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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것들의 생각 Sep 29. 2023

꾸역꾸역 추어탕

세상의 대부분의 음식을 좋아합니다만 거의 유일하게 못먹는건 추어탕입니다. 어릴적 어머니는 동네시장에 자주 데려가셨는데 미꾸라지를 파는 곳들이 많았거든요. 일단 그 작은 빨간'다라이'에 꾸물거리는 느낌이 좋진 않았지만 저에게 제일 큰 문제는 뛰어난 동체시력으로 그 미꾸라지들이랑 아이컨택을 하고 말았다는 것이예요. 동그랗고 큰 눈을 보았던 겁니다. 그리고 이후 과정을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삶아서... 믹서기에... 


대학교 학부생때 TA를 한적이 있는데 교수님은 추어탕을 좋아하셨습니다. 학식으로 추어탕이 나오는일은 거의 없었기에 교수님께서 추어탕 먹자고 하시면 그건 외출을 의미했어요. 교수님은 연구실의 규율이 엄격하신 분이셨는데 저는 그 한끼는 한사코 어떻게든 피해가려고 했어요. 야단맞으면서도 도망가고 그랬는데... 그래도 몇 번은 따라갈수밖에 없었습니다. 


언젠가 여름날 교수님을 따라간 자리에서 '꾸역꾸역' 추어탕을 먹고 있었습니다. 사실상 같이 넣은 배추나 고사리만 건져먹는 수준이었죠. 교수님과 식사하면 거의 대화를 안했거든요. 제가 꾸역꾸역 먹고 있으니 맘먹고 사주시는 분 입장에서 얼마나 답답하셨겠어요. 그러니 추어탕에 대한 말씀을 한참 하셨습니다. "추어탕 많이 먹으면 뼈가 튼튼해 진다고. 먹는걸 보니 너는 잘 모르는 듯 하다만 이게 정말 좋은 음식이라는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의외다 싶을정도로 따뜻한 말씀에 조금 더 먹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이 생각난건 십년이 훌쩍 지나 교수님 장례식장에서였어요. 평소에는 그렇게 엄하셔서 강하게 야단을 치시던 분이 먹을것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에는 따뜻한 느낌마져 들 정도로 설득하듯 한말씀해주신게 생각났더랍니다.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몸에' 좋은 음식을 먹여주는게 정말로 어렵다는걸 알게될 때 즈음이었어요. 지금은 맛집을 추천도 하고 그럽니다만 그땐 맛도 잘 모르는 애송이 시절이기도 했죠. 그리고 그 시점에서 또 세월이 지나 올해 추석이 왔네요. 


대부분 추석엔 맛있는것이 워낙 많아서 그것만 골라먹어도 배가 부르겠습니다만 꼭 한두번 정도는 먹고 싶지 않은걸 제안하시는 경우가 있죠. 저는 그래도 정말 먹기 싫어도 먹는 척이라도 합니다. 그럴때 교수님의 추어탕 한마디가 자꾸 생각이 나서요. 추억이 참 힘이 강합니다. 추석 즐겁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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