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생 또한 처음이라
어느덧 27. 잡고 꼬리를 물고 넘어지다 보니 변명 덩어리가 되어버렸다.
더 이상 내어줄 게 없는 초라한 신세가 되어버렸다니. 그동안에 내어줬던 철없음이 파트타이머를 할 수 있는 자격과 학생이라는 신분을 가져다주었다. 졸업장을 받고 사진으로 증명을 남기고 나니, 깨닫는 시간뿐이었다. 시간은 흐르고 나이에 맞는 명분을 가지려면 노력해야 하는 입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자격지심이라는 말을 할 찰나에 "가장 중요한 시점이야"라는 말이 귓가에 뿌리내렸고, 그것이 나를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자, 나는 날 돌보지 못해 가져야만 하는 반성의 시간을 글로 대신 입력하고 싶다.
당장에 이뤄낸 성과가 없고, 여태껏 무얼 보고 살았냐 묻는다면 인생을 그냥 살아봤다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작은 바람을 가졌으면서 정작 그런 내가 되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멀리하고 나 힘든 거에 급급해하고 쉽게 포기해버렸다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발악은 나보다 몇 년을 더 살았던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일 뿐이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조언들은 하나같이 "네가 정말 뭘 하고 싶은지 부터 생각해봐." 였다. 보름만에 지쳐버린 내가 싫다.
돌아가기
나란 사람은 참 성미가 급하다. 2017년 5월. 뜨거운 마음을 품고 경험이라는 변명하에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무엇하나 의욕 없어 보이던 내가 결정을 짓고 비행기에 오를 때, 많은 사람들이 걱정반 기대반을 해주면서 내게 박수 없는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호주에 도착하고 몸이 적응하는 시간을 주기 위해 잠을 많이 잤다. 꿈을 꾸면서 가졌던 느낌을 적은 게 아래의 시다.
잡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맨 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호주에 발을 내짚으니 나 스스로 대단하면서도 불안했던 모양이다. 어쩌면 난 다정함을 바랐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따뜻한 사랑과 연인의 사랑같은 걸 바랬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받는 따뜻한 마음을 그 누구보다 잘 품을 수 있는데 나는 정작 나를 돌보지 못하는 바보다. 그냥 잠들기 전엔 항상 마지막 공을 서브받는, 긴장감 넘치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한기엽
헤어질 줄 몰라 서로를 발견하고
이름을 몰라 인사하지 못하는 우리 사이에
자꾸만 실이 뒤엉켜진다
눈을 감으면 찾아오는 너의 무게감
온몸으로 너를 안아 매듭을 짓는다
우리는 어쩌면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금방 친해질 게 분명했지만 서로를 알지 못했다
저 멀리 희미한 물속에 너의 이름이 담겨있다
서로 뒤엉키면서 실마리를 따뜻하게 만들면
하얗게 빛나는 너의 끝을 알 수 있을까
손을 뻗으면 닿을 듯 힘이 없다
우리는 자꾸 처음과 끝을 탐했다
왠지 모를 허전함을 형태로 부른다면
너라고 말했을 것이다
너는 나는 이름을 알까
우리 사이에 좀 더 나은 다정함은 없을까
낮은 천장을 가진 어두컴컴한 방에 작은 틈이 생겼다
만날 수 없는 우리 사이에
그것이 자꾸 반복되는 실수가 되어 빛바래지고 있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에는 자꾸 풀고 나아가야 할 일들이 많았다
내가 박수를 치면
너는 자꾸만 뒤돌아서서 나에게 손짓했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 자꾸만 매듭으로 만나는 끝자락
그 사이에서 우리는
작별인사조차 없었으므로 부르지도 않았다
아직 물속에 너의 이름이 있다
우리는 듣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나는 더 깊숙하게 얇고 가냘픈 너의 끝을 물었고,
나는 달팽이를 삼켜 듣는 법을 배웠다
너의 시간이 멎고 나의 생각이 머문다
우리가 가져야 할 시간 속에 나는 너를 닮아
단지 이름을 가지고 싶었다
꿈속에서 나는 나를 보게 되었다. 규칙이란 게 존재했다면 그것은 소통이 힘들었다는 것. 단지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름도 부를 수 없었다. 표정으로라도 소통을 나눌 수 없었다. 몸이 우주에 나 홀로 떠있는 기분이 들었고, 주변에 아무도 존재하지 않은 기분이 들어서 힘들었다.