마을이고, 외진 곳도 아니었지만 차를 타고 다닐 수밖에 없는 도로 상황이었다. 네팔보다 훨씬 크고 나름은 정돈된 동네와 도로임에도 인도에는 인도가 없었다. 사리를 입은 여인들은 먼지와 매연으로 가득 찬 찻길에서 차를 겨우 피하면서 걷고 있었다. 동네의 아이들은 건물 계단에 옹기종기 올라가 스쿨버스를 기다렸다. 강아지는 돌무더기 위에서 자고 있었고, 아침에 상점들은 문을 열고 있었지만 여전히 사람을 위한 길은 없었다.   

뭄바이의 골목길

나는 네팔에서도 논과 밭을 지나 학교로 출근을 했었다. 물론 마스크를 까먹고 나온 날엔 조금 후회도 되었지만 가끔 타는 스쿨버스는 너무 정신이 없었고 우리의 꿀 같은 잠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조금 늦은 시각에 일어나 당시 교육봉사를 하던 학교까지 걸어갔다. 가는 길엔 염소와 개, 닭과 소 같은 동물들을 볼 수 있었고 처음엔 괴물 보듯 우리를 보던 마을 사람들도 어느덧 우리께 익숙해지고 있었다. 네팔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정신없고도 평화롭던 출근길이 좋았다. 철문을 나서면 나름의 지름길을 지나야 했는데, 네팔의 농사 현장을 눈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논밭에는 한 명 혹은 두 명 밖에 지나다닐 수 없이 좁은 도로밖에 없었다. 우리는 나란히 줄지어 걸어 다녔다. 논두렁에 빠지지 않게 조심조심. 가끔 가다가 염소를 끌고 온 아주머니와 염소를 마주치면 조심스레 비켜주고 다시 갈길을 가곤 했다. 논밭의 끝에는 생긴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카페에서 항상 젊은이들이 기타를 치고 있었다. 이른 낮부터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싶었지만 여러 번 보다 보니 우리는 인사를 안 해도 서로를 알아보고 있었다.

네팔의 학교 출근길

그 길엔 6학년에 비파나라는 여자아이의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야채가게도 있었다. 나름 유일하고 괜찮은 야채를 파는 곳이었어서 우리는 퇴근길에 종종 들렀다. 처음에 비파나를 알게 된 계기도 그 논두렁이었다. 야채를 사서 돌아오는데 어떤 여자아이가 저 멀리서 뛰어오고 있었다. 우리 엄마가 계산을 잘못했다고 돈을 더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하면서도 쑥스러워하던 여자아이는 알고 보니 반에서 가장 활발한 여자아이였다. 난 벌써 그녀가 보고 싶다. 아직도 중학생밖에 안 된 소녀겠지만 말이다. 그렇듯 네팔에서의 출퇴근은 평화롭고도 흥미로웠다. 학교 가는 길의 유일한 베이커리를 발견했고, 내가 사랑하는 망고를 파는 인도 아저씨들을 만났다. 매일 같은 길이었지만, 그곳엔 다른 풍경들이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출퇴근 길을 여행같이 만들었던 티미의 골목길들이 그리웠다.

차선이 보이지 않는 차도

인도에서도 그 정도 도보여행은 괜찮겠다 싶었지만, 이곳은 인도였다. 나는 인도에 온 다음 날 저녁 약속 장소로 가는 차에서 정말 눈으로 믿기 힘든 광경들을 목격했다. 역주행을 하는 차들, 8차선 도로에서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들. 사실 베트남에서도 수없이 겪어 차가 달리는 와중에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아왔지만 인도는 정말 어나더레벨이었다. 저렇게 두서없이 뛰어들면 사고가 안 날까 차에 타고 있는 나도 조마조마 한데, 아직까지 사람과 차가 부딪힌 경우는 보지 못 했다. 인도의 도로는 보행자가 아니라 운전자들을 위해 만들어졌나 싶을 정도로 인도가 없다. 아니면 도로가 없는 곳을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것 일수도 있겠다. 반대 방향의 차선은 풀과 나무들로 완벽하게 나누어져 있지만, 같은 방향의 차선은 최소한 내 육안으로는 안 보일뿐더러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 또한 차선이 나눠져 있다고 하여 횡단보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신호등이 있는 것을 몇 번 보았지만 그 신호를 지키는 사람들이나 차를 아직 본 적이 없다. 또한 인도가 있어도 인도를 사용하지 않고 차도로 걸어가는 사람이 더 많다. 인도에는 차들과 각종 물건들, 상점들로 가득 찬 나머지 도저히 제대로 걸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드푸르의 골목길
내가 살고 있는 집 앞

차를 타고 편하게 출퇴근할 수 있음은 참 좋다. 피곤한 아침에 잠깐 눈을 붙일 수도 있고, 길을 걸으며 더러워질 내 신발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내가 사는 이곳을, 조금은 돌아다녀봐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걱정과 의심을 조금은 거두고, 동네의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그들이 사는 모습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다. 나는 이제 다음 달이면 더 크고 좋은 다른 동네의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된다. 거리가 꽤 멀어지고 외곽 순환 도로를 타고 가야 하는 곳이기에 이제는 회사에 걸어 다닌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왜 진작 마음을 열고 그 사람들을 나의 이웃으로 반기지 못했는지, 다른 생활을 해도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소통할 수 없었던 것인지 조금 아쉽기도 하다.

네팔에서 우리가 살던 집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나와 옆길을 따라가다 보면 도저히 집이라고 불릴 수 없는 천막 아래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듣기로는 집 근처의 한 민속촌 마을에서 파는 소품들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했다. 집으로 퇴근하며 수없이도 마주친 사람들과 그 마을을, 나는 그저 차 안에서 안타까운 눈빛으로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혹은 이야기할 수 있다면 어떨까. 아직도 내가 사는 인도는, 내가 말하는 인도는 나의 편협한 시각으로 본 인도일 뿐이다. 여전히 더 다양한 사람과 일상을 마주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아직도, 언젠가 인도에서 내가 마음 놓고 걸어 다닐 수 있는 날이 오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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