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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 Apr 13. 2024

축구하는 아들

축구하는 아들과 내향인 엄마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아들은 참 활동적이다. 재주도 많고 끼도 많고 뭘 해도 분위기를 주도해서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은 편이다. 반면 정적인 걸 좋아하고 조용해서 튀지 않고 뭘 하면 분위기를 싸하게 만드는 나랑은 정 반대의 성향이다. 그런 아들을 키우면서 내가 겪어보지 못한 주목받는 순간에 대리만족 같은 걸 느끼긴 하지만 피로도가 더 높다.


5살 때 유튜브로 태권도 영상을 보더니 태권도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애가 워낙 활동적이라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질 않고 에너지가 넘쳐나니 태권도 학원을 보내면 나도 좀 편할 것 같아서 나의 회사 근처에 있는 태권도 학원에 등록했다. 그렇게 아들은 5살부터 태권도를 다녔고 태권도 학원 5년 차다. 지금도 기억하는 게 다섯 살짜리가 처음 가보는 태권도 학원이 어색하고 무서울 만도 한데 본인이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그런지 첫날부터 잘 적응해서 신통했다. 그러고 보니 아들은 일하려는 엄마 때문에 돌도 되기 전 태어난 지 10개월 만에 어린이집에 갔다. 적응기간도 없이 첫 등원부터 어린이 집 차량 조수석에 앉아서 멀뚱멀뚱 가던 그 아기가 떠오른다. 둘째이기도 고 누나도 있으니 원장님의 조언대로 첫날부터 차량을 태워 보내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렸는데 걱정이 무색하게 첫날부터 완벽 적응을 했던 아들이다.


그런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축구를 접하더니 축구에 빠져버렸다. 축구 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하길래 알아보니 매일 가는 태권도 학원과는 달리 격일로 가고 돌봄 교실 시간도 애매해서 워킹맘인 내가 픽업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 아직 초등학교 일 학년 짜리를 집에 혼자 있게 할 수도 없어서 난감했다. 결국 평일은 태권도 학원을 계속 다니고 축구학원은 토요일 하루만 가고 대신 방과 후 축구를 신청했다. 그렇게 일학년동안 아들은 태권도와 축구를 계속했고 어느 날부터 태권도는 안 가고 축구학원을 더 가고 싶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휴직을 하고 4개월 정도 되었을 때 하루는 낮잠을 자고 있는데 축구학원 감독님의 전화가 왔다. 잠결에 받아보니 아들이 축구를 잘해서 이번 대회에 팀을 꾸려 나가보고 싶다고 한다. 일주일에 한 번만 가고 있는데 대회를 나가자고 하니 잘하긴 하나보다 싶기도 하고 아들도 나가고 싶다고 한다. 마침 나도 휴직하고 새로운 걸 경험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대회에 참여하기로 했다. 그렇게 대회에 참석하기로 하니 대회에 나가는 아이들의 엄마들이 있는 단톡방에 초대되었다. 단톡방을 꺼려하는 나는 대회에 나가기로 결정한 걸 후회했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단톡방에서 대회 전 연습을 위해 몇 시까지 어디로 오라고 공지가 뜨고 그러면 그 장소로 아이를 데려다줘야 했는데 하루는 큰 운동장에서 연습을 했다. 처음이라 이 연습을 보고 있어야 하는 건지 뭔지도 모르겠고 다른 아이들은 반팔 축구복 안에 검은 내의를 입고 있는데 우리 아들만 반팔에 반바지 차림이다. 안 그래도 쌀쌀한 날씨에 반팔 반바지만 입고 있는 게 걱정이었는데 우리 아들 빼고 다 안에 검은색 내의를 입고 있는 모습을 보니 어찌나 얼굴이 화끈거리던지.... 감독님한테 물어보니 개인적으로 사면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엄마가 너무 모르는 것 같다고 말하는데 연습 현장에서 본 감독님의 모습은 전혀 친절하지 않았다. 옆에서 지켜보던 다른 학부모님이 축구 내의라고 검색하면 된다고 알려주셨다.


아들은 어딜 데려다 놓아도 잘 적응한다. 역시나 무리에 섞여서 열심히 연습하느라 혼자만 내의가 있던 없던 굴하지 않고 열심히 축구를 한다. 반면 나는 그 큰 운동장 안에서 누구 하나 말도 걸어주지 않고 우두커니 서서 옆에서 수군거리는 말을 애써 안 들리는 척하며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날 느낀 소외감은 눈물이 날 것처럼 서러웠고 낯설었다. 이미 친한 무리 속에 섞이지 못하는 내 모습이 학창 시절에 적응 못해서 혼자 남겨졌던 그 시간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당장 대회고 뭐고 포기하고 싶었지만 이미 가기로 했으니 이 대회만 잘 넘기고 이 시간이 끝나면 다신 축구 대회 같은 거 나가지 말자며 다짐했고 그렇게 울며 겨자 먹기로 대회에 참석했다.


축구 대회는 이틀 동안 진행되었는데 처음 가본 축구 대회는 정말 새로운 세상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부모님들이 아이를 위해 경기를 따라오시는구나...... 느끼며 나도 눈치껏 엄마들 틈에 끼려고 노력했다. 남편이라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남편은 일하느라 못 와서 누구도 말 걸어주지 않고 챙겨주지 않는 그 자리에 딸과 함께 우두커니 서 있었는데 우리 아들은 그 무리에 벌써 섞여서 컵라면을 얻어먹는다. 그렇게 나도 우리 아들 라면에 물 부어주는 엄마와 말을 섞으며 조금씩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대회는 시작되었고..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우리 아들이 날아다닌다. 선수반 친구들 틈에서 취미반에 주 1회만 다니는 아들이 어찌나 잘하고 승부욕이 넘쳐나는지.. 함께 구경하던 다른 부모님들이 잘하는 쟤는 누구냐며 한 마디씩 하는데 잔뜩 움츠려 들었던 나의 어깨가 조금씩 올라갔다. 텃새고 뭐고 애가 축구를 잘하니 바로 인정모드에 들어간다. 그런데 수비만 하고 있는 아들이 안쓰럽다. 본인도 공격수를 하고 싶은데 코치님은 수비만 시키고 있으니.. 선수반이 아니라 그런가? 괜히 움츠려든다. 마음이 또 쓰인다.


그렇게 이틀 동안 진행 된 대회를 마치고 선수반에 들어오라는 제의에 지금 들어가면 나도 저 엄마들 무리랑 친해질 수 있는 타이밍인듯해서 고민이 되었다. 그런데 내가 이 축구 대회를 또 따라 올 자신이 너무 없었다. 파워 내향인인 나는 생각만 해도 기가 빨리고 피곤하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결국 회피하는 답을 택했다. 결국 선수반을 안 들어갔고 두 달 후에 대회에 또 오라고 했지만 안 간다고 답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잠잠했는데 대회에 나간 지 딱 6개월 지난 지금 아들은 다시 선수반에 들어가고 싶다고 하루하루 나를 괴롭히고 있다. 2학년이 되어 그때 함께 대회에 나간 친구가 하필 같은 반이 되었고 주변에 본인보다 축구를 못하는 친구들이 선수반에 들어가니 본인도 가고 싶어 한다. 그렇게 나는 6개월 후 내가 피하고 외면해 버렸던 축구를 다시 마주했다. 언제까지 피할 수 있을까.... 이렇게 좋아하는데...


당장 현실적인 문제를 점검했다. 축구학원 비용은 태권도 학원을 빼면 충당할 수 있는 금액이었고 이제 2학년이 되어 작년보다 조금 큰 아들은 내가 다시 회사를 다녀도 집에 몇 시간은 혼자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주말에 일하는 남편대신 대회나 경기 때 내가 운전해서 아들을 따라다녀야 하고 이미 뭉쳐있는 엄마들 무리와 친해져야 하는 거다. 엄마들 무리는 사회 생활 한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그런데 운전공포증이 발목을 잡는다.... 길치인 나는 우리 동네 운전만 한다. 새로운 곳에 운전해서 갈 생각을 하면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길을 잘 못 들어설까... 주차할 곳이 있긴 할까.. 고속도로는 안 가봤는데... 이런 두려움이 날 막아선다.


이제 40대에 들어서는 내가... 이제 두 자녀의 보호자 이면서 늙은 부모님의 보호자 역할까지 앞으로 감당해야 할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무섭다고 피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게다가 우리 아들이 이렇게 좋아하는데... 나는 무언가를 이렇게 좋아해 본 적이 있나? 이렇게 좋아하는 걸 계속 외면한다면 크면서 엄마를 점점 원망하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한번 용기 내서 지지해 주고 싶은 마음이 조금 더 커졌다.


그동안 나는 일주일에 6일을 축구유니폼을 입고 다니는 아들을 봤고 축구 영상을 보며 선수별로 세리머니를 외우고 따라 하는 아들을 봤고 핑크색 머리로 염색하니 아들 축구하죠?라는 질문을 받았다. 최근에는 축구 일기까지 쓰는 아들을 봤다. 이제는 축구 선수반을 안 가기도 민망할 정도다. 그래서 축구 선수반을 시켜보기로 마음먹었다. 해보자... 해보고 아니면 탈퇴하면 되니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일단 해보고 포기해야 나도 아이도 후회가 안남을 거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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