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님 Apr 29. 2024

엄마와 거리두기

나부터 지키자.

 휴직 전 나는 일에서도 번아웃이 심했지만 친정 엄마와의 관계도 매우 안 좋았다. 워킹맘으로 살면서 일과 가정 그리고 나 자신만 신경 쓰기도 벅찼는데 친정 엄마는 본인의 아픔과 외로움 늙어가는 남편에 대한 걱정까지 일거수일투족.. 그리고 수시로 변하는 자신의 작은 감정들까지 내게 쏟아내기 일쑤였다. 나의 어린 시절 엄마라는 존재는 내게 불안함과 불편한 존재였다. 정신적으로 불완전했던 엄마는 정신병원 폐쇄병동까지 입원했을 정도로 불안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어딜 가나 트러블메이커였다. 아빠 없이 엄마와 외출할 때면 엄마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거의 싸웠다. 버스기사 아저씨와 싸우고 미용실에서도 싸우고 교회에서도 늘 다투고.. 그런 엄마의 딸로 살면서 나는 항상 엄마의 기분을 살피며 눈치를 보며 자랐고 평화주의자가 되었다. 


엄마의 존재는 내게 늘 콤플렉스처럼 자리했다. 이런 엄마를 둔 내가 결혼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항상 하고 살았다. 그래도 나와 여동생은 다행히 좋은 사람과 결혼을 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고 해서 원가족과 바로 분리되는 건 아니었다. 큰 아이를 낳고 19개월 만에 둘째를 낳고 나는 바쁜 남편 대신 독박육아에 반쯤 넋이 나가있었는데 그나마 친정부모님이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 집에 와주어서 그 시절을 버틸 수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게 독이 되어 돌아올 줄은....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고도 친정부모님은 꼭 우리 집에 일주일에 한 번은 와야 했다. 평일은 일을 하고 주말에는 아이들을 케어하다가 시간이 나면 혼자 방에서 쉬고 싶은데 그 시간에 항상 친정부모님은 우리 집을 방문했다. 아이들이 보고 싶다는 이유였고 그렇게 아이들과 나를 보며 커피를 한잔 먹고 가는 게 마치 친정부모님의 주말 루틴처럼 자리 잡았다.


나는 엄마와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가끔 나의 고충을 이야기했는데 엄마는 한 번도 받아주질 않는다. 늘 자기 얘기로 돌려서 본인의 고통과 아픔으로 대화는 끝이 난다. 엄마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하나같이 부정적이다. 주변 사람들의 욕.. 본인만 항상 옳고 힘들고 아프고.. 밤마다 아파 죽겠다는 이야기..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사실을 깨닫고부터 하루에 몇 번씩 오는 엄마의 전화와 문자가 너무 힘들고 괴로웠다. 핸드폰에 엄마라는 이름이 뜨면 가슴속 깊은 곳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엄마의 소중함을 깨닫는다는데 나는 오히려 나의 엄마를 더 증오하기 시작했다. 본인의 우울증과 기분장애라는 병을 이유로 어린 나에게 수시로 자신의 기분에 따라 했던 행동들과 말은 정서적 학대였다. 그런 기억들이 내가 나이가 많아질수록 나를 더 괴롭혔고 아직도 나에게 본인의 아픔만을 이야기하는 엄마가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결국 번아웃과 이러한 감정들이 감당이 되지 않은 나는 스스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갔고 이렇게 나의 엄마처럼 나도 우울증 엄마가 되는구나 라는 생각에 많이 힘들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은 생각보다 나의 우울증 정도가 심하지 않다고 하셨고 나 스스로도 생각할수록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우울한 엄마를 내가 똑같이 따라간다고 생각하니 너무 두려웠다. 어느 날 엄마의 전화를 받고 기분이 안 좋아져서 무기력하게 누워서 아무것도 못하는 나를 바라보는 내 딸의 얼굴을 보니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이 올라왔다. 




그래서 내가 택한 선택은 엄마의 연락처를 차단하는 것이었다. 엄마는 결코 변하지 않고 나는 엄마를 변화시킬 수 없다. 그렇다고 엄마를 계속 받아주면 이제 내가 병이 난다. 수시로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불안한 엄마를 받아주길 바라던 친정 아빠도 나의 상태가 심각해 보였는지 이해해 주셨고 결국 나는 엄마의 연락처를 차단했다. 그리고 평온함을 느꼈다. 처음에는 죄책감에 힘들기도 했지만 나는 나와 나의 가정을 지켜야 했다. 

그리고 엄마의 전화나 문자가 더 이상 오지 않으니 핸드폰이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이후로 나는 엄마와 연락처 차단을 풀었다가 다시 차단했다가 수십 번을 반복했고 지금은 차단을 풀어놓은 상태다. 

현재는 엄마가 본인 스스로 나에게 전화와 문자를 잘하지 않는다. 이제는 주말에 우리 집에 안 와도 초조해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기까지 계속 싸우고 화해하고 반복했지만 결국은 나부터 지키자는 생각이다. 

세상에서 나 자신보다 소중한 건 없다. 내가 있어야 가족도 있는 거고 나 빼고 다 타인이다. 가족도 타인이다. 스스로를 지켜야 가족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