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주부 Nov 10. 2023

남이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갈 시간

삼성전자 팔아야 하나? 2편

필자의 얼굴을 보면 믿기 어렵겠지만, 정말 미국에서 공부를 했다. 2000년대 초반 미국 서부의 한 대학에서 마케팅과 경영학을 전공했다. 미국에 처음 갔을 때 영어를 못해, 수업을 쫓아가는데 무진장 애를 먹었다. 교수님이 숙제를 내주어도 혼자 못 알아먹고 못해가는 경우가 있었고, 쪽지 시험이 있는데 준비를 못해서 곤혹스러웠던 경험 등이 있다.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고민하다,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교수님 강의를 녹음해서 시간이 날 때마다 들으면 되는 거잖아?’


샤워할 때, 걸어 다닐 때, 밥 먹을 때, 화장실 갈 때 등 잠자는 시간과 공부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계속해서 듣고 또 들었다. 그리고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으면, 오피스 아워 (교수 사무실에서 개별 질문하는 시간)를 활용해서 질문했다. 그렇게 공부를 하니 성적이 꾸준히 오르기 시작했다. 졸업할 때 즈음엔 숨마 쿰 라우데로 졸업할 수 있었다.  


졸업 후 미국 LA에서 마케팅 일을 시작했다. 1년이 지난 후 기왕 배운 마케팅 지식을 국내 기업에 적용해 보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한국에 돌아갔다. 운 좋게 국내 기업에 바로 취업이 되었고, 필드에서 1년간 영업사원 기간을 거친 후 본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마케팅 계획을 짜보라는 상사의 지시를 받고 며칠을 고생해 작성한 마케팅 계획을 보고했다. 마케팅 보고가 끝난 후 당시 직장 상사가 내게 했던 말은 이랬다.


“이거 경쟁사에서도 하고 있는 건가?”


솔직히 상사의 이런 피드백에 당황했다. 우리가 해외 시장에서 메이저가 아닌 마이너라면, 그들과는 차별화된 방식으로 마케팅을 해야 할 텐데, 직장 상사는 다른 곳에서도 똑같은 마케팅을 하고 있냐고 묻지 않는가? 그리고 시간이 흘러 왜 직장 상사가 그러한 피드백을 주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직장 상사는 자신의 기준을 세워 일해본 적이 없고, 항상 경쟁사들을 벤치마킹해서 일해왔던 것이다.


솔직히 직장 상사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우리나라가 빠르게 발전했던 이유는 쫓아가야 할 뚜렷한 대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인데, 직장 상사는 20년 넘게 그러한 방식으로 일해 왔으니 그러한 피드백이 이해가 되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신입사원이 새로운 마케팅을 하자고 제안하니 그도 적잖게 당황했을 것이다. 그리고 상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거 실행했다가 망하면 책임질 수 있어?”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선진국을 모델 삼아 빠른 속도로 성장해 왔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판매량 기준으로는 세계 최고 스마트폰 제조사가 되었다.  남이 걸어간 길을 쫓아가면 리스크가 적다. 하지만, 먼저 걸어간 사람이 먹고 남긴 것을 주워 먹어야 한다. 판매량은 삼성이 1등인데, 스마트폰으로 벌어들이는 영업이익의 85%는 애플이 먹고 있다. 삼성은 애플이 먹고 남은 12%를 먹고 있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걸으면 리스크가 굉장히 크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가기에, 걷는 도중에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아무도 없는 풀숲을 깜깜한 밤에 걷다 보면,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란다. 하지만, 풀숲을 지나 발견한 과실은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혼자 배불리 먹을 수 있다.  


삼성이 지금 세계 일류 기업이 될 수 있었던 것도 1987년도에 삼성전자가 깜깜한 풀숲을 홀로 걷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시 메모리 반도체 성능을 향상하는 방법으로 대부분의 회사들은 트렌치 방식(밑으로 파 들어가는 방식)을 택했는데, 삼성전자 회장이었던 이건희는 스택 방식(회로를 위로 쌓는 방식)을 선택했다. 당시 참모들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다른 경쟁사들이 모두 트렌치 방식으로 성능 향상을 하고 있는데 굳이 위험하게 스택 방식으로 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때 이건희는 이렇게 말했다.


“단순하게 생각합시다. 지하로 파는 것보다 위로 쌓는 게 쉽지 않겠습니까?"


이때 삼성은 처음으로 남을 쫓는 것이 아닌 스스로 개척하는 선택을 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삼성전자는 1992년 세계 최초 64메가 D램 반도체를 개발하면서 일본을 누르고 메모리 반도체 1위를 차지한다.


서론이 많이 길었는데, 최근 이재용은 아버지 이건희처럼 남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 현재 반도체는 핀펫 방식으로 생산하고 있는데, 어느 누구도 가보지 않은 GAA 방식으로 반도체 생산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반도체 회로의 크기가 점점 작아질 수록 전류가 누수되는 문제점이 있다. 전류가 누수되면 반도체 성능이 제대로 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게이트라는 수도꼭지를 달아서 누수를 방지해야 한다. 지난 10년간 사용된 핀펫 방식은 수도꼭지가 3개 있는 것이고, 삼성전자가 최초로 시도한 GAA는 수도꼭지가 4개 있는 형태다.


이번에 애플과 TSMC는 아이폰 15프로용 3 나노 반도체를 만들 때, 수도꼭지 4개 대신 지금까지 사용해 온 3개짜리를 사용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아이폰 15 프로는 전류 누수에 따른 발열, 성능저하와 같은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삼성은 어느 누구도 가보지 않은 GAA 방식으로 3 나노급 반도체 양산을 시작했다. 어느 누구도 가보지 않은 어둠 속 숲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대량생산이다. 아무리 좋은 방식이더라도, 대량생산이 어려우면 의미가 없다.


삼성전자 주가의 향방은 수도꼭지 4개 방식(GAA)으로 만든 3 나노 반도체의 대량생산 가능여부에 달릴 것이다. 현재 인기 있는 엔비디아 인공지능 반도체를 TSMC에서 전부 만들고 있는데, 차세대 인공지능 반도체를 삼성전자에서 전부 만들게 된다면 삼성의 기업가치는 앞으로 30% 이상 상승할 여력이 있다. (TSMC와 삼성전자의 시가총액 비율)


<이미지 출처>

CHAT GPT 4



매거진의 이전글 삼성전자 팔아야 하나? 1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