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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수정 Jan 31. 2019

욕망을 리스하는 청춘들


인스타그램 추천 피드를 넘기다 보면 심심찮게 영앤리치들을 발견한다. 하나같이 고급 외제차 핸들에 박힌 엠블럼을 바탕으로 손에는 오만 원권 뭉치를, 손목에는 직장인 평균 월급치를 호가하는 시계를 두르고 있다. 대놓고 부를 자랑하는 이들은 심지어 젊다. 많이 들어도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이들은 말끔한 고급 양장을 하고 떳떳한 눈빛을 장착하고 있다. 말로만 듣던 금수저들인가?


호기심에 계정을 들어가 보면 열에 열은 #재무설계사#억대연봉#FC(financial consultant) 같은 해시태그를 달고 있다. 재무설계가 이렇게 핫한 직업이었다니. 고급자동차 옆에는 트로피가 위치해 있다. 그토록 찾는 돈과 명예가 재무설계에 있었다. 물론 돈과 명예는 금수저를 물고 편하게 대물림 받은 것은 결코 아니다. 매일 아침 누구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고, 졸린 가운데 고객을 기다리며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낸 피땀눈물로 일궈낸 결실임을 증명하듯 아무도 없는 사무실 풍경이 앨범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시대의 화두 공정성이 바로 여기서 실현되고 있었다. ‘노력’이 ‘실적’되는 곳 재무설계로! 기성세대가 누릴 법한 돈과 명예를 쟁취한 이들은 정신마저 그들의 것을 탑재하고 있다. ‘해봤어?’ ‘하면 된다’식의 한국 고도성장기의 정주영식 명언들과 세계 부호들이 지어낸 글귀들을 자동차와 트로피 옆에 걸어둔다. 이곳 청년들에게는 대한민국의 성공신화가 아직 유효하다.


자칭 재무설계사들은 다른 직종과는 유달리 왜 이렇게 SNS에 열심인 걸까. 대놓고 부와 명예와 정신을 걸어놓는 집단적 행위는 일종의 광고이고 업무의 연장선이기 때문이다. 빛나는 사진 아래로는 영업을 위한 문구들로 가득하다. 재무상담의 중요성을 어필하고, 신입FC를 모집한다. 성공을 전시하는 건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해서였다.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는 ‘진짜 부자’, 금수저는 오히려 실패를 전시한다. 비트코인 대란 당시 월세에 어머니 병원비까지 끌어다 날린 서민 청년은 양치를 하다 불쑥 올라온 분기에 세면대를 박살 내 인증했다. 같은 때 금수저를 문 이는 5억을 날리고 이를 증명하는 화면을 뒤로 엄지 따봉을 찍어 올렸다. 당시 소감은 ‘아빠한테 혼나겠네’, 그뿐이었다. 진짜 부자는 실패를 전시함으로써 털끝 하나 다치지 않는 공고한 부를 자랑한다.


자랑보다는 사람을 모으기 위해 욕망을 전시하는 건 이들의 수입이 인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상품에 가입시킬 고객을 모으고, 신입FC를 뽑아 자기 밑에 두어야 수당을 올릴 수 있다. 재무설계라고 자칭하지만 보험설계에 가깝고, 실질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자격증은 거의 없는 이들이 다수다.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보다는 사람을 가입시키는 것에 집중된 작업, 소위 인맥장사다. 본인의 영업이익 외 자기 아래 있는 조직원을 늘려 수당을 늘리는 구조는 다단계와 흡사하다. #억대연봉을 검색했을 때 대놓고 다단계를 홍보하는 게시물과 함께 자리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전문성 있는 재무설계와 보험은 필요한 사람에게 득이 되지만, 설계사의 수익에 최적화된 영업은 소비자의 이익엔 관심이 없다. 때문에 재무설계의 연관검색어로 ‘재무설계 피해’나 ‘재무설계충’이 뜨는 건 필연적 결과다.


그렇다고 부를 전시하는 자칭 재무설계사들이 실제로 모두 부자인 것도 아니다. 10년차 보험사 매니저에 의하면 설계 일을 하는 젊은이들 대부분 월 150~200만 원의 급여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SNS를 보고 설계에 입문한 이들 100명 가운데 1년후 남는 사람은 30~40명에, 피라미드의 상위에 드는 건 서너 명에 불과하다. 비율로 셈해보면 전시된 고급외제차는 리스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이 인증한 트로피마저 공허하다. 매주 혹은 매일 갱신되는 MVP에 트로피 값을 감당하지 못하는 설계회사들은 유리 상자 안에 트로피를 박제해 놓고 그 주의 MVP를 인쇄한 종이만 소박하게 옆에 놓아둔다. 실상 그들은 명예마저 대여한다.


인스타그램에서 처음 이들을 발견했을 때 먼저는 노골적으로 욕망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었고, 그 아래로 늘어선 영업 문구에 허세를 직감했다. 부정적 감정을 떠올리는 게 나뿐만이 아닌 것은 이를 다루는 기사의 댓글에 냉소와 비하만이 가득하다.


다단계 구조 속 ‘그 재무설계사’들은 일면 자신의 노력으로 무언가 성취해가는 성실함을 수행하고 있다. 그 성실함의 경험 자체에 대해서는 외려 응원해주고 싶다. 다만 그 구조가 정당하다고 말하기 어렵고, 지속적이지 못 하며, 사람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만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그들의 성실한 과정이 다른 곳에서 꽃피었으면 하는 씁쓸한 감정이 있다. 욕망을 빌려 신기루를 만드는 설계자들, 그곳으로 달려가는 사람들, 냉소하는 관찰자들 모두 지금 한국이라는 고장난 체계 안에서 발버둥치는 젊은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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