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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eadreads Sep 16. 2020

글을 씁니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

 방학이 끝날 무렵엔 한 달간 밀린 일기를 하루에 몰아 쓰는 일이 잦았다. 매일, 별 볼일 없는 하루를 기록한다는 것은 지루하고도 벅찼기에 나의 기록들은 대부분 누군가의 위력에 의해 적히곤 했다. 사춘기에 접어들 즈음엔 공상 소설을 몇 편 써보다가 엄마에게 발각되어 수포로 돌아갔다. 애초에 몇 장 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부족한 글솜씨를 누군가에게 들키기 싫었던 예민한 여중생은 그렇게 글을 쓰는 것을 중단하고야 말았다.

 다시 펜을 잡아야 했던 건 대학을 가기 위해서였다. 수능만을 준비하던 내게 논술은 갑작스러운 장애물이었다. 평생 글을 써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글을 쓰라는 거야? 책을 좋아했으나 입시 논술은 재미가 없었고, 답이 정해진 논술은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작문에 답이 어디 있어?' 콧대 높은 수험생은 그렇게 매달 40만 원을 공중분해하곤 했다. 돌잡이 때 붓을 잡았다던 나는, 결국 논술이 하나도 필요 없었던 수능으로 대학에 입학했고 여전히 글을 쓰는 일은 내게 벅찼다.


 언젠가 긴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린 적이 있다. 처음으로 내 일기를 남들에게 보여준 날이었다. 재수를 하며 안부인사조차 못 했던 친구가 수능 직전 하늘나라로 갔고, 그에게 못다 한 말을 남긴 편지였다. 고작 시험 하나에 장례식을 포기해야 했던 나는 그에 대한 미안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때 남긴 글은 오랜 친구를 찾아갈 용기도, 엄두조차도 나지 않았던 나 자신에 대한 증오였고 당시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던 추모였다.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으나, 글이라도 쓰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언어에 재능이 있었던 친구를 애도하는 방법은 글로써 그를 표현해보는 것이었다. 그와의 추억, 그가 살아온 인생. 지난 감정들을 꾹꾹 눌러 담은 편지를 쓰는 동안 조금은 마음이 정리되는 듯했다. 하지만 쌓여왔던 미안함은 차마 글로 씻어낼 수 없었다. 그 친구가 떠오르는 날이면 난 어김없이 핸드폰의 메모장을 켜고 감정들을 분출해야만 했다. 사람들은 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계속 글을 썼다.


 연약했던 스무 살의 나는 가끔 위태위태했다. 누군가가 잡아주지 않으면 당장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또 글을 썼다. 살기 위해. 살고자 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 아니, 오늘 당장 죽으면 안 될 이유를 찾기 위해. 죽고 싶던 심정을 남에게 고백했고 예상치 못 한 위로를 건네받으며 연명했다. 남의 걱정스런 시선이 와 닿지는 않았으나 불완전한 내 상태를 객관화해볼 수 있는 경험이었다.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없을 때에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토닥임이었다. 쓰지 않았다면, 존재의 이유를 알지 못했다면 그 어두웠던 시간을 결코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힘들 때마다 글을 쓰게 되었다. 이상하게 기분이 좋을 때나 바쁠 때는 글이 써지지 않았다. 여유가 없다기보다는 굳이 나를 위로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연애를 하거나, 별 문제없는 날들을 살아나갈 땐 일상의 사소한 기쁨들을 기록할 이유가 없었다. 대신 혼자만의 고민이 생겼을 때, 누군가와의 관계가 틀어졌을 때. 실패와 좌절이 반복되어 더 이상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을 때. 그럴 때마다 다시 컴퓨터와 마주 앉아 타자기를 두드렸다. 대부분의 글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나를 위로해주고 응원해주는 글들을 썼고 점차 혼자 쓰던 일기를 주변에 보여주게 되었다. 내밀한 감정들을 보여주는 것은 다소 민망했으나 어떤 사람들은 유약한 내 정신력을 응원해주었다. 누군가는 내 글을 보고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 글을 보고 가장 감동받는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 글을 쓰는 것은 내게 있어 단순한 표현이나 취미 정도가 아니었다. 피폐하고, 쓰러진 나를 다시 일으킬 수 있는 유일한 행위였다. 괜찮아. 아직 살아있어도 괜찮아. 지금처럼 힘든 시간들 또한 지나갈 거야. 그리고 바라던 날들이 찾아올 거야라는 다독임이었다.


 처음으로 펜을 잡았던 때가 떠올랐다. 나는 친구로부터 용서받기 위해 글을 썼다. 그가 왜 세상을 저버려야 했는지 너무도 통탄했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너무도 미웠기에. 4년이 흐른 지금. 여전히 살기 위해 글을 쓴다. 힘들었던 하루를 위로하고, 불쌍한 내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쓴다. 무수한 나의 단점들을 승화시키고, 유일한 나를 사랑해주기 위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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